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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해의 세상 속에서 ‘찬찬히 들어보고 이해하는’ 시도가 중요한 이유

2025년 5월 19일 by 정지우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해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도하려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이해할 수 있다.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길 만큼 깊이 이해할 수도 있다. 그의 환경·인생 여정·당시의 상황·내면의 결핍 등 온갖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매도하려고 마음먹는다면, 그가 아무리 인간보다는 천사에 가까운 존재일지라도 밑도 끝도 없이 매도할 수 있다. 그의 이타적 행동은 깊은 자기만족에서 오는 이기적 행위이다. 그가 이렇게 착하게 살 수 있는 건, 부유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그는 착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다 자기 평판을 위한 것이고, 아프리카 아이의 인권이나 닭의 동물권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차별주의자다. 무엇이든 다 갖다 붙여서 매도할 수 있다.

Image by rawpixel.com on Freepik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는 일에 큰 관심이 없어졌다. 그 대신 나랑 잘 맞는 사람인가,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싶은 사람인가, 나랑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차피 내 기준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때려 죽여도 부족할 사람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참 좋은 변호사가 상대편 당사자에게는 원수일 수도 있고, 내가 믿는 참 훌륭한 회사 대표가 그 직원한테는 원망스러운 상사일 수도 있다.

세상사의 복잡한 욕망들 속에서, 누군가를 객관적으로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 규정하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고 느낀다. 선인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 안에 이기적인 탐욕이 있기도 하고, 악인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무 자르듯이 선인과 악인을 나누기 쉽지 않다고 많이 느낀다. 그냥 나는 내 선에서 개인적인 호불호를 판단하고 가까이하거나 멀리할 뿐, 그 이상에 대해서는 판단을 중지하고 나 자신이나 잘 반성하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사람에 대한 판단도 너무 쉽게 내려서는 안된다고 느끼기도 한다. 섣불리 누군가에 대해 내린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거듭 만나보고, 이야기를 더 깊이 들어보고, 그의 생각이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최초의 편견을 넘어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오히려 편견을 갖고 빠르게 판단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사람은 깊게 사귀고 볼 일이다.

Image by rawpixel.com on Freepik

요즘 사회를 한 마디로 하자면, 그야말로 손쉬운 판결과 매도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잘 모르는 셀럽에 대해서도 그가 한 말 한마디, 어록 하나 어디서 듣고 악플부터 쓰기 바쁘다. 흥미로운 소문들은 늘 손쉽게 누군가를 악인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몰이해의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하나의 해독제가 될 수도 있다고 느낀다. 찬찬히 들어보고 이해하기, 라는 것만큼 이 시대의 독을 치료해 가는 첫 단계가 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원문: 변호사 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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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사회,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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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JTBC, MBC 등의 문화평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EBS 비지니스 리뷰〉에 출연하기도 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작권·개인정보·형사 사건 등의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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