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빵업계 부동의 1위 파리바게뜨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연일 화제의 중심이다.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킨 골목식당의 기획의도는, 골목의 작은 가게들이 백종원 사장님의 필살기를 전수받아 절대 망하지 않는 가게가 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백종원 사장님의 필살기를 전수받는 가게에는 프랜차이즈가 포함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일반 소상공인일지라도 프랜차이즈 본부는 보통 거대한 회사이고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이미 이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토종 프랜차이즈 하면 가장 먼저 생각 나는 곳은 아마도 신호등 옆에 하나씩 있다는 파리바게뜨일 것이다. 그렇다면 파리바게뜨는 도대체 얼마나 큰 회사일까? 파리바게뜨의 2017년 말 기준 국내 매장 수는 약 3,400여 개에 달한다. 파리바게뜨 브랜드가 소속된 (주)파리크라상의 17년 매출액은 1조 7743억이다.(기타 브랜드를 모두 포함한 연결 매출액은 3조 5827억 출처:전자공시 감사보고서) 물론 이 매출에는 다른 브랜드들도 포함되어 있어 정확하게 파리바게뜨만의 매출을 파악하긴 어려운 면은 있다. 하지만 어쨌든 주로 빵을 팔아서 조 단위 매출이라니 어마어마한 사이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빵지순례’의 주인공들이라면 파리바게뜨와 좀 비교해볼 수 있을까? 이성당, 옵스 등 여러 전국구 빵집들이 있지만 단일 윈도우 베이커리(매장에 있는 손님이 제품 만드는 공정을 볼 수 있도록 점포 내에 공장을 차려놓고 매장과 공장 사이는 유리로 구분한 빵집)중 매출이 가장 높은 곳은 성심당이다. 전자공시를 참고한 결과 2017년 기준 성심당의 매출은 423억이다. 아무리 성심당이 단일 윈도우 베이커리 중 가장 큰 매출을 많이 올린다고 하더라도 (주)파리크라상과는 약 42배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성심당에 대해 구체적인 공부를 하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파리바게뜨가 42배를 더 번다할지라도 과연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성심당의 경영이념 :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
성심당의 경영이념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로마서 12:17)이다. 성경의 한 구절이 경영이념이 된 이유는 성심당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성심당의 초대 사장 임길순 사장님은 원래 함경도 출신이시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남으로 피난 오는 과정은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이었다. 이 때문에 임길순 사장님은 ‘살아남는다면 평생 남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대전 대흥동성당의 오기선 신부님에게 밀가루 2포대를 받았다. 1956년 예수의 성심(聖心)을 기리며 대전역 앞에서 간판을 걸고 찐빵을 팔기 시작했다. 모두가 배고팠던 그 시절, 그때부터도 성심당은 대전역 앞에서 굶는 이들과 찐빵을 나눠 먹었다.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이 정신은 이어진다. 성심당은 여전히 하루 생산한 빵의 3분의 1을 기부한다. 매월 금액으로 따지면 약 3~4천만 원에 상당하는 빵이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꾸준히 기부되어 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성심당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성심당은 가톨릭 정신을 기본으로 이웃, 사회 그리고 고객과 직원, 협력업체까지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회사가 되고자 하는 경영이념을 가지고 있다(가톨릭 계열에서는 성심당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는 모델을 포콜라레 운동, 혹은 EoC(conomy of Communion)으로 부른다).
성심당의 경영목표 :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
아무리 매출이 오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서로 미워하고 무관심하다면 성심당이 아니다. 맛있는 빵, 경이로운 빵, 생명의 빵에 대한 철학을 지니고 서로 사랑하며 빵을 만든다면 당연히 최고의 빵이 될 것이다. 빵을 통해 사랑의 문화가 꽃피워 세상 밖으로 나가 ‘가치 있는 기업’으로 우리의 몫을 해야 한다.
– 임영진(성심당 2대 대표), 성심당 창업 60년 비전 선포식
성심당의 경영목표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임영진 대표님이 비전 선포식에서 말했던 것처럼 성심당의 목표는 더 큰 매출이 아니다. 빵에 대한 성심당의 철학을 실현해 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소한 빵내음처럼 사랑의 문화가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이 성심당의 목표이다. 임영진 대표님의 말씀하신 성심당의 경영목표는 단순히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성심당이 이를 실현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심당은 실제로 ‘사랑의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성심당의 내부 인사고과 평가 지표 중 40%는 ‘사랑’이다. 또, 동료에게 칭찬을 많이 받은 직원을 ‘사랑의 챔피언’으로 지정하고 상금을 수여하기도 한다. 게다가 매년 회계 내용을 직원에게 공개하며 이윤의 15%는 성과보수 인센티브로 직원들과 나누고 있다. 또한 성심당 본사 가게 건물 밖으로 수도꼭지를 내서 성심당 인근 포장마차가 물을 받아 쓸 수 있게 배려한다. 그리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는다. 이성당 오남례 할머니께서 가게 앞 노점상 분들과 빵을 나눴던 것처럼, 성심당도 인근의 이웃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성심당의 노력은 짝사랑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2005년 화재로 성심당 본점이 전소돼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닥쳤을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성심당도 이제는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 회사 우리가 살리자’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직원들이 힘을 모았고 이웃들이 힘을 더했다. 그 덕분에 일주일 만에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웃들이 성심당을 적극 이용하면서 오히려 매출은 화재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대표 혼자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자기만의 뜻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와 뜻에 동감한 직원들과 이웃들이 함께 호응하고 동참해주었다. 결국 성심당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함으로써 정말로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 기업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되지 못한다
성심당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돈을 벌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가, 아니면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가?
누군가는 성심당의 일련의 경영활동이 나름의 마케팅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도무지 효율이 나지 않는 일이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돈이 벌리는 방향으로만 접근하고 기업경영 방식도 수익창출을 위한 비용절감 같은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 더 즉각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성심당의 지나온 길을 보면 성심당은 이른바 ‘경영효율’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성심당은 돈만 벌기 위해 기업활동을 한다기보다 성심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더 확산시키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착하다고만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옳은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지속적으로 생존하며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업도 수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되지 못한다. 성심당이 본원적인 경쟁력 없이 착하기만 한 빵집이었다면 절대로 400억 대의 전국구 윈도우 베이커리로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심당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심당이 ‘빵집’으로서 본원적이고 강력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익을 내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심당은 1980년 튀김소보로 최초 개발, 1983년 국내 최초 3시간 지속 포장 빙수, 1985년 국내 두 번째 생크림 케이크 판매 등 제빵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때부터 세세하게 조명에 신경을 쓴 것도, 부활절이나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날마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모두 성심당이 트렌드 리더로서 차별점을 갖는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다.
사람에게 가장 긴 여행코스, 머리와 가슴 간의 46cm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균질한 맛을 어디서든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은 ‘파리바게뜨는 좋은 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창업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파리바게뜨가 프랜차이즈로서 여러 가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파리바게뜨 덕분에 소비자들이 비교적 빵을 쉽고 편하게 사 먹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SPC그룹도 나름대로 사회공헌을 많이 하고 있고 수많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분명히 SPC그룹은 SPC그룹대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성심당과 SPC그룹이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해서 SPC그룹이 부도덕하고 돈만 아는 기업인 것은 아니다. 다만, 성심당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줄 수 없는 성심당만의 가치를 주며 지역사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이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성심당은 파리바게뜨가 부러울까? 우리가 지켜봐 온 바에 의하면 그 답을 추측할 수 있다. 아마 부럽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긴 여행코스는 머리와 가슴 사이 46cm라고 했다. 머리로는 아주 잘 알아도 실제로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는 빠르게 움직여도 가슴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많은 경영자들은 직원들과 이익공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많은 경영자들이 이웃과의 나눔에 대해 생각하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이는 많지 않다. 어쩌면 이 모든 이유는 사람에게 가장 긴 여행코스인 46cm를 온전히 걸어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심당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를 걸어내며 따뜻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사람이 먹기 위해서만 살지 않듯이 기업 또한 수익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성심당은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하며 ‘가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먹어봐야 하루 다섯 끼고 양말을 아무리 많이 신어봐야 두 겹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EoC의 권위자인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성심당 같은 중소기업이 100개만 생겨나도 한국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규모 있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성심당 같은 가게가 동네에 10개만 더 생겨나도 그 지역만큼은 조금 더 살 맛나는 동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성당도 그렇고 성심당도 이런 가게들은 제발 꼭 더더더 잘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서 우리나라에 그런 가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PS
실제로 임영진 대표님이 파리바게뜨를 부러워하실지 아닌지는 꼭 한 번 여쭤보고 싶다. 공부를 하면서 성심당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풀리진 않았다. EoC나 성심당의 미래 등 궁금한 게 참 많다. 우연히 이성당 김현주 대표님을 뵐 수 있었던 것처럼 임영진 대표님도 언젠가 반드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임영진 대표님을 뵐 수 있다면 더 배워서 글 내용을 더 추가하겠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