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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도 아빠가 되겠지, 그래도 이 여름날을 기억해줘

2025년 1월 21일 by 정지우

나는 짱구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다. 그래서인지 이 장면을 만난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에서의 한 장면이다.

아버지가 태워주는 자전거 뒤에 타고 있던 소년이 / 출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장면이 전환되면서 짱구의 아버지 신형만이 된다. 등 뒤에는 아들인 짱구를 태우고 있다. / 출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짱구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이 장면을 오랜만에 만난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이 장면에는 슬프다고밖에 할 수 없는 면들이 구석구석 담겨 있다. 하나는, 짱구가 아빠의 등을 바라보며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날이 여름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짱구의 평온한 표정이다.

어 아이가 아빠의 뒤에 앉아 등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길어도 이삼 년 남짓이다. 그보다 어릴 때는 아이가 위험할 수 있어 등 뒤에 태우기 어렵다. 그보다 크면 스스로 자전거를 타려고 하지 굳이 등 뒤에 타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패달에 발이 닿지 않는 아이를 등 뒤에 태우고 달리는 일은 아주 잠시, 지나고 나면 잘 기억나지도 않을 짧은 시절의 일이다.

낚시대를 어깨에 올린 채 자전거를 몰며 여름에 떠나는 나들이라는 것도, 그리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짱구 아빠는 매일같이 회사에 출퇴근하며 일하다가, 일 년에 딱 한 번 낸 여름휴가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힘을 냈을 것이다. 뭉게구름이 솟아 있는 좋은 날, 아직 아이는 부모와 함께 여름을 보내는 그런 날, 인생에 몇 번 없을 여름휴가가 그 속에 담겨 있다. 몇 년 뒤 아이가 아빠의 자전거 뒤에 타서 낚시를 따라나서는 일은 끝날 것이다.

인생과 시간의 진실이랄 것을 딱히 알 리 없는 짱구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영원히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는 것처럼 평온하다. 인간의 삶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지나가며 잊혀지는 일이라는 걸 아이는 아직 제대로 모른다. 아이는 언젠가 자신이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될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그대로 영원할 줄 믿고 있다. 언젠가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떨어져, 다른 누군가와 여름을 보내며, 삶을 사랑할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

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

요즘 가끔씩 아이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아직 어린데, 아직 앳된 얼굴인데, 아직 이렇게 귀여운데 참 많이 컸다. 그리고 아이가 아내와 이야기 나누는 걸 가만히 듣는다. 아직 발음이 아이 발음인데, 완벽한 어른 발음은 아닌데, 아직 아기 같은데, 그래도 정말 많이 컸다. 그래도 아직 부모가 자기의 세계이고, 엄마와 아빠랑 함께 있는 걸 좋아하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고, 어디든 따라다니는 나의 강아지인데, 이제는 친구랑 노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하고, 자기 세계도 만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눈앞에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가끔 아이를 곁에 누이고 아이가 해달라고 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하는 안도의 마음이 든다. 문어 나라 이야기, 굼벵이 세상 이야기 같은 걸 제멋대로 지어내 들려주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듯 깔깔 웃는다. 내가 집에서 운동을 할 때마다 옆에 와서 따라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직 나와 너는 연결되어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여름도, 우리 셋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내는 나날들도 점점 끝나가고 있다는 건 안다.

나는 삶을 우울하게 보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어떤 삶의 국면에서도 나름의 기쁨을 잘 찾아낼 것을 스스로 믿는다. 그렇지만 삶이 본질적으로 슬프다는 사실은 잊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아버지,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어머니의 자리에 내가 와 있듯이 아이도 커서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쯤 되어 나의 흩어질 마음을 아이가 기억해 주고 이해해 준다면 삶의 가장 깊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어쨌든 한 번뿐인 삶의 슬픔을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아야 한다.

아마 20년쯤 뒤에도, 짱구는 여전히 짱구일 것이고, 짱구 아빠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한 뒤 돌아와 땀 채인 발의 냄새를 풍기는 짱구 아빠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빠의 자리에는 아이가 있을 것이고, 아이는 또 다른 짱구를 품에 안으며 이 시절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 겸 변호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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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만화, 부모,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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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겸 변호사.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JTBC, MBC 등의 문화평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EBS 비지니스 리뷰〉에 출연하기도 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작권·개인정보·형사 사건 등의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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