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클리닉>이라는 책을 쓴 것이 인연이 되어 한 강연 전문 기업에서 고정적으로 글쓰기 강의를 했다. 강의 첫 시간에는 각자 소개를 하는데, 나는 미리 컴퓨터에 메모장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름
하시는 일
글쓰기 강의 신청 이유
그러고 나서 글자크기를 키워 빔 프로젝터 화면에 잘 보이도록 띄워놓는다. 글쓰기 강의를 20기 넘게 진행하다보니 생긴 노하우다. 그냥 편하게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면 곧잘 자연스럽게 본인의 얘기를 풀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긴장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굴만 붉히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빔 프로젝터 화면에 ‘이름, 하시는 일, 글쓰기 강의 신청 이유’라고 띄워놓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차분하게 순서대로 본인 소개를 한다.
책이… 쓰고 싶어요
“인생에서 언젠가는 책을 꼭 써보고 싶어서 글쓰기 강의를 신청했습니다.”
글쓰기 강의 신청 이유를 얘기할 때 자주 나오는 얘기다. 어떤 아주머니는 동화를 쓰고 싶다고 한다. 멀리 대구에서 내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온 고등학생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그 경험을 엮어 여행서를 쓰고 싶단다. 타로 카드 전문가 한 분은 언젠가 타로 카드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며 강의 때마다 맨 앞자리에 앉는다.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부각되던 시기에 내 강의를 들은 한 분은, 안철수의 심리를 분석해서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안철수의 진짜 모습을 책으로 펴내고 싶다며 뿔테 안경 너머로 강렬한 눈빛을 쏘아댔다. 이 분은 이메일로 나에게 목차와 샘플원고를 보내 자문을 구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책쓰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왜 책을 써서 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 그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내기 전까지는 소비 트렌드 관련 전문가로서 해당 분야의 종사자만이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2010년 12월에 펴낸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 멘토 신드롬을 일으키며 300만부가 넘게 판매되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김난도 교수는 일약 대한민국 모든 청년의 멘토가 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가 됐고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었다.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독보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인 이지성씨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다. 책을 쓰고 싶어서 수많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족족 퇴짜만 맞다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꿈꾸는 다락방>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업 작가로 명성을 날리며 거액의 인세를 벌었다.
출판시장의 현실: 2쇄도 찍기 매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성공이란 무엇일까? 최단시간에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거두는 것이 아닐까. 장사를 하려면 밑천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을 쓰는 것은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최소비용이다. 책을 쓰는 기간은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나 빨리 쓰면 한 달 만에도 한 권을 뚝딱 쓰는 경우가 있으니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면 한순간에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책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최단시간에 최소비용으로 잘만 되면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책쓰기니 말이다.
나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책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런 종류의 환상을 가차 없이 깨버린다. 한국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12년에 국내 출판사들이 발행한 책 종수는 3만 9767종이다. 이중 반응이 좋은 극히 일부의 책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책은 2쇄도 채 찍지 못한다.
‘2판 3쇄’니 ‘초판 2쇄’니 하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좀 부연설명을 하자면, 책을 처음 인쇄했을 때가 ‘초판 1쇄’다. 그런데 1쇄로 찍은 책이 다 나가서 추가로 인쇄를 하게 되면 그것이 초판 2쇄다. 2쇄가 다 팔려서 추가로 더 찍으면 초판 3쇄, 이런 식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계속 쇄를 거듭하다가 저자가 책 내용 일부를 수정해서 본문이 바뀌면 바로 이때 ‘판’이 바뀌는 것이다. 수정해서 새로 찍은 것이 2판 1쇄가 된다. 다 팔리면 추가로 인쇄를 하는데 이것이 2판 2쇄다.
그러니 대부분의 책이 초판 2쇄도 찍지 못한다는 얘기는 1쇄로 찍은 2,000부가 채 다 팔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출판계가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얘기는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2쇄를 찍지 못할 때 예상 수입: 255만 원
자! 그러면 이제 내가 쓴 책이 초판 1쇄만 찍고 말았을 때 인세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한 번 계산해보자. 일반적으로 저자의 인세율은 경우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략 도서 정가의 10% 정도다. 예컨대 책의 정가가 15,000원이라면 그 책이 팔렸을 때 저자의 몫은 1,500원이라는 얘기다. 보통 출판사에서는 초판 1쇄를 찍어서 서점에 배본하면 초판 1쇄가 다 팔리든 그렇지 않든 초판 1쇄에 대한 인세는 저자에게 지급을 한다.
1권에 1,500원씩 인세를 받으니 여기다가 2,000권을 곱하면 300만원이 나온다. 그런데 2,000권을 인쇄했다고 이것이 다 판매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략 300권 정도는 언론사나 각종 기관에 홍보용으로 배포한다. 이 홍보용 부수는 판매된 것이 아니니 인세계산에서 제외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인세는 1,700권으로 계산하게 되니 255만원으로 줄어든다. 물론 인세수입에서 세금을 떼면 액수는 더욱 줄어들지만 그것까지 계산하면 너무 처량하니 그만두자.
보통 저자는 출판사와 책을 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면 소정의 계약금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백만원 정도를 계약금으로 받는다. 그렇다면 이 계약금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선인세’다. 나중에 책이 나오면 받을 인세를 미리 당겨 받는 것일 뿐이다. 초판 1쇄 2,000권이 나왔을 때 홍보용 300부를 제외한 1,700부 인세가 255만원이니, 계약할 때 100만원 미리 받고 나중에 책 나오면 추가로 155만원 받는다는 얘기다.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인세 255만원 벌려고 책을 쓰겠는가? 무시무시한 질문 아닌가. 책을 보름에 한 권씩 쓸 수 있다면 모를까. 고작 255만원 벌겠다고 몇 개월에서 1년을 끙끙대며 책 원고를 쓰는 것이 과연 경제적인 관점에서 현명한 일이냐 말이다.
내가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자기기만하지 말라. 매년 4만권 가까이 쏟아져 나오는 책 중에 저자에게 목돈을 안겨주는 베스트셀러는 손에 꼽을 정도일 뿐이다. 내용이 좋은 책이라고 꼭 판매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지는 그저 하늘만이 알 뿐이다. 그런데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차라리 로또를 사라고 권하고 싶다.
나름 베스트셀러? 5년 넘어 직장인 연봉 수준
지금까지 내가 쓴 책 중에 가장 판매가 많이 된 책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다. 책 잘 안 나가기로 악명 높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나마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인데 지금까지 대략 25,000권 가량 찍어냈다.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되다보니 간간이 중국 독자에게 메일도 온다. 이 책은 2009년에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올해의 책 후보도서로 오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책값이 15,000원이고 내가 계약한 인세율이 10%이니 권당 1,500원이 내 몫이다. 여기에 25,000권을 곱하면 인세로 3천7백5십만원이 나온다. 분명 적지 않은 액수긴 하지만 이 책이 2008년 12월에 출간됐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회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이자 2009년 올해의 책 후보도서였고 중국에서도 번역출간 된 책이 2008년부터 2014년 현재까지 3천7백5십만원을 나에게 벌어준 것이다.
내 또래 회사원 1년 연봉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 아닌가. 이것이 2013년 경향신문에서 선정한 뉴 파워라이터 20인에 뽑힌 저자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오죽하면 내가 2013년 10월 16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 이런 내용을 썼을까.
대한민국에서 순전하게 자신이 쓴 글값만으로 기초적인 생계가 가능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전문작가의 삶은 기적이다. 지속 불가능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뜨고 있다는데, 나는 언제쯤 우리 동네 문방구에서 로또를 사지 않게 될까? 오늘도 인생이라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도록 글이라는 고단한 페달을 쉬지 않고 밟는다.
책을 써야 하는 이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서울대학교에서 전자공학 분야 석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 편하게 대기업에서 연구원하면서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살면 될 것을, 왜 직장 때려치우고 간헐적인 수입에 불안해하며 책 쓰고 사느냐고 말이다. 여러분도 나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도대체 왜 책 쓰며 사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책을 쓴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목구멍 밑까지 차올라 도저히 내뱉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그런 정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에 책을 쓴다. 이런 나의 대답을 들으면 너무 허탈할 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그 누가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데 책을 쓰겠냐고, 다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 책을 쓰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냐고 목에 핏대를 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질문을 좀 바꿔보겠다.
몇 개월, 어쩌면 길게는 1년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긴 시간을 고뇌해야 하는 책쓰기. 원고를 쓴다고 해서 그 어떤 출판사가 확실하게 책을 내준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 출판사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동안 책 쓰는 데에 들였던 그 모든 공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는 상황. 다행히 좋은 출판사를 만나 책을 낼 수 있게 됐지만 그동안 책쓰기에 들인 공력에 대한 확실한 경제적 대가는 255만원 정도밖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이 모든 상황’을 감수하더라도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목구멍 밑까지 차올라 도저히 내뱉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얘기라는 표현은 이런 상황을 말한 것이다. 만약에 당신의 대답이 ‘YES’라면 당신은 책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다. 하지만 선뜻 ‘YES’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저 책 쓰고 싶은 이유가 돈도 벌고 이름 좀 날리고 싶어서라면 솔직히 책쓰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확률이 너무 낮다. 차라리 장사를 하는 것이 더 현명하리라.
당신이 꼭 던져야 할 질문
나는 항상 새로운 책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원고가 책으로 출간되어 초판 1쇄도 다 팔리지 않을 정도로 쫄딱 망하더라도 책을 쓴 것에 대해 후회가 없겠는가?’
이 질문에 ‘YES’라는 대답을 던질 수 있을 때 책을 쓴다. 내가 정말 절실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책을 쓸 때 나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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