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화가 아카마츠 켄이 참의원에 당선되었다. 만화가가 많은 일본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아카마츠 켄은 〈아이러브서티〉〈러브히나〉〈마법선생 네기마!〉〈UQ 홀더〉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굉장히 잘 알려진 작가다. 흔히들 ‘하렘형’ 러브 코미디라 불리는, 남자 한 명에 여성 여럿이 연심을 품는 장르의 선두주자이자 완성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행보는 무척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문과 출신이지만, PC를 비롯한 공학적 지식이 대단히 풍부한 편이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대학 이후의 일로 무척 늦은 편이었다. 대신 ‘팔리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를 철저히 연구하고 기획해서 작품을 냈다. 독자적인 디지털 작화 시스템과 어시스턴트 시스템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심지어 유튜브의 자동 번역 시스템을 무료 만화책 자동 번역 시스템으로 활용할 정도의 잔머리를 지닌 사람이다.
매우 사업가스러운 일면도 가지고 있다. 절판되고 잊혀진 만화를 디지털화하여 복구하고, 광고를 붙여 무료 공개함으로써 작가와 독자 모두가 윈윈하는 플랫폼 ‘J코미’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에는 시운도 따라줬다. 오래전에 묻힌〈렌짱파파〉라는 만화가 있었다. 막가파 파칭코 중독자 아빠 이야기를 다룬 만화였는데,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단행본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J코미는 이 만화를 디지털라이즈하여 무료로 공개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국 때 전국 각지의 파칭코샵이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영업을 강행하면서 온 국민들의 파칭코에 대한 감정이 나빠진 일이 있었다. 이때 이 만화가 재발굴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국민 만화’로 떠올랐다. 잊힌 만화 중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있는데, 무관심 속에 사라졌을 작품들을 보관하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그에 대한 칭송이 쏟아졌다.
아카마츠 켄은 초기부터 정치적인 성향이 강했다. 만화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해서도 노력하는 한편, 기존의 동인지 시스템이나 상업 만화에서의 표현의 자유(그는 상당히 에로틱한 만화를 그리는 편임에도, 출판사의 중요 부위 노출 불가 방침으로 인해 표현의 제약을 많이 받은 편이다) 등에 지대한 관심과 열의를 가졌다. 덕택에 이미 정치에 반 정도 발을 담그고 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본격적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개인 득표 1위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물론 이 행보에 대해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는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한국으로 치면 국민의힘 소속인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개헌에도 찬성 의견을 표했다(자위대의 국외 파병 등이 가능하도록 평화 헌법을 뜯어고치는 걸 말한다). 이로 인해 욕도 많이 먹은 편이다. 실제로 〈아이실드21〉〈원펀맨〉의 작가 무라타 유스케는 트위터에서 ‘아카마츠 켄의 당선에 감동받았다, 대단하다’ 등의 축전을 보냈다가 중도 및 좌파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반면 그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일본에서도 페미니즘이 대두하고 사회적 인식이 전환되면서 만화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아카마츠 켄은 이전부터 창작은 사상이나 이념과 별개로 자유롭게 행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검열 완화, 오타쿠에 대한 반사회적 인식 개선, 동인 행사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 등 만화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척 크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 만화가가 국회의원이 된 사례도 없거니와, 웹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시장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규제하고, 만화가 및 동인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문화의 한 축인 미래 성장 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비전을 가진 정치인도 없는 실정이다. 몇몇 만화를 좋아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치가들이 기성 작가를 불러 좌담회나 한두 번 하는 게 고작이다.
옆나라 일이긴 하지만, 아카마츠 켄의 국회의원 당선은 서브 컬처계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겠다. 성공한 덕후의 삶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원문: 마루토스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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