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 누군가에게 느끼는 우월감에 몰입하는 건 참 멍청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인생을 열심히 삼사십 년 정도 살아온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애쓴 부분이랄 게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보다 ‘잘났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있을지라도, 그 누군가도 나보다 ‘잘났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
가령, 누군가는 자신의 지위나 명예, 돈에 우월감을 가지고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상대는 그보다 더 건강할 수도 있고, 운동을 잘할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거나 더 깊은 영성을 지녔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앞에서 내가 찬 시계나 가방이 더 비싸거나,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더 비싸다며 우월감을 느끼는 건 멍청한 일인 것이다. 정작 내가 그런 가치의 우월감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상대방은 나보다 훨씬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공원을 달리고 있을 수도 있다.
우월감에 몰두하는 건 멍청한 일이기도 하지만, 취약한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돈에 최대의 가치를 두고 우월감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매우 취약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의 자산이 내년에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할 수도 있고, 갑자기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투자 실패로 그 가치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나보다 더 ‘돈’ 많은 사람 앞에서는 늘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권력, 명망에서 오는 우월감에 취한 삶이 여러 비위 문제나 표절 시비 등으로 모든 걸 하루아침에 잃는 경우도 무척 흔하다. 그러면 그에게는 삶의 근거가 없어져버리는 셈이 된다. 무언가 누리는 게 있다면 감사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에 지나치게 몰입하며 자기 삶의 의미를 의존한다면, 그 삶은 근본적으로 너무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태도는 누구를 무시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이 그저 내 삶의 좋은 것들을 스스로 사랑해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운동해서 몸이 좋아지면 어제의 나보다 나아져서 좋은 것이지 이웃집 사람보다 몸매가 우월해서는 아니다. 내가 책을 꾸준히 내서 좋은 것은, 책을 한 권 낸 사람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그저 글 쓰는 게 좋고, 그로 인해 펼쳐지는 삶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면을 채워간다면, 특히나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일도 많이 줄어드는 듯하다.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이나 남들과의 비교 의식이 아니라, 나의 좋은 삶 그 자체이므로, 나의 좋은 삶에 진실로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찾게 된다. 그러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책도, 음악도, 영화도 알아갈 수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운동도, 관계도, 살 곳이나 탈 것도 알아갈 수 있다.
몰입해야 할 건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아니라, 나의 삶을 안쪽에서부터 온전하게 만드는 마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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