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측과 책을 출간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계약서를 작성한다. 초짜 저자는 계약이 처음이다 보니 과연 내가 합리적인 계약서를 들고 있는 것인지, 노예 계약서를 들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기준조차 없어 고민만 커질 테다. 이참에 그동안 작성했던 출판 계약서 서류뭉치를 책상 옆에 늘어놓고 살펴본다.
큰 틀에서는 일맥상통하지만, 출판사 별로 계약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은근히 차이나는 구석들이 적지 않다. 계약서의 딱딱한 법률용어를 구체적으로 풀어 촘촘하게 해설할 생각은 없다. 나도 그런 건 잘 모르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원하지 않으리라. 내가 저자로서 경험하면서, 구체적으로 알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 위주로 설명한다.
저자와 출판사의 관계
계약서를 어느 시점에 쓰는가? 답부터 얘기하자면 출판사가 계약하고 싶은 시점에 한다. 내 경우를 봐도 책의 콘셉트와 목차 정도만 끼적인 A4 용지 1~2장짜리 기획서로 출판사와 계약을 한 적도 있는 반면, 책의 절반 정도를 써놓고도 결국 계약을 하지 않기도 했다.
심지어는 책의 기획도 없는 상황에서 우선 계약서부터 작성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우선 소정의 계약금(선인세)을 지급할 테니, 무슨 책을 쓸 지는 천천히 고민해 보자는 게다. 출판사 측에서 욕심을 내는 저자에게는 이런 제안을 하기도 한다. 나라는 저자를 좋게 봐줬기 때문에 그런 과감한 제안을 했으리라.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나 아무래도 너무 부담스러워 최대한 예의를 갖춰 거절한 기억이 난다. 요컨대 돈줄을 쥔 곳이 출판사니 그 돈줄을 언제 풀지도 출판사가 결정하는 것이다.
저자와 출판사가 계약을 체결하면, 저자는 ‘저작권자’가 되고 출판사는 ‘출판권자’가 된다. 저작권copyright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인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독점적 권리를 뜻한다. 출판권publication right은 저작자가 스스로 그 저작물을 출판할 권리 및 저작자로부터 저작물을 출판할 권리를 인수한 자가 그 저작물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즉 출판 계약을 한다는 것은 출판사가 저작권자인 저자로부터 출판권을 인수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계약 존속 기간은 계약일로부터 시작해서 초판 1쇄를 발행한 이후 5년간 유효하다고 내가 작성한 계약서들에 적혀있다.
인세 계약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인세는 초짜 저자의 경우 7~8% 정도에 계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도서 정가의 10%다. 내가 쓴 계약서에도 대부분 인세는 10%로 적혀있다. 다만 인세를 지급하는 방식이 출판사마다 꽤 차이가 있다. 내가 가진 계약서에서 몇 가지 지급방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세는 10%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 A출판사의 경우
인세 및 원고료 지급 시기와 방법은 초판 1쇄는 발행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지급하며, 2쇄 인세는 3쇄 발행 후 1개월 이내에, 3쇄 인세는 4쇄 발행 후 1개월 이내에 판매부수로 지급한다. (다만 초판 1쇄에서는 홍보 및 기증용으로 사용할 300부에 대해 인세를 면제한다. 그리고 절판 되었을 경우에 최종 쇄의 인세는 최종 쇄 발행일로부터 1년이 경과한 후에 그날 기준으로 반품 및 재고 부수를 공제한 순판매 부수에 한해 정산 지급한다.)
이런 내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정확하게 무슨 얘기인지 감이 잘 안 잡힐 것이다. 그래서 A출판사의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정가 15,000원짜리 책을 초판 1쇄 2,000권 인쇄해서 3월 1일에 발행했다. 인세는 10%이니 권 당 1,500원이 저자의 몫이며, 계약 당시 계약금(선인세)으로 1백만 원을 받은 상황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초판 1쇄의 경우 홍보 및 기증용 300부를 인세 계산에서 제외하니 1,700권에 대한 인세 2백5십5만 원이 발행일(3월 1일)로부터 1개월 안에 지급된다. 그런데 계약금(선인세)으로 1백만 원을 미리 지급받았으니 2백5십5만 원에서 1백만 원을 제외한 1백5십5만원을 지급받는다.
다행히 책의 반응이 좋아 4월 3일에 초판 2쇄를 추가로 1,000부 찍었다. 그런데 여기부터 달라진다. 초판 2쇄를 추가로 1,000부 찍었다고 바로 1개월 안에 인세가 지급되지 않는다. 계약서에 따르면 2쇄에 대한 인세는, 나중에 2쇄가 다 팔리고 3쇄를 추가로 찍은 후 1개월 안에 지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저자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겠다. 왜 초판 1쇄는 찍고 나서 1개월 안에 바로 주는데, 2쇄부터는 안 그러는지 말이다.
출판사의 입장은 이렇다. 기본적으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서점이 출판사에 책을 주문해 가져가고 대금을 출판사에 지불해야 돈이 들어온다. 2쇄를 추가로 1,000부 찍었다고 바로 서점에서 다 가져가고 돈이 다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계속 주문이 들어오고 2쇄 1,000부가 다 나가야 온전히 수금이 된다. 그래서 추가로 3쇄를 찍을 때 2쇄 분에 대한 인세를 지급하는 것이다. 서점에서 온전히 수금 받아서 그때 저자 몫인 인세를 챙겨주겠다는 셈법이다.
인세 지급 시기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 B출판사의 경우
1. 을(출판사)은 갑(저자)에 대하여 책 정가의 일정 비율을 인세로 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금액에 실판매부수(판매부수–반품부수)를 곱한 금액을 저작권 사용료로 지불한다. 단, 초판의 경우에는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지불한다.
2. . 저작권 사용료의 지급 방법 및 시기는 다음과 같이 정한다.
가. 계약금: 100만 원을 이 계약 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지급(단, 이 계약금은 향후 발생할 저작권 사용료의 선급금이며, 초판 및 그 이후의 저작권 사용료 지급시 최우선적으로 공제한다)
나. 초판의 저작권 사용료: 출간일 익월 20일에 지급
다. 재쇄 이후의 저작권 사용료: 매3개월(1년을 4분기로 나눈 분기별)마다 정산하여 익월 20일에 지급3. 을이 납본, 증정, 신간안내, 광고, 홍보용으로 배표하는 책자에 한해서 갑은 저작권 사용료를 면제한다. 이때 면제부수는 초판 1쇄의 경우 400부로 한다.
내용이 길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예컨대 15,000원짜리 책을 초판 1쇄 3,000부 찍어서 3월 1일에 발행했다. 그러면 홍보용 400부를 제외하고 2,600부에 대한 인세를 익월 20일인 4월 20일에 지급한다, 물론 계약금 제외하고. 여기까지는 A출판사와 비슷한데, 2쇄부터는 지급방식이 판이하다.
B출판사는 1년을 4분기로 나눠서 매분기마다 실판매부수를 계산해 인세를 지급한다. 예컨대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판매부수가 1,000부고 서점에서 출판사로 반품된 부수가 100부면 실판매부수 900부에 대한 인세를 익월 20일인 4월 20일에 지급한다. 이렇게 매년 1월, 4월, 7월, 10월에 인세를 계산해주는 방식이다.
A출판사의 경우처럼 한 쇄가 다 소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3개월마다 꼬박꼬박 실판매부수로 인세를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인세 계산방식이라 하겠다. 이렇게 3개월마다 계산해주는 방식도 있지만, 6개월마다 계산해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1년에 한 번씩 계산해주는 출판사도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by-case다.
대형 출판사는 좀 더 인세 지급이 깔끔하다
# C출판사의 경우
① “을(출판사)”은 출판권 설정의 대가(저작권료)로, 위 저작물의 정가의 10%(인세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발행부수를 곱한 금액을 “갑(저자)”에게 지급한다. 이때 제세를 공제하고 지급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출판권 설정 대가의 지급 시기는 매쇄 발행 후 익월 말일로 한다.
③ “갑”은 납본·증정·신간안내·서평·홍보 등을 위하여 제공되는 부수와, 유통 과정에서 반품·파손·멸실되거나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폐기 처분되는 부수에 대하여는 출판권 설정 대가를 면제한다. 다만 그 부수는 매쇄당 10%를 초과할 수 없다.
④ 제4항의 규정에 따라 “갑”은 “을”에게 초판 1쇄의 경우 발행부수의 10%, 이후 중쇄의 경우 발행부수의 5%에 해당하는 여분 제작을 허락하기로 한다.
C출판사와 계약할 때 작성한 계약서는 나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계약서를 잘못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앞서 언급한 중복되는 내용은 제외하고 C출판사 계약서의 핵심만 말하겠다. 한마디로 2쇄 1,000부를 인쇄하면 그 다음 달 말에 그냥 2쇄 1,000부 전체에 대한 인세를 지급하겠다는 얘기다. A출판사 계약서가 3쇄를 발행한 이후 2쇄 인세를 정산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인 셈이다.
B출판사가 판매된 대로 정산해 주는 것과도 다르다. 이건 그냥 판매되기 전에 인세부터 주겠다는 얘기다. 나는 계약하면서 출판사 관계자에게 혹시 계약서 잘못 쓴 것 아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야 이렇게만 정산해준다면 대환영이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2쇄가 판매되기도 전에 2쇄 분 전체에 대해 저자에게 인세 지급하는 계약이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내용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글에 애착을 갖는 출판사
A, B, C출판사의 인세 지급방식의 차이를 이해했다면 당연히 여러분은 향후 내가 C출판사하고만 책을 계약하겠다고 판단할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인세지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C출판사가 유리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해당 출판사가 내 원고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정성들여 작업을 해 주느냐에 있다.
대형 출판사의 경우 자금에서 여력이 있다 보니 인세 지급방식에서 B출판사나 C출판사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출간하는 책의 종수가 많다보니 마케팅에 힘을 실어주는 책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중소규모 출판사는 A출판사의 인세 지급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책의 출간 종수가 적다 보니, 출간하는 모든 책에 사활을 걸고 마케팅 한다.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출판사를 정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의 규모가 크다고 꼭 책을 잘 만드는 것도 아니다. 중소규모의 출판사지만 완성도 높은 책을 꾸준히 내서 독자들의 신뢰를 얻는 출판사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해당 출판사가 기존에 출간한 책의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영세한 곳은 자칫 경영상태 악화로 인세를 떼어먹힐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출판계가 유래 없는 불황이다 보니 초판 1쇄 인세도 제대로 보전해주지 않는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단다.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제시하는 계약서에 거의 그대로 사인하는 편이다. 소정의 계약금에 인세 10%가 나의 가이드라인이다. 지급방식은 출판사가 기존에 계약하는 방식을 존중한다.
C출판사는 이렇게 인세를 지급하니 A출판사에서도 그렇게 지급해주시오, 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면 A출판사와 계약하는 저자 대부분은 똑같은 지급방식의 계약서를 작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나한테만 불리한 지급방식의 계약서를 들이밀까? 그리 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각 출판사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니 그것을 존중한다. 다만 책은 신경 써서 잘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꼭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이 외에 계약서 내용 중에서 알아두면 좋을 내용 몇 가지만 언급한다.
1. 우선 증정부수에 대한 내용이다. 초판1쇄를 발행하면 출판사는 10권 혹은 20권을 저자에게 증정한다. 이후 증쇄 발행 시 각 쇄 당 2부씩 제공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출판사도 있다. 증정부수 외에 추가로 책이 필요하면 저자는 계약 내용에 따라 정가의 60~70% 가격으로 출판사로부터 구매할 수 있다. 저자한테 책 그냥 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2. 종이책을 동시에 전자책으로 출간했을 경우에, 전자책 판매에 대한 인세 정산방식은 내 경험 상 출판사마다 차이가 있다. 예컨대 A출판사는 전자책 판매이익의 50%를 저자에게 인세로 지불하는 반면, B출판사는 전자책 판매에도 종이책의 인세(인세율이 아니다)를 동일하게 적용한다. 그러니까 B출판사의 경우는 종이책 15,000원의 인세 1,500원을 전자책 1권 판매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얘기다. 아직 전자책 시장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시장이 확장되면 특정한 방향으로 수렴될 것으로 판단한다.
3. 언급하기 싫은 것이라 마지막까지 미뤘지만, 계약서에서 저자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항목이 있다. 원고 마감 시기다. 계약서에는 몇 년 몇 월 며칠까지 완전한 원고를 출판사에 인도해야 한다고 명시된다. 신중하게 잘 쓰시라. 나중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조금 늦는다고 출판사에서 야박하게 계약 파기하거나 위약금 달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른다.
관련 글 시리즈
- 책을 쓰고 싶은 예비 작가가 꼭 알아야 할 기초
- 내 글로 타인을 감동시키는 방법
- 글에 자신만의 개성을 입히는 법
- 당신은 왜 책을 쓰려 하는가?
- 책을 쓰기 전, 책이 나올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 출판의 기본: 어떤 출판사와 어떤 계약을 해야 할까?
chanel espadrilles5 Styles That Defined Entire Eras Were Mad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