아니, 카페가 700억을 투자받을 수 있어?
2021년 11월 테라로사(TERAROSA)가 사모펀드 유니슨캐피탈부터 700억 투자를 받았다는 뉴스가 알려졌다. 투자규모도 규모지만 아무리 테라로사라도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도 아닌 오프라인 기반의 카페, 특히 초포화시장으로 인식되는 커피전문점이 700억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국세청 집계한 2021년 12월 말 기준 100대 생활업종을 보면 우리나라의 전체 커피음료점 수는 83,363개였다. 동네곳곳마다 자리한 편의점 점포 수 48,458개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우므로 우리나라에 카페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커피 프랜차이즈들은 매장 수를 늘렸다. 특히 메가커피는 2020년 한 해에만 점포를 400개 이상 추가로 열기도 했다. 도저히 더 이상 늘어날 여유가 없어 보이는 초포화시장이지만 오늘 또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극한의 수익성을 쫓는다는 사모펀드에서 투자금 회수에 대한 고민 없이 막무가내 투자를 진행했을 리는 없다. 그 누구보다도 돈 냄새를 가장 잘 맡는다는 사모펀드는 이 초포화시장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테라로사의 어떤 특별한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것일까.
테라로사가 스타벅스보다 점포당 매출이 거의 2배라고?
강릉에 여행을 가면 아침 일정 처음으로 테라로사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조금만 늦어도 일정이 뒤로 밀릴 만큼 테라로사 본점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듣고 ‘카페가 아무리 잘나 봐야 카페지’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테라로사가 그냥 잘 나가기만 하는 동네 카페였다면 사모펀드가 함부로 700억을 투자할리 없다.
테라로사는 스타벅스보다 더 높은 매장 당 매출을 내고 있다. 테라로사는 2022년 현재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총 19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4개 매장(길동, 노을공원, 포스텍, 동탄호수)는 최근 새로 오픈되었다. 2020년 기준 테라로사의 매출액은 349.7억이었고 이를 당시의 매장 수 15개로 계산해보면 매장 당 23.3억을 올린 셈이 된다.
커피전문점계의 지지 않는 태양 같은 스타벅스 코리아(SCK컴퍼니)의 2020년 매장당 매출이 12.2억(1.9조, 1580개)인 것을 감안하면 테라로사가 스타벅스보다 거의 2배의 매출을 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위 업체인 투썸플레이스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크다. 투썸플레이스의 2020년 매장당 매출은 3.3억(3640억, 1097개)이므로 테라로사와 비교 시 약 7배나 차이가 난다. 직영점만을 운영하기에 매장 수가 적은 테라로사가 전체 매출로는 유명 프랜차이즈 대비 작아 보일지 몰라도 매장당 매출로 환산해보면 테라로사의 위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테라로사
여러 이유 중 테라로사가 스타벅스 대비 2배의 매출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정체를 쉽사리 알기 어려운 ‘스페셜티 커피’란 단어는 말 그대로 특별한 커피다.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 SCAA가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커핑 테스트에서 80점 이상 받은 커피들로 커피마다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같은 곳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커피를 커머더티(Commodity) 커피라고 말하고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개성이 강한 원두들은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라고 부른다.
물론 커피는 개인의 기호품이므로 스페셜티 커피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커피 혹은 맛있는 커피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두의 생산지, 품종, 가공방식, 로스팅의 정도에 따라 원두마다 다채로운 맛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스페셜티 커피는 커머더티 커피와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더 좋은 품종을 선별하고 또 더 좋은 맛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자연스럽게 스페셜티 커피는 커머더티 커피 대비 가격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테라로사가 사용하는 생두는 스타벅스가 사용하는 생두보다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테라로사에서 판매하는 커피 중에는 원두에 따라 한 잔에 10,000원짜리 커피도 있다.
우리나라 스페셜티 커피 문화 개척자, 테라로사
붉은 토양(Terra(흙)+Rossa(붉은)이라는 뜻의 테라로사는 김용덕 대표가 21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그만두고 20002년 강릉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처음에는 돈가스 집을 운영하다가 청담동 고급 레스토랑 문화를 접하게 되며 충격을 받고 레스토랑 문화 전반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와인, 커피까지 다다르게 된 김용덕 대표는 특히 우리나라 커피 산업이 얼마나 뒤처졌는지 실감하게 됐다. 일본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얼마나 우리나라가 뒤쳐졌는지 체감하게 됐고 이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커피산업이 어떻게 하면 국가의 경쟁력이 될까’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테라로사는 보다 더 나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생두와 산지에 대해 고민하는 스페셜티 커피를 다룬다. 김용덕 대표는 산지를 열심히 찾아다닐 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 과정을 세심히 살피고 각각의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한다. 예를 들면 르완다 커피가 케냐까지 오는데 12~14일 정도 걸린다. 그런데 케냐 몸바사는 습도가 굉장히 높은 지역이기에 여기서 빨리 선적하지 못하면 커피가 쉽게 상하므로 선적기일까지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이와 같은 꼼꼼한 노력 덕분인지 테라로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두 수입, 로스팅 및 유통까지 모든 벨류체인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제는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테라로사의 이름이 알려져 해외에서 한국의 테라로사에서 왔다고 하면 먼저 알아본다고 한다.
꿈의 크기가 그릇의 크기를 말한다
강릉을 커피의 고장으로 만든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로컬 브랜드인 테라로사를 보며 뉴로컬을 공부하는 우리는 세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가장 먼저 테라로사는 본업에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테라로사는 사업 초기부터 카페, 베이커리, 호텔, 리조트 등에 로스팅한 커피를 납품했다. 지금도 매장 운영만으로 전체 매출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약 40% 정도는 원두나 기획상품 판매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톄라로사가 쌓아온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노하우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설명하는 수식어로 ‘2021년 과테말라 CoE 1위’ 같은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는 커피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 커피 관계자 모두가 관심을 쏟는 곳이다. 바로 이 ‘컵 오브 엑셀런스’에 테라로사의 이윤선 부사장이 한국인 최초로 국제 심판관으로 초청받았다.
회사가 힘들 때 김용덕 대표가 개인 카드빚을 내서라도 직원들을 해외로 연수 보냈던 결과 이제는 테라로사의 일원이 세계적인 명성의 대회에 심판관까지 될 수 있었다. 그만큼 테라로사는 스페셜티 커피에 진심이고, 스페셜티 커피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 단단한 내실을 만들고 있다.
테라로사는 단단하게 쌓아온 커피에 대한 경쟁력을 공간의 미학으로 완성하며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 간다. 김용덕 대표는 페터 알텐베르크의 ‘네가 가는 카페가 어딘지 말해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만큼 그는 커피 맛뿐만 아니라 테라로사의 공간 하나하나 세심히 챙긴다. 그가 직접 설계, 디자인한 테라로사는 각각의 매장마다 컨셉이 다 다르다. 균일한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카페 프랜차이즈들과는 달리 ‘과연 테라로사구나’라는 느낌을 받게끔 설계한다.
두 번째로, 20년 동안 스페셜티 커피 업계를 만들어온 테라로사는 시간의 축적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테라로사도 하루아침에 지금의 테라로사가 되진 않았다. 김용덕 대표는 스페셜티 커피라는 말이 익숙해지기도 전인 20년 전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지 않은 강원도에 카페를 내면서 ‘내가 좋은 커피를 계속하면 언젠가 반드시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손익분기점도 가까운 시일이 아닌 약 5년 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거의 한 4년 동안 한 명 오는 날보다 한 명도 오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라고 말하는 그는 한 명을 감동시키면 분명히 다시 찾아온다고 믿었다. 10년 전 만족한 고객이 10년 뒤 다시 찾아도 그 점포가 열려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계속 그 자리를 지켜온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 지금의 테라로사를 만들어 냈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은 인스타로 보고 골목 깊숙이 숨어있는 가게도 찾아가는 시대가 됐다. 20년 전에 비해 정보유통이 훨씬 빠르고 쉬워진 만큼 이제는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기간도 훨씬 짧아졌다. 하지만 내공이 쌓이기 전에 급하게 주목받은 브랜드는 대부분 급하게 사라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농부가 1년 365일 중 수확하는 기간은 길어봐야 5일~10일 정도라고 한다. 그 짧은 수확 기간을 위해 농부는 1년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360일~355일 동안 비바람을 맞고 태양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한다. 이처럼 결실은 갑자기 뜬금없이 혹은 갑작스러운 노력으로수확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전부터 시간의 축적이 있었기에 맺을 수 있다. 김용덕 대표는 에르메스를 예로 들며 ‘과거에 말안장 잘 만들던 기술자가 지금까지 쭉 잘 만들어 왔기에 에르메스가 명품이 됐다’라고 말하며 축적의 힘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테라로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은 꿈을 크게 꾸는 능력이다. 김용덕 대표는 테라로사가 ‘커피계의 에르메스’가 되겠다고 말한다.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카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품이 되기를 바란다.
김용덕 대표는 커피 한 알도 나지 않는 스위스에 위치한 네슬레의 기업가치를 자주 언급한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커피 네스카페를 개발하기도 한 이 네슬레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430조(3,352.66억 CHF, 22년 2월 22일 기준)다. 네슬레같은 큰 기업이 되고자 한다기보다는 네슬레가 스위스의 경쟁력이 되는 만큼 커피 한 알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커피 산업이 경쟁력이 되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지다.
그 일환으로 테라로사는 오래전부터 카페 문화의 본고장인 파리 진출을 꿈꿔왔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파리 진출이 늦어지고는 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낼 숙원사업이다.
테라로사는 대한민국에서 흔하디흔하다고 생각되는 카페도 700억 투자받을 수 있고, 커피 한 알 나지 않는 대한민국 강릉에서 시작한 카페가 언젠가는 파리에 지점을 내고 카페 문화의 본고장에서 Made in Gangneug을 외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뒤따라오는 자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사람
김용덕 대표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피오가 한 말을 좋아한다. 바로 선배를 ‘뒤따라오는 자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 자’라는 말이다. 이 말처럼 그는 후배들에게 앞길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테라로사가 걸어온 궤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세계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나아갈 길은 더욱 기대가 된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자료
- “테라로사 점포당 매출, 스타벅스의 2배 커피산업을 국가경쟁력으로 키우고 싶다” (이코노미조선, 2017.05.01)
- “큰 회사가 아니라 좋은 회사가 목표(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08.01)
- [Weekend Interview] 강릉을 카페로 만든 남자,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매일경제, 2017.05.12)
- 유니슨캐피탈, 테라로사 투자로 공차 성공신화 재현할까 (더벨, 2021.11.04)
- 매출 괴물 스타벅스 … 점포당 10억씩 벌었다 (서울경제,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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