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년지기 친구 A는 대형병원의 간호사다. 정형외과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는데, 진료과목 특성상 주로 노인들을 상대한다. 노인의 몸은 세월을 견뎌내며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다. 관절은 삭고 허리는 구부러들고 작은 충격에도 뼈가 으스러진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A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존엄이 없는 삶'이라고 했다. 숨쉬기 위해 나를 버려야 한다면? 자식들은 부모의 병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간의 불효를 만회하고자, 막대한 비용을 … [Read more...] about ‘잘’ 죽고 싶은 모두를 위한 이야기
세상에는 왜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많은 걸까?
말 같지도 않은 말? 요점이 없어서 그런겁니다.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논란 뒤엔 언제나 그랬듯 눈물과 명분으로 잘 버무려진 여러 종류의 사과가 뒤따른다. 그들의 사과문은 장황했지만 정작 그들은 요점을 말하지 못했다. 이때,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아주 적절한 명언이 떠오른다. 거창한 자리에서 사활을 건 PT를 앞둔 사람만이 다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는 요점을 말해야 하는 일이 꽤 많다. 상대에게 생각을 관철시켜야 하는 일상 매 순간이 곧 요점과의 전쟁인 … [Read more...] about 세상에는 왜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많은 걸까?
‘천화’, 억지로 꿰맨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영화 <천화>(2017)는 경계를 바라본다. 모든 사이에는 경계가 있고 그 선을 지나는 모든 것들은 왜곡 또는 차단된다. 삶과 죽음, 시간과 기억,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모두 그러하듯이. 어쩌면 <코코>(2017)와 대척점에 놓인 이야기일 것이다. 후자가 기억으로써 죽음을 초월한 유대를 그린다면 전자는 기억의 상실과 삶의 단절을 다룬다. 고승은 홀로 산에 올라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깊은 숲속에 다다르면 몸을 누이고 주변의 낙엽으로 … [Read more...] about ‘천화’, 억지로 꿰맨 생과 사의 경계에서
‘1987’: 영화가 말하지 않는 몇 가지
※ 본 글은 영화 <1987>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으시면 이 글을 닫아주세요. 제 5 공화국 시절, 한 대학생이 경찰에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하자 경찰과 검찰이 이를 은폐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국민에게 공포를 심고, 정치 공작을 펼치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웠던 정부의 '빨갱이 색출 작전'이 끝내 앞날이 창창했던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정부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모든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하지만, 보잘것없던 … [Read more...] about ‘1987’: 영화가 말하지 않는 몇 가지
언제나 ‘여자’가 문제라고?: 여자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남자들의 역사
몇 년 전,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을 좌우’한다는 뉴스가 세간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통계상 근육량이 많은 사람은 보수적 성향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진보적 성향을 갖는다나 뭐라나. 유전자가 정치 성향을 결정한다는 뉴스의 논리는 자칫 우생학적인 추론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차라리 건강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정도의 시간과 자본을 가진 사람이 정치적으로 보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짓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여자라는 문제』의 저자 재키 플레밍은 ‘알통설’만큼이나 … [Read more...] about 언제나 ‘여자’가 문제라고?: 여자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남자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