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만큼 대접받는 거야.
자신이 가치 없다고 믿는 사람은 남들도 그를 가치 없게 여긴다. 스스로 소중하다고 믿지 않는 사람은 남들도 그를 함부로 대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가치를 믿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남들도 그를 그렇게 대한다. 이는 겸손과는 다른 문제다. 자기의 가치를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이유로,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라 믿게 될 수 있다. 어릴 적에, 부모가 그를 함부로 대했을 수도 있고, 친구들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은 이 세상의 여러 불합리나 부조리가 우리를 쉽사리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다. 우리를 함부로 평가하고, 패대기치고,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상처 주면서 말이다.
나는 누군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경험을 하고 나면, 묘하게도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게 된다. 단순히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넘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게 되고, 그런 상황에 의존하게 된다. 나는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믿게 된다.
영화 <월플라워>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함부로 대해진’ 소년, 소녀들이 서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존중해가면서 성장한다. “왜 좋은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거죠?”라는 학생의 질문에,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작가는 대답한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만큼 대접받거든.
인간에게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그 누군가를 만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그 누군가를 만날 때, 인간은 확실히 구원받는다. 과거의 어떤 사람들이 너를 함부로 대했을지라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나는 당신의 가치를 인정해, 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 우리는 그 순간부터 새로 태어난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때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자신을 존중해주는 누군가를 만날 때 말이다.
인간은 그때부터 점점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다. 나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도 그 누군가와 좋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내게도 그런 삶이 허락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그리고 삶은 바로 그런 믿음에서부터 올곧게 구축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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