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소개하는 자료들은 일반적으로 내용이나 사회적 의미 등으로 만화사에서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작품들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미디어’라는 용어는 ‘언론’이 아니라, 종이나 컴퓨터, 인터넷 등 기술적인 매체 그 자체를 뜻합니다. 전체적으로 재미없고 딱딱하기 때문에 드립을 치려는 노력의 흔적이 조금 보이실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저는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1. 만화 좋죠. 만화…
1.1 존잘님들이 말씀해 주신 만화에 대한 개념
만화란 다들 아시다시피 스토리가 있는 연속된 그림입니다. 몇몇 동화책이나 연속된 그림 등과의 구별하기도 어렵고 워낙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딱 이거다!’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만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공통의 이미지는 있죠.
성완경은 만화도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공통된 표준형식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칸, 페이지, 이야기라는 세 가지 요소를 듭니다. 즉 만화란 인쇄지면이라는 공간 속에서 특유의 방식으로 이야기와 그림을 분절시키고 배열하면서 ‘시공간의 연속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면 위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칸과 칸 사이의 교묘한 교차배합이 만들어지게 됩니다(성완경, 2001, p.20). 저는 이것이 예술로서의 만화를 판단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이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만화를 ‘제 9의 예술’로 규정하는 걸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화는 예술이다’ 이런 지난한 명제 말고도, ‘새로운 언어’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죠.
거칠게 축약하자면 만화의 스토리는 연속된 이미지를 통해 전달됩니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에 대한 매체 자체의 정의로서, ‘의도된 순서로 병렬된 그림 및 기타 형상들’이라고 내리죠(2012, p.17). 실은 이런 방식은 만화 말고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이집트 벽화나 중세 수사본 삽화나 태피스트리 등도 다 연속된 시퀀스를 가지고 있거든요.
돌이나 종이 위에서의 이미지란, 정지된 어느 한 순간을 박제하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계에 굴하지 않고 칸의 설정, 지면 위에서의 레이아웃의 배열, 제본 방향, 읽는 방법 등을 약속하여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만화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만화는 그림과 텍스트를 이용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스토리텔링 콘텐츠인 것입니다.
1.2 스토리텔링에 대해 짚고 넘어가 봅시다.
앞으로 이 글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말을 많이 하게 될 텐데, 스토리텔링이란 뭘까요? 보통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스토리’ 그 자체로 이해하거나,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란 용어는 좀 더 기술적, 방법적인 논의를 포함하죠. 그래서 정의 나갑니다. 후루룩 읽어봅시다.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와 ‘텔링’이 결합된 말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다’란 의미입니다. 강옥미는 스토리텔링이란 “이야기(story)를 타인에게 전하는(telling) 구술적 전통의 담화양식”(2011, p.43)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셜리 레인즈(Shiry Raines)는 “이야기, 청자, 화자가 존재하고, 청자가 화자의 이야기에 참여하는 이벤트라고 정의한다”고 합니다(오은석, 2007, p.33, 재인용). 또한 이인화는 “스토리, 담화, 이야기가 담화로 변화는 과정의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인화 외, 2003, p.13)이라고 말한 바 있죠. 임가은 역시 스토리텔링이 “스토리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그 스토리를 접하는 사람의 경험까지 포함한 것으로 이야기하기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접하는 청자의 체험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크게는 이야기를 하는 화자와 이야기를 듣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청자 간의 상호작용적 과정(임가은, 2010, pp.15-16, 재인용)이라는 권영운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전달’과 ‘청자(독자)’, ‘상호작용’이 되겠습니다. 즉, 스토리텔링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청자가 상호작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죠.
전달을 하기 위해선 전달매체, 즉 미디어가 필요하겠죠. 구술하기 위한 담화이든, 종이 위에 쓴 글이든 영화든 간에 말이에요. 인간이 즐기는 스토리들이 실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려봤을 때, 변해온 것은 스토리 그 자체가 아니라,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법, 즉 미디어에 따른 스토리텔링입니다.
2. 인쇄매체 시대의 만화
2.1 만화라고 하면 역시 침대에 엎드려 책장을 넘기는 맛이죠.
발로 그린 위 도표도 나왔듯이(…) 텍스트+이미지 스토리텔링, 그 중에서도 대중을 위한 만화는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호탄은 신문이었겠죠.
이렇게 만화의 출발은 당시 신문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빚지고 있습니다. 만화의 프로토타입은 1896년부터 퓰리처계 <뉴욕 월드>에 연재되던 리처드 펠튼 아웃코트(Richard Felton Outcault)의 <옐로 키드Yellow Kid>라고 봅니다. 옐로 키드의 인기 때문에 허스트와 퓰리처가 작가 아웃코트를 데려오려고 거액을 쓰다가, 결국 빼앗긴 퓰리쳐는 조지 럭스(George Luks)라는 화가를 고용해 동명의 작품을 연재했다고 하네요. 라이센스 개념 같은 것이 부족할 때였으니까요. 이런 경쟁으로 옐로 키드는 경쟁적으로 상업적 선정주의로 흐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옐로 키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덕에, 옐로 저널리즘(황색 신문)이란 용어도 생겼다고 하죠(성완경, 2001, p.70-72)
이 당시, 급속히 확장된 철도망과 더불어 철도여행은 새로운 문명인의 특권이 되었습니다. 특히 유럽인들은 여행자와 원주민으로 인류를 양분하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이원곤, 2004, p.89).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쉽게 사고, 쉽게 들고 다니면서 볼 만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신문에 연재하던 그림이야말로 휴대성이 아주 좋은 콘텐츠였죠.
이렇게 신문으로 시작된 만화는 곧 말 주머니도 생기고, 칸으로 분할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만화의 양식을 갖추게 됩니다.
1903년에는 구스타브 버벡(Gustave Verbeck)의 <꼬마 소녀 러브킨스와 노인 머파루의 위아래가 뒤집힌 만화The Upside-Downs Little Lady Lovekins and Old Man Muffaroo>가 연재되었는데,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이야기가 되는 스토리텔링이 실험되었죠.
다음은 전설적인 작품 1906년부터 신문에 연재된 윈저 맥케이(Winsor McCay)의 <잠의 나라 리틀 네모, Little Nemo in Slumberland>입니다. 칸의 연출이 돋보이지요. 이것 역시 칸 연출로 시간에 따른 모험의 스케일을 전달한 스토리텔링입니다.
(윈저 맥케이는 이전 제 글에서도 나오지만, <공룡 거티> 등으로 미국 애니메이션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신문으로 시작된 만화는 책의 형태로도 출간됩니다. 이제 만화는 한쪽 페이지 전체 혹은 양쪽 페이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팬옵틱한 시각장치를 가진 서사형식(성완경, 2001, p.26)으로 완성되어 간 것입니다.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 화면, 여기에 들어갈 와꾸(…)를 짜는 겁니다. 그게 레이아웃이겠죠. 그래서 만화란 것은 화면 전체에서 한 눈에 전달하는 팬옵틱한 정보와, 한 칸씩 쫓아가면서 시간의 흐름으로 전달하는 서사적 정보가 결합되어있습니다.
다음 엑스맨의 컷 연출도 봐 주세요. 칸들을 사선으로 배열하여 마치 원근법이 적용된 건물처럼 느껴지죠. 떨어져 내려오면서 다가오는 거리와 시간의 흐름, 동선이 이 안에서 연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1940년에는 윌 아이스너(Will Eisner)의 <더 스피릿The Sprit>이라는 탐정물이 발표되었는데요, 30년대에 등장했던 기존의 영웅물과는 다른 지점을 모색하면서도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정서로써 이야기 예술로서의 명작의 반열에 오릅니다.
아이스너는 8페이지 분량의 제한된 지면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야 하는 제약을 건축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만화적 서사형식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간을 건너뛰는 방식의 장면 연결, 암시적 생략, 스토리의 병치 전개, 시공의 독특한 분절과 결합 등 아이스너가 만화적 서사에 사용한 새로운 수법이 매우 다양하고 현대적이라고 하네요(성완경, 2001.p.137~138)
일본에서 아이스너와 같은 작가가 있다면 아톰을 창조한 데즈카 오사무일 것입니다. 데즈카 오사무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종래의 만화 형식에 한계를 느꼈다. 특히 구도면에서 큰 불만이었다. 구도의 가능성을 좀 더 넓힌다면 스토리도 더 강해질 것이고 정서적인 면도 나오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나는 영화적 기법을 만화의 구도에 도입하리고 했다. 그 본보기로 삼은 것이 학생 시절에 봤던 독일 영화나 프랑스 영화였다. 클로즈업이나 앵글 기법의 연구는 액션이나 클라이맥스 부분을 한 컷으로 끝내버렸던 것을 몇 컷이나 몇 쪽으로 늘려 움직임이나 얼굴을 세밀하게 그려보았다.”
어떤가요? 이제 확실이 감이 오네요.
위 논의들을 종합하여서, 제가 생각하는 종이인쇄매체로 전달되는 만화에서 중요한 양식이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눈에 보이는 한 화면에서의 전체적인 레이아웃, 컷으로 채취된 순간의 장면들을 다시 지면 위에 특정하게 배열하여 재조립하는 시공간, 보는 사람이 시선의 흐름으로 엮는 순간 비로소 한 줄기 잡아 끌어올려지는 연속된 이야기.
이런 만화야말로 종잇장을 넘겨가며 보는 것이 제 맛이겠죠. 우리가 페이지를 손으로 넘기는 행위가, 만화가가 의도한 ‘시간 꿰매기’의 일부일 테니까요.
미디어스토리텔링과 만화. 인터넷커스텀, 웹툰(2)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