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같지도 않은 말? 요점이 없어서 그런겁니다.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논란 뒤엔 언제나 그랬듯 눈물과 명분으로 잘 버무려진 여러 종류의 사과가 뒤따른다. 그들의 사과문은 장황했지만 정작 그들은 요점을 말하지 못했다.
이때,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아주 적절한 명언이 떠오른다.
거창한 자리에서 사활을 건 PT를 앞둔 사람만이 다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는 요점을 말해야 하는 일이 꽤 많다. 상대에게 생각을 관철시켜야 하는 일상 매 순간이 곧 요점과의 전쟁인 셈이다.
예를 들어, 흔한 연인 간의 싸움을 살펴보자.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냥 다.”
“이런 식으로 사과하는 게 더 짜증 나.”
이 숨 막히는 대화에는 요점이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요점을 더하면 아래와 같이 변화한다.
“나는 지금 너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네가 부디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길 바라.”
“정말 모르겠어. 직접 말해준다면 다신 같은 실수하지 않을게.”
앞뒤 맞지 않는 문장이 문학적으로 큰 가치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소통을 할 땐 서로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요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엘 슈월츠버그의 『요점만 말하는 책』은 능숙한 말하기를 요구받는 모두를 위해 요점만 말하는 법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전달한다. 자신의 삶을 장황히 회고하는 식의 흔한 지면 채우기에 질렸다면 정말 용건만 말하고 사라지는 이 호방한 ‘말하기 전문가’의 조언에 눈길이 갈 것이다.
책에서 ‘요점을 잘 말한’ 대표 사례로 꼽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2016 그래미 수상 소감을 보자.
(계기)
“저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두 번 받은 최초의 여성으로서 모든 젊은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사례)
살다 보면 여러분의 성공을 깎아 내리거나 여러분의 성취 또는 명성을 가로채려 드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목적)
하지만 여러분이 오직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목표하는 곳에 다다랐을 때 주위를 돌아보면서 여러분을 거기로 데려간 것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기분을 느끼게 될 겁니다.(심경)
오늘 제게 이 순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둥지둥 생각나는 이름을 나열하다가 무대에서 내려가는 몇몇 수상자와 달리 목적, 심정, 계기 등이 아주 명료히 드러난 멘트가 아닐 수 없다.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를 표현하는 단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포괄적이지는 않은지를 스스로 묻고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모두 끝낸 ‘요점’을 두고 조엘 슈월츠버그는 ‘깔끔한 착지’라고 표현한다. 다른 허튼 문장들로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화자가 떠난 뒤에도 청중이 그의 말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착지 말이다.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안개처럼 자욱한 요즘, 이 책의 가치는 더욱 가치를 가진다. 스스로의 생각을 돌아본 뒤 바로 세울 여유와 양심이 사라진 시대에서 더더욱 잘 말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안개 같은 모호함이 우리를 침몰시킬 것이 분명하다.
특히 사과를 더럽게도 못하는 ‘가해자’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사과는 죄를 겸허히 인정하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숭고한 행위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살펴본 연인들의 대화처럼 숨 막히는 말만 있을 뿐이다.
바라건대, 제발 요점을 말해 주길 원한다. 과오를 인지하고 후회와 죄책감을 뼈에 새긴다는 수사는, 요점을 말한 그다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