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뉴스 코리아에 따르면 영화감독이자 사진가인 빔 벤더스는 폴라로이드를 사랑하며 ‘핸드폰이 사진을 죽였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저도 한번 들여다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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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사진의 문제는 아무도 사진을 다시 안 본다는 것이죠. 심지어 그 사진을 직접 찍은 사람들까지도요. 인화는 물론 하지 않고요.
반론
DSLR이나 폴라로이드로 찍었다 해서 모두가 다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DSLR로 찍고 사진 옮기는 것도 귀찮아 다시 안 보는 사람들도 봤을 정도예요. 또한 인화가 귀찮으니까 디지털로 찍고 바로 공유하는 거죠. 사진을 다시 보는지 안 보는지는 각자의 성향과 습관에 달렸지, 폰카를 쓰는지 비싼 카메라를 쓰는지에 달린 게 절대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부 사람들이 죽고 못 사는 비비안 마이어를 꺼내 들 수 있습니다. 최근 자본의 힘으로 급 거장 취급을 받는 그녀는 살아생전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자기가 찍은 사진을 자기도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보는 게 뭡니까. 인화도 현상도 안 한 게 절반 이상이에요.
필카 시절에도, 디지털 시절에도, 그리고 폰카 시절에도 다시 볼 사람은 다시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볼 뿐입니다. 무슨 카메라를 쓰느냐에 따라 다시 보고 안 보고가 결정되는 게 절대 아니에요. 대표적인 오류 1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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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이 적을수록 창의성은 늘어나요. 경험으로 알아요. 근데 모든 사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걸 창의성으로 볼 수 있을까요?
반론
폰카 앱의 각종 앱, 예를 들어 죄다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속 하늘로 바꿔주는 앱 같은 걸 보면 결국 누가 하든 다 똑같아서 창의성과 관계가 얼핏 없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기능과 기능 또는 앱과 앱의 조합,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기어코 남다른 창의성을 드러내는 뛰어난 폰카 크리에이터가 적잖게 존재해요.
그런 걸 보면 ‘창의성이란 진짜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창의성이란 기존의 상상이나 상식을 초월하기에 창의성인 겁니다. 저 감독님은 실제로 폰카 앱 같은 걸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폰카 앱으론 창의성이 나타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계신 거예요.
오히려 DSLR이나 미러리스 쓰는 사람들의 사진이야말로 요즘엔 창의적인 게 전혀 없다 싶을 수준입니다. 폰카, 폰카 앱은 몰개성에 창의성 없고 DSLR이나 미러리스, 필름으로 찍어야 창의성이 생긴다? 이런 거야말로 진짜 대표적인 오류 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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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 자신도 셀카를 찍어요. 하지만 이건 사진이 아니죠. 거울을 들여다보는 거지 사진 찍는 행위는 아닌 겁니다.
반론
거울은 나 혼자 보는데, 요즘의 셀카는 남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입니다. 수많은 남자가 반백 년 넘는 시간 동안 여성이 화장대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관심했죠. 그리고 이 작가분 또한 그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화장대 거울 속 나를 만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했기에 작금의 인스타그램 주가가 하늘 위에 있는 겁니다. 저 감독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 같은데 요즘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거울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타인의 거울을 들여다보기 위해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또 지갑을 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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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 세계를 그림보다 더 진실하게 기록하기 위해 발명됐어요. 하지만 이제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당연히 어떤 조작이 있었겠구나 생각해요.
반론
아뇨. 사진은 그저 빛을 반영구적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가 하는 과학 실험의 결과로 발명되었고, 발명되자마자 바로 진실을 호도하고 거짓을 퍼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당연히 조작이 있겠구나 생각하는 건 폰카 앱이나 포토샵 탓이 아니라 헤르만 괴링 같은 정치가, 황색언론, 스티브 맥커리 같은 일부 작가들 탓입니다.
요즘도 정치가들이 선거철마다 시장 가서 서민들 손 잡고 사진 찍는 것도 그 거짓된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서잖아요? 사진이 진실과 거리가 멀게 된 것이 단순하게 폰카 탓인 게 아닙니다. 사진은 그 태생부터가 그 활용목적이 진실의 전달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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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행위는 사진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사진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 행위죠. 여기에 대한 새로운 이름을 찾고 있어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면 알려주시겠어요?
반론
즉 ‘사진을 찍는 행위는 매우 고상하고 고차원적인 예술적 행위지만 폰카는 그렇지 못하므로 이름부터 다르게 지어 그런 하등한 행위랑 내가 하는 고차원적 예술적 행위랑 구분하고 싶군요’라는 뜻입니다(…) 세계적 석학, 명사, 예술가 중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으로서 그들의 영역을 지키고 구분하고자 하는 분들이 종종 있죠.
이 인터뷰만 보는 한 빔 벤더스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전형인 것 같네요. 폰카 이렇게 무시하시는데… 정작 아이폰5s로 영화 찍어 여러 영화제에 입상하고 주목을 모은 영화감독 숀 베이커 같은 사람을 어찌 평가할지 궁금할 정도예요.
기존 사회 상류층이 즐기는 유서 깊고 많은 교육이 필요한 클래식이나 미술에 들어가지 못하기에 자기들이 새로운 기득권이 되고자 원하는 중산층이, 사진이나 영화 같은 인스턴트한 것들을 새로운 예술로 포장하고 내세워 지배구조를 흔들길 원하면서도 하류층들을 견제하는 것을 지적했던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을 온몸으로 모여주시는 대표적 케이스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예술병·작가병 걸리면 약도 없다 그랬죠? 바로 이 정도로 약이 없습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