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분 중 가끔 보면 아주 오래전의 폴라로이드 느낌 사진이라든가 은염 필름 느낌의 사진 등 요컨대 과거의 표현법에 매혹되고 이를 재현, 복각, 추종하는 경우를 생각보다 많이 접합니다. 특히 나이 든 분들보다 오히려 젊은 층에게서 자주 보여요. 아마도 또래가 다 똑같은 디지털 카메라를 쓰다 보니 개성 상실처럼 느껴져서 자기만의 개성을 획득하고 좀 튀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 외 여러가지 다른 이유가 각각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필름/필름느낌 사진들이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위치한 익숙함과 그리움을 아주 강하게 자극한다는 사실은 절대 부정할 수 없어요. 다른 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런 식으로 사진을 즐기는 것 또한 그분들의 자유이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은 코닥이 흑백 필름 대량 생산 체계를 막 갖추던 1919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의 역사가 이제 겨우 100년 남짓이건만 사람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고 모색하며 시험하기보다는 검증된 과거 대가들의 표현법과 방법에 매몰되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저 개인적으론 아마 프로 막론하고 작품활동 하는 수많은 분의 사진을 접할 때 과거로의 회귀를 표명하신 분들에 대한 평가에 박해지고, 뭐가 되었건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방법과 표현을 시도하는 분들에 대해 좀 더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기왕이면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니 만큼 뭔가 더 새롭고 참신한 걸 보고 싶거든요.
뭐 역설적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참신함을 획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건 아마 아주 드문 경우가 되겠죠. 그보단 과거의 거장들 흉내 낸답시고 어렵고 힘들게 사는 분들 흑백으로 몰래 찍어 예술가인 양 할 확률이 높은 게 현실일 겁니다. 물론 골목이나 가족의 추억 등을 남기는 기록적 성격이 강한 사진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단 좀 더 예술지향적이고 회화적인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인 거죠.
예전에도 이야기 한 적 몇 번 있습니다만 현행 디지털 카메라에 사용되는 디지털 센서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지 못합니다. 과거엔 흑백이 너무 당연한 거고 컬러가 과보정처럼 느껴졌다면, 현대엔 컬러가 당연한 거고 흑백이야말로 과보정 포샵질 사진의 끝판왕입니다. 그 과보정 포샵 끝판왕인 흑백사진 화질 다 뭉개지는 SNS에 떡 하니 올려놓고 ‘쯧쯧쯧 요즘 컬러 찍는 사람들은 HDR이니 뭐니 포샵을 너무해서 문제야~’ 이러면 정말 옆에서 뭐라 말하기가 어려워요. (…)
이렇듯 국내 사진관련 평가나 전시회등에서 가장 성토의 대상이 되는 것중 하나가 강한 채도의 색에 대한 겁니다. 국내 사진관련 평론가들은 색 왜곡에 대해 무슨 강박관념을 가진 양 색이 좀 강하다 싶은 사진은 예외 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곤 합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같은 예외적 경우 빼고 국내 이름난 사진전에서 강채도 사진이 상 받는 걸 전 솔직히 본 적이 없어요.
색이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국내 사진계에는 그만큼 만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색을 왜곡하는 흑백사진에 대해서는 세상에 그렇게 관대할 수가 없어요. 사진 뒤 배경에 붓이나 포토샵으로 흰칠 검은색 먹칠을 해도 좋다고 상을 줍니다. 레알로. 농담 아니고 진짜로요. 한두 번이 아니에요.
국내 몇몇 사진 관련 단체의 사진전, 사진대회 등의 출품작이나 수상작도 보면 지금이 2020년이라는 사실을 망각케 할만큼 과거지향적입니다. 해외에서도 그런 경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에요. 뭣보다도 국내 사진 대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적 소재’ ‘한국적 느낌’에 지나치게 연연합니다. 그러니 해외 사진들과 나란히 섰을 때 경쟁력이 없는 거예요. 해외의 좋은 사진들은 보면 점점 국경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국내 사진전들은 수상 기준이 ‘한국적인 거’에 얽매여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가요.
그리고 그 대상이 되는 소재는 반드시 소위 말하는 한국적인 것들입니다. 탈, 불상, 한복 입은 노인, 무너져가는 사찰, 승무… 신세대 찍으면 수상권과는 영원히 바이바이예요. 외국인도 어디 전쟁터 난민 내지는 이슬람 여인처럼 이국적 색이 강한 사람을 찍어야만 합니다.
오죽하면 상 타려면 상 타기 위한 공식을 지키라는 말이 선배들로부터 후배들에게 암암리에 전해지겠습니까. 이러다 보니 국내 사진 관련 상들의 권위는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을 정도로 무가치한데 그나마 그것밖에 없으니 다들 한국적인 거 확대·재생산해서 너도 나도 상 한 번 타보자… 이게 바로 고인물이고 타파해야 할 적폐며 새로운 예술을 위해 일신해야 할 고정관념이에요.
원래 예술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없어야 바람직합니다. 근데 유독 한국, 유독 사진계는 없는 국경을 기어이 만들지 않고는 성이 풀리지 않는 분들이 위에 앉아 계신 것 같아 답답해요. 보다 보면 막 없던 암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예요. 그놈의 한국 전통 유교… 그런 거 빼고 순수하게 사진으로 말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2020년대에 1920년대 느낌의 사진이 최고다 치켜세우기보다는, 새로운 표현법을 찾아내지 못해 과거로 도망치기보다는, 여태까지 없던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는 그런 모습의 선구자적 도전 자세를 좀 더 많이 보고 싶다… 그냥 관객으로서 그런 생각을 좀 해봅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