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년지기 친구 A는 대형병원의 간호사다. 정형외과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는데, 진료과목 특성상 주로 노인들을 상대한다. 노인의 몸은 세월을 견뎌내며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다. 관절은 삭고 허리는 구부러들고 작은 충격에도 뼈가 으스러진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A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존엄이 없는 삶’이라고 했다.
숨쉬기 위해 나를 버려야 한다면?
자식들은 부모의 병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간의 불효를 만회하고자,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무리한 수술을 감행한다. ‘이대론 보내드릴 수 없다’며 오열하면서도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동을 떠나고, 환자는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는다.
어느 날은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로 쾌활한 할머니가 입원을 했다. 간호사들은 그녀의 웃음이 봄을 맞은 소녀 같다고 해서, 봄 여사라 불렀다. 봄 할머니가 병원에 온 건 생존확률 10%의 위험한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환자는 남은 시간을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과 보내고 싶어 하셨어. 손주랑 꽃놀이나 가고 싶은데 자식들이 하도 권해서 입원했다고, 살 만큼 살았는데 수술대 위에서 눈감고 싶진 않다고. 수술 전날 밤새 잠을 못 주무시더라.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고령의 봄 할머니는 무사히 마취에서 깨어났고 그 덕에 얼마간을 더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봄처럼 화사했던 할머니는 사라졌다. 그녀는 두 발로 걸을 수도, 가족들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할머니가 얻은 약간의 삶은 당신이 아닌 지켜보는 이들의 위안을 위한 것이었다. 자식들을 위해 존엄하게 눈감을 권리를 포기했던 것이다. A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숨이 턱 막혔다. 나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미련한 자식 또는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노마 할머니를 만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미있게
노마 할머니는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병마와 싸웠던 딸과 남편의 죽음을 지켜봤기에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독한 약물,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 생사가 긴박하게 오가는 병실의 분위기…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생을 마치기엔 주어진 짧은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고민 끝에 노마 할머니는 인위적으로 죽음을 미루는 대신 남은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치료를 포기하고 미대륙을 횡단하는 캠핑카에 올라탄 것이다. 의료진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아들 팀과 며느리 라미가 노마 할머니와 함께했고, 두 사람은 페이스북 페이지 ‘드라이빙 미스 노마’를 통해 일상을 기록했다. 노마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도전할 용기를, 병에 지지 않을 희망을,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전달했다. 무려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녀의 여행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아흔 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여행
1년 동안 20,900㎞를 달렸고, 32개 주 75개 도시를 찾았다. 발길이 닿는 여행지마다 친절한 이웃들이 근사한 음식을 대접했고 지역 축제나 행사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각지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전 세계 언론들이 취재와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모두가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행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마 할머니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언제나 부끄럼 많은 엄마이자 헌신적인 아내였던 그녀는 여행하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환호하는 대중 앞에서 능숙하게 손을 흔들었으며, 하늘 높이 떠오르는 열기구나 거대한 군함에 오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진짜 모습을 찾게 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노마 할머니는 가장 좋았던 여행지로 언제나 ‘지금 이곳’을 꼽았고 경험하는 모든 ‘현재’를 향유했다. 맞닥뜨린 불행을 받아들이면서도 소소한 즐거움에 두 눈을 반짝였다. 시간이 갈수록 병이 할머니의 몸을 잠식해갔지만 그녀의 영혼은 언제나 맑고 건강했다.
마지막 여행지는 워싱턴주 산후안 섬이었다. 아흔한 번째 생일을 맞은 뒤의 어느 날, 노마 할머니는 그곳에서 삶의 여행을 마쳤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길 원하는가?
할머니와 할머니. 여기 완전히 다른 모습의 생과 사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소멸 앞에 선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끈 건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관계’다. 함께했던 이들에게 남겨질 기억과 감정 말이다.
봄 할머니는 수술로 얻은 시간을 내내 ‘아픈 할머니’로 살았다. 주삿바늘이 여럿 꽂힌 채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 내 휴게 공간에 가는 것이 나들이의 전부였다. 바라보는 가족들은 나날이 힘들어했고 끝내는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반면 노마 할머니는 유쾌한 추억을 두고 갔다. 아들은 그녀에 대해 더 알게 됐고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멀어졌던 마음의 거리를 바짝 좁혔다. 할머니는 짧은 시간이나마 사랑하는 사람들과 원 없이 보낼 수 있었다. 가족뿐 아니라 여행을 지켜본 모두가, 지금까지도 그녀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때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물론 현대 의학을 불신하잔 말이 아니다. 노마 할머니도 정말 필요한 순간엔 진료를 받고 약을 복용한다.)
어차피 할머니가 될 거라면 행복한 할머니로 살다 가야 하지 않겠나. 인간으로서 언젠간 반드시 겪게 될 죽음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를 아름답게 떠나 보낼 수 있기를. 또한 누군가에게 삶의 여행을 즐겁게 끝마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