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토리텔링과 만화. 인터넷커스텀, 웹툰(2) 에서 이어집니다.
3. 디지털시대의 만화
3.1 무표정하게 턱을 괴고 스크롤 내린 사람 추천.
웹툰(webtoon)은 web과 cartoon의 합성어로, 만화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그 첫 번째 유의한 샘플입니다. 달리 말하면 만화의 ‘디지털세기 인터넷 커스텀’이라고 할 수 있죠. (건담으로 드립친 거니까 알아들어 주세요..)
PC 통신시절에도 온라인 만화가 시도되었는데요, 저도 그걸 PC통신으로 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한 장씩 넘길 때의 그 빡치는 전송 속도도 그렇고 그림판 수준의 그림하며…재미도 없었고요. 그것보다는 출판만화를 인터넷으로 옮겨놓은 것이 나았죠. 원래 있었던 출판만화를 스캔해서 CD롬에 담아 뷰어로 보는 버전도 생겼습니다.
PC통신의 시대가 지나고 인터넷 시대가 들어오면서도 출판만화를 스캔해서 디지털로 옮기는 방식 역시 계속됩니다. 이 방식은 출판만화의 인쇄매체 스토리텔링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미디어에 따른 작법의 변화라고 해 봐야, 뷰어에서 그림이나 텍스트가 깨지지 않도록 큼지막하게 해주는 거라던가, 칸의 크기를 시원하게 키운다거나 정도의 변화였죠.
그러다가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되던 일기툰, 에세이툰, 4컷 만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생긴 포토툰(디지툰), 플래시툰 등에서 웹툰의 가능성이 타진됩니다. 출판만화의 스토리텔링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스노우캣>, <마린블루스>, <파페포포 메모리즈>, <폐인의 세계>, <포엠툰> 등이 있습니다.
이후의 역사를 요약하는 것은 이 글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이렇게 웹툰이 발전하는 동안 텍스트와 그림의 선이 크고 분명해졌고, 배치 순서도 달라지고 밀도는 성글어졌죠. 대신 컬러가 화려해지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강도하 작가의 <큐브릭>은 컬러 자체를 작정하고 스토리텔링의 요소로 사용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색채 심리학에 입각하여 인물의 심리나 상황, 성격 등을 컬러 기호로 연출했습니다. 컬러 한 페이지가 곧 가격 상승을 뜻하는 인쇄 만화였다면 이런 시도는 처음부터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겠죠. (웹툰으로 인기를 끈 다음 출판되는 경우와는 조금 다릅니다. 믿고 가는 거니까요.)
‘턱을 괴고 스크롤 내린 사람 추천’이라는 말도 있듯이, 웹툰을 읽는 방식은 스크롤입니다. 이 스크롤 방식 때문에 컷 연출이 변합니다.
‘한 눈에 보이는 한 화면에서의 전체적인 레이아웃, 컷으로 채취된 순간의 장면들을 다시 지면 위에 특정하게 배열하여 재조립하는 시공간…’ 어쩌고 했던 그거요.
웹툰의 주도적인 양식은 시공간의 변화, 감정의 변화 등을 세로로 배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이책처럼 페이지로 끊어지는 문맥도 없습니다. 그저 스크롤을 내리면서 흐름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변한 것은, 웹툰이 기존의 만화와 달라서가 아닙니다. 만화적 문법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키려고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변한 것은 ‘한 화면’이라는 개념입니다. 한 눈에 보이는 한 화면이란 게 종이책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인터넷에서의 한 화면이란 것은 세로로, 스크롤을 굴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면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림을 배열하여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 그것을 위해 인터넷에 자리잡은 만화는 ‘웹툰’이 된 것입니다.
3.2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비선형적 스토리텔링.
테오도르 넬슨은, 컴퓨터 저장과 스크린 디스플레이는 우리가 더 이상 순차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랜덜 패커; 켄 조던(편), 2004, pp.286).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등장한 웹툰은 단순히 화면의 모양이 달라졌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것은 하이퍼텍스트적 비선형성의 가능성을 호출합니다.
그리고 테드 넬슨이 말한 대로 비선형적으로 스토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선택, 또는 적극적 참여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해 가야 합니다. 필연적으로 인터랙션이 호출되죠. 사용자가 피드백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는 ‘비선형적스토리구성’과 ‘움직임’, ‘소리’등의 인터랙션요소들을 적용한 만화들을 다루고 있는 <오비트 코믹스(http://www.orbitcomics.com> 중, <The Mallway>라는 만화입니다(김용현, 2010. p.43).
물론 스토리는 여전히 선형적인데, 인터랙션만으로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호랑 작가가 잘 쓰죠. <봉천동 귀신>은 제가 무서워서 첨부를 못하겠네요(…) 그림은 첨부하지 못하지만 방식을 설명하자면, 어느 일정한 장면까지 스크롤이 내려가면, 그 다음 씬이 강제로 스크롤링이 되는 인터랙션을 사용했어요. 그 인터랙션으로 귀신이 후다다닥 다가오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했죠. 예고없이 귀신이 뛰어드는 그 순간은, 손에 쥔 마우스로 만화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신선한 순간이었습니다. 비슷하게는 이종범 작가의 닥터 프로스트도 있어요. 특정한 컷에 도착하면 어울리는 음악이나 사운드 이펙트가 나오죠.
이 외에도 <Cyber City 300>은 마우스를 롤오버하면 텍스트와 움직임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만화를 보다가 라디오 버튼을 누르면 진짜로 음악이 나오는 웹툰<Fish World>도 있다고 하네요(김용현, 2010. p.45~46).
만화적 양식을 조금 더 탈피한 비선형+인터랙션 콘텐츠라면 비주얼 노벨이란 것도 있지만, 이것은 소설, 일러스트를 게임적으로 결합한 형태로, 만화만의 예술적 양식과는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스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디지털시대, 웹툰은 어떻게 변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만화의 미래에 대해서 말한 스콧 맥클라우드(Scott McCloud)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루마리나 이집트 벽화 등에 그려졌던 이야기들은, 인쇄미디어를 만나 독특한 시퀀스로 변이하였다. 환경에 적응하는 변이가 바로 지속성 있는 변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디어가 새 시대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또 다시 지속성이 있는, 계속 남아있게 될 돌연변이를 찾게 된다. 지금은 더 새로운 디지털미디어의 시대이다. 우리가 찾는 것은 바로 디지털에 적응한 돌연변이이다.’
즉 인쇄텍스트의 한계를 초월하고, 디지털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여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돌연변이 스토리텔링을 찾는 것이 디지털시대의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선행연구자들은 이것을 인터랙션, 그리고 비선형성에서 찾고 있어요.
스콧 맥클라우드가 말한 비선형적 스토리텔링 만화는 영국의 대니얼 멀린 굿브레이(Daniel Merlin Goodbrey)의 작업에서도 볼 수 있죠. 칸과 칸 사이를 사용자가 움직여 갈 수 있어요.
4. 결론
디지털 시대, 미래의 만화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박제된 인쇄매체에서 디지털미디어로 변화했을 때 무엇이 변했는지를 통찰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근본적인 변화였죠.
하지만 사실 저도 지금은 디지털 만화는 비선형성, 참여성에서 차별적이 될 것 같다고 나대고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만큼의 통찰력은 없어요. 칸을 파괴하고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하이퍼텍스트하게 스토리를 구성한다는 개념이 거의 완성되어 있는 콘텐츠라고 한다면, 이미 게임이란 것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책과 만화의 비선형 콘텐츠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한다는 개념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내가 정답을 맞히고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내 스스로 캐릭터를 잘 플레이해서 진엔딩에 도달해보이겠어!’라는 기분은 게이머의 기분에 가깝죠. 아직까진 이미 작가가 의도한 것을 해석하는 것에 익숙한 종이매체의 독자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굳이 만화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비선형적 텍스트를 성공시킬지도 잘 모르겠고, 반대로 정말 신박한 콘텐츠가 나올지도 모르죠. 저는 후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뭔가 권위적인 것이 파괴되는 것이 즐겁더라고요.
국내문헌
배식한,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서울;책세상, 2000.
성완경,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 서울;생각의나무, 2001.
이원곤, 『디지털화 영상과 가상공간』, 연세대학교출판부, 2004.
이인화; 고욱; 전봉관; 강심호; 전경란; 배주영; 한혜원; 이정엽, 『디지털스토리텔링』, 서울;황금가지, 2003.
해외문헌
Carolyn Handler Miller, Digital Storytelling, 이연숙; 변민주; 김명산; 이봉희; 김윤경; 박정희; 김기현 역, 『디지털미디어 스토리텔링』, 서울;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Scott McCloud, 김낙호 역, 『만화의 이해』, 서울;비즈앤비즈, 2012.
Randall Packer; Ken Jordan, Multimedia from Wagner to virtual reality, 아트센터 나비 학예연구실 역, 『멀티미디어. 바그너에서 가상현실까지』, 나비프레스, 2004.
데즈카 오사무, 김미영 역, 『만화가의 길』, 서울;황금가지, 2002.
학위논문
김성은, “웹툰의 사회적 일상성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Webtoons in Ordinary Society”, 2009., 학위논문(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김용현, “웹툰에서의 몰입(Flow)을 위한 인터랙션 디자인 분석 연구 = (An) analytic study on interaction design for a flow in webtoon”, 2010., 학위논문(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백은지, “웹툰 만화연출 연구 : 웹코믹스 대표작품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mics Direction of Webtoon : Focused on the Major Works of Web Comics”, 2009., 학위논문(석사)–,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안소라, “웹툰의 컬러 역할 연구”, 2012., 학위논문(석사)–, 공주대학교 대학원
임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타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 트위터의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숭실대학교 미디어학과, 석사학위논문, 2011.
전혜정, “SNS에서의 비선형·다중참여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콘텐츠 디자인 연구 : 페이스북 집단창작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해 = (A) study on contents design via non-linear and participative storytelling on social network services : through the development of Facebook application”, 2013., 학위논문(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정규하, “출판 만화와 웹툰의 형식적 특징에 관한 연구 : 윤태호의 <야후>와 <이끼>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Formal Characteristics of the Printed Comics and Webtoon”, 2010., 학위논문(석사)–, 부산대학교
최유남, “웹툰 연출의 영화적 기법 연구 = (A) study on cinematic techniques of webtoon direction”, 2012., 학위논문(석사)–, 부산대학교
최인수, “웹툰 캐릭터 상품화를 위한 미디어믹스 연구 = Media mix for webtoon character merchandizing”, 2011., 학위논문(석사)–, 부산대학교
한아린, “웹툰캐릭터의 미디어믹스전략에 관한 연구 = (A) study on the media mix of web-toon character”, 2006., 학위논문(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호은숙, 「디지털 서사텍스트의 형성과정과 현황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학술논문
강옥미, 「소셜스토리텔링과 SNS」, 기호학연구/31, 37-67, 한국기호학회, 2012.
강유화, “국내 출판만화의 온라인(On Line) 상품화에 관한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8, 2004., 7-24,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김지연,오영재, “웹툰에 있어서 서사구조에 따른 공간활용에 대한 비교분석”, 한국영상학회 논문집/10, 2012., 127-142, 한국영상학회
서채환(Che-Hwan Seo),함재민(Jae-min Ham), “웹툰에서의 공간 표현의 수직적 확장에 대한 연구”, 만화애니메이션연구/-, 2010., 63-74,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오은석,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반의 웹사이트 내비게이션 디자인 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Vol.13 No.3, 29-38, 한국디자인문화학회, 2007.
정규하(Jeung Kyu-Ha),윤기헌(Yoon Ki-Heon), “웹툰에 나타난 새로운 표현형식에 관한 연구”, 만화애니메이션연구/-, 2009., 5-19,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조진경, “웹툰의 재매개 양상 연구”, ATE/3, 2013., 193-210,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대학 스크랜튼학부
최보람,노선,박진완, “Scroll Tracking 실험을 통해 분석한 웹툰의 연출 기법”, 디지털디자인학연구/35, 2012., 33-42, 한국디지털디자인학회
한창완(chang-wan Han),이승진(seung-jin Lee), “디지털 플랫폼에 따른 맞춤만화 모델링 연구”, 애니메이션연구/6, 2010., 124-139, 한국애니메이션학회
website
http://www.ted.com/talks/lang/ko/scott_mccloud_on_comics.html TED talk,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에 관하여’위키백과, ‘인터랙티브 픽션’ 항목, http://ko.wikipedia.org/wiki/인터랙티브_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