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미로 무언가를 즐기는 데에는 돈이 듭니다. 이건 당연한 일이예요. 영화를 한 편 보는 데는 만원 정도 들고, 음악 CD를 사서 듣고 싶을 때 듣기 위해서는 2만 원 정도 듭니다. 게임기로 게임을 하려면 30만 원 정도의 게임기를 사서 5만 원 정도의 게임을 사면 됩니다. 골프를 친다면 골프 장비+그린 피가 들 테고요. 이럴 경우 금액은 천차만별이겠죠.
하여튼,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 비용을 정해 두고 그 범주 내에서 즐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낸 만큼 즐기고, 즐긴 만큼 낸다… 는 기본적이고 간단한 원칙이죠.
2.
그러나 가챠, 즉 확률형 뽑기의 요소가 들어간 게임들은 이러한 원칙의 바깥에 존재합니다. 돈을 지불한다 해서 게임 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아이템이나 더 나은 캐릭터를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뽑을 ‘기회’만을 줍니다. 일종의 도박이죠.
물론 소위 말하는 ‘천장’이라 해서, 얼마 이상 들이면 반드시 얻게 해준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 천장이 어처구니없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레어 카드 하나를 반드시 얻게 해준다는 뽑기 천장이 300만 원 정도예요. 즉, 300만 원어치 뽑으면 개중 한 번은 보장해준다는 소리죠(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에 나오지 않고 꼭 300만 원 다 채울 때 나옴).
게임 회사들은 바로 이 도박에서 사용되는 자신들만의 칩, 즉 게임 내 재화를 팔아서 막대한 돈을 챙깁니다. 그렇다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소비자에게 주느냐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쁜 캐릭터들이 나와서 귀여운 척을 하고 게임 내에서 싸우는 척, 경주하는 척, 경쟁하는 척 하지만 한칸 위에서 전체를 파악해 보면 게임의 본질은 뽑기와 도박인 경우가 많습니다.
3.
자칫하면 국감까지 이어질 위기인 게임 <우마무스메> 사건도 본질을 놓고 보면 다소 우스운 측면이 있습니다.
발단은 첫 번째, 같은 게임을 하는 데 게임 내 재화, 즉 뽑기를 하는데 필요한 칩을 일본 유저보다 적게 준 것입니다. 두 번째, 특별한 아이템을 확실히 얻게 해 주는 티켓을 나눠줘서 사람들이 “좋은 카드 나오면 거기에 써야지!”하고 기다렸는데, 티켓 지급 기간을 일본에서는 1년까지 보장해 준 반면 한국에서는 1개월로 줄여 버리면서 카드를 못 뽑게 꼼수를 부리자 유저들이 폭발한 겁니다. 게임의 운영 문제가 아니라 운영 문제로 폭발한 거예요.
과금 요소가 있는 게임을 과금 없이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과금을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돈 없는 학생들보다 돈 버는 사람들이 더해요. 아까도 언급했듯이, 이분들이 하는 건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박을 한다고는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돈 내고 게임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버럭하기까지 해요. 전형적인 도박중독자들의 모습이랑 진짜 1도 안틀리고 똑같습니다. (……)
4.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취미에는 돈이 듭니다. 낸 만큼 즐기고, 즐긴 만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건전한 소비로 마음을 재충전하고 활력을 되찾는 건 바쁜 현대인들에게 필수불가결한 힐링입니다.
그러나 게임으로 위장한 도박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앗 하는 사이에 뽑기로 수백만 원을 쓰는 게 과연 건전한 일일까요? 현실이 아닌 디지털 상에 존재하는 데이터값을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유리한 수치로 바꾸기 위해 수백만 원을 쓴다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요? 그나마 뽑기 천장이 있어 300만 원만 쓰면 무조건 나오니,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게 정상인의 사고방식으로 할 수 있는 말일까요? 이게 과연 마음을 재충전하기 위한 힐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일까요?
NC나 넥슨이나, 기타 잘나간다는 국내 게임회사들이 초고속 성장을 하고 돈을 억수로 버는게 가능한 이유도, 그들이 게임회사가 아니라 게임의 탈을 쓴 디지털 카지노 운영사이기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카카오도 거기에 숟가락 얹으려는 거구요. 정상적으로 게임을 만들었다면 이토록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게임처럼 보이는 고도로 카모플라쥬된 도박장 운영을 했기에 가능한거죠.
단순히 환금 요소가 없다고 해서 도박이 아닌 게 아닙니다. 끝까지 따지면 현행법으로는 도박 아닐지 모르지만(그러니 영업 계속할 수 있는 거겠지만) 게임 내 극악한 확률 속에서 대박을 뽑는 쾌감으로 사람을 길들여 중독시키고 헤어나올 수 없게 하는 건 그냥 돈 내고 돈 따먹는 도박장보다 더 질이 나쁩니다. 심지어 뽑기 확률을 조작까지 한단 말이예요? 단순히 현행법으로 불법도박이 아닌거지, 상식적으로 볼 때 이게 도박이 아니면 세상에 뭐가 도박이란 말입니까?
그에 비하면 게임 패키지를 5~10만원 주고 사서 몇 달 동안 즐기는 콘솔 게임은 엄청나게 건전한 겁니다. 뭘 모르는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게임기 컨트롤러 들고 TV 앞에서 총 쏴서 좀비 죽이고 있으면 경기를 일으킨다는데, 진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겁니다. 애들이 몰래 모바일에서 말 키운답시고 핵과금 하며 도박에 빠지게 하느니, 차라리 거실 대형 TV에서 헤드셋 끼고 친구랑 연신 욕을 내뱉으면서 ak47로 좀비들을 피투성이 만드는걸 응원하는 게 백배 낫습니다. 좀비 잡느라 힘들지 하며 응원도 해주고, 과일도 좀 깎아주고 그러세요. 만약 자녀들이 평화롭게 섬이나 꾸미고 있으면 더더욱 바랄 게 없는거고요.
이미 우리 삶을 게임과 분리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게임과 도박을 구분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게임을 막아서 도박을 하게 하면 만사 공염불입니다. 중요한 건 도박을 안 하게, 못 하게 하는 겁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게임 할 시간을 주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기 시간을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엄마 아빠가 같이 게임을 즐기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게임 타임이 곧 가족 타임이 됩니다.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생각해보세요. ‘현질’ 없이는 이길 수 없는 명색만 무료인 모바일 게임이나 PC온라인겜 하게 놔두는 것과, 엄마 아빠가 같이 하면서 섬도 꾸미고 자동차 경주도 하고 댄스도 추는 것과 같겠습니까? 그런데 절대 다수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안해요. 게임 모르는 부모님들은 몰라서, 아는 부모님들은 자신의 취향이 있어서 애들과 같이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이와 어른이 같이 하면서 져주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는 과정에서 연대감과 유대감이 강화됩니다. 이게 싫어서 폰 던져주고 무료 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현질 하다 도박 중독자가 되게 놔두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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