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밀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소를 넣어 빚은 음식. 삶거나 찌거나 기름에 튀겨 조리하는데, 떡국에 넣기도 하고 국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교자, 포자.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시작하며
만두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역이었습니다. 교자, 만두, 딤섬, 바오쯔, 증병 등등 너무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이 되어있었고, 찐빵과 구분하기도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아마 나중에 보완할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 보면 만두는 저의 인생사를 담은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 만두가 들어있거든요.
어렸을 적,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엄마는 종종 물만두나 군만두를 해 주셨습니다. 야자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안 계시면 냉동만두를 쪄서 간단히 먹었던 기억도 있죠. 고3이 끝나고 나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셨던 곳도 동네의 물만두 집이었네요.
대학생 때는 자취하며 밥해 먹기 귀찮아서 밥할 때 전기밥솥에 만두를 같이 넣고 찌기도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PX에서 냉동만두를 봉지째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회식하기도 했습니다. 복학하자마자 알바하던 음식점이 폐업하고, 남은 냉동만두를 주셨죠. 그때는 한동안 만두만 먹고 다녔습니다.
사회초년생이 되어서도 만두를 먹었습니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밥해 먹기 귀찮아서 냉동만두를 쪄서 먹곤 했죠. 생각해 보니 지난주에도 세 번은 먹은 것 같네요.
1. 실크로드? 만두로드!
국수와 같은 밀가루 음식의 탄생지는 대부분 곡물의 경작이 용이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주변입니다. 만두도 마찬가지였죠. 수메르인들은 밀가루 반죽을 숯이나 뜨거운 돌 위에서 구운 라자냐나 팬케이크와 비슷한 최초의 빵을 만들었고요. 수메르의 요리책에서는 밀가루 반죽에 다진 고기를 올린 뒤에 반죽으로 덮어 발효시키는 요리인 ‘푀겔헨’의 요리법이 발견되기도 했죠.
이 푀겔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여러 요리로 발전했습니다. 러시아의 펠메니Pelmeni, 이탈리아의 라비올리ravioli,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만티manti, 아프가니스탄의 만투mantu, 튀르키예의 만티manti 등이 있죠.
2. 제갈량이 만든 만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달한 밀가루 음식들은 한나라 때 중국으로 전해집니다. 앞서 말한 푀겔헨도 마찬가지였죠. 푀겔헨은 중국에 전해져 자오쯔餃子, 바오쯔包子, 만터우饅頭 등으로 발전합니다. 자오쯔가 우리말로 교자로 흔히 아는 만두이고, 바오쯔는 단팥 호빵, 만터우는 만두로 속이 없는 찐빵이죠.
바오쯔는 호빵의 역사를 다룰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자오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만두의 기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삼국지의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설입니다. 설에 따르면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풍랑이 심해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는데, 남만인들과 맹획이 49명의 머리를 바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여 수신을 달래야 한다고 했어요.
이에 제갈량은 사람의 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에 고기를 넣고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그것을 공물로 바쳐 제사를 지냈고, 풍량이 잠잠해져서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남’만’의 머리頭 라고 해서 만두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일화는 14세기에 쓰인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내용이고, 정작 제갈량이 살았던 위진남북조 시대(약 200년~589년)의 기록이나 삼국지 원본에는 없어요. 게다가 앞서도 설명했듯이 중국에서 만두는 속이 없는 찐빵이고, 제갈량의 만두는 바오쯔에 가깝기 때문에 어원도 이상하죠.
3. 중국의 만두 연대기
자오쯔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또다시 많은 용어가 등장합니다. 우선 자오쯔, 바오쯔, 만터우 등의 조상인 병餠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병은 찐 밀가루 덩어리이죠. 그러다 5~6세기 무렵 혼돈餛飩이 등장합니다. 이 혼돈이 발달해 베이징의 작은 물만두인 훈툰餛飩이 됐고, 홍콩·광둥에선 완탕云呑, 나아가 완탕면이 되죠.
이어 당나라 때에는 분각粉角이라는 만두가 등장합니다. 분각은 둥글게 찌던 만두를 각지게 반죽을 만들어 만든 것으로 추정되죠. 각角 을 화북지방에선 쟈오라고 발음하는데 여기서 발음이 같은 교餃가 나왔고 지금의 자오쯔(교자)만두가 되었습니다. 송나라 때에는 지금의 고기만두라고 할 수 있는 포자包子만두가 등장하죠.
원나라 때에는 찻집이 번성하는데요. 이에 따라 차와 함께 요깃거리를 즐기는 딤섬 문화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만두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춘추 시대(기원전 770년 ~ 기원전 403년) 유적인 설국군주묘에서 만두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기도 해서 정확한 기원은 오리무중인 것 같습니다.
4. 딤섬은 만두가 아니다?!
딤섬은 흔히 만두로 알고 있지만 사실 간단하게 식사처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통칭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딤섬은 200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만두 종류이기 때문에 만두가 딤섬이라고 알려진 것이죠.
참고로 딤섬을 한자로 쓰면 점심點心입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두 끼만 먹었는데요. 식사와 식사 사이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를 허기진 마음에 점을 찍듯 작은 음식을 먹어 배고픔을 생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뜻으로 점심이라고 불렀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 점심은 낮에 제대로 먹는 식사라는 뜻이 됐고, 딤섬은 때와 관계없이 가볍게 먹는 식사라는 뜻이 되었죠.
5. 김치를 넣어 보고 시작하는 건 정통이다
송과 원나라에서 만두와 교자는 대중적인 음식이었는데요. 고려시대에 국제 상인에 의해 한반도에 들어옵니다. 한반도에 전해진 만두는 우리나라에 맞게 변형되기도 하는데요. 만두피로 숭어를 사용하는 어만두와 소에 김치를 넣는 김치만두가 대표적이죠. 어만두는 생선 살을 얇게 저며 소를 넣고 녹말을 입힌 후 삶은 것으로 주로 궁중음식으로 쓰였고요, 김치만두는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중국과 맞닿아 있는 한반도 북쪽과 달리 남쪽에는 근현대까지 만두 문화가 없었습니다. 남쪽에서는 쌀 중심의 음식문화가 발달했거든요.
6. 만두 전성시대
1882년을 전후로 인천으로 들어온 중국인들이 1883년부터 서울에서 터를 잡기 시작했는데요. 생계를 위해 만두 가게를 차리기도 했어요. 외식 음식이 막 태동하던 시기에 만두와 호떡은 비교적 값이 저렴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참고로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만두가게는 1889년에 서울에서 문을 연 복성면포방이죠.
진짜 만두의 전성시대는 박정희 정부가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쳤던 1960년대로 볼 수 있습니다.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점심때는 식당에서도 쌀밥을 못 팔게 했는데요. 유명한 한식당이었던 한일관에서는 점심 메뉴로 냉면, 온면, 만둣국을 팔았죠. 1973년에는 정부에서 설에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을 것을 대대적으로 권장하기도 하면서 만두가 보편화됩니다. 이후 한식당에서는 만둣국을, 분식집에서는 찐만두를, 중식당에서는 찐만두, 군만두, 물만두를 파는 모습이 정착되었죠.
외식으로서 만두뿐만 아니라 가정식으로도 만두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냉동만두가 등장하면서부터인데요. 1979년 만두 기계와 냉동만두를 일본에서 들여와 생산하기 시작했죠. 1987년에는 해태제과, 제일냉동, 롯데햄우유와 같은 기업들이 만두 시장에 진출하며 시장도 커집니다. 1990년에 500억 원 규모의 시장에서 2002년에 1,7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하죠.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만두 시장은 2004년 한 언론 보도로 주춤하게 되는데…
7. 쓰레기 만두 파동
2004년 6월 ‘쓰레기로 버려지는 단무지 자투리로 불량 만두소가 만들어졌고, 그 불량 만두소를 사용한 불량 만두가 제조·판매됐다’라는 내용의 언론보도가 나옵니다. 화면 자료에서도 쓰레기 단무지의 모습이 찍혀있었죠.
이 뉴스는 전국민적인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130여 개의 만두 제조업계는 파산 위기에 처하고,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는 한국산 만두 수입 전면 금지 조치를 취하죠. 심지어는 쓰레기 만두 제조업체 중 하나로 지목된 비전푸드 대표 신영문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사건 1달 뒤 식약처의 검사 결과 만두소에는 유해한 성분이 없음이 확인되었죠. 실상은 이러했습니다. 경찰 측에서 파주 식품 공장에서 불량 만두 제조 단서를 포착했고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량 만두를 제조하고 있지 않은 곳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수사상 참고 자료라며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될 단무지를 찍어 갔고, 언론은 이 자료 화면을 마치 만두소에 들어가는 재료인 것처럼 짜깁기하여 보도를 낸 것이었죠.
1년이 지나 실제로 불량 만두를 제조하던 으뜸식품 대표에게는 영장이 발부되었고, 대부분의 만두 제조업체는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업체는 문을 닫은 상황이었죠.
8. 냉동만두 시장을 구원한 비비고
1987년은 기업들이 냉동만두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해입니다. 해태제과식품에서 내용물을 잘게 다져 만두를 빚는 방식을 도입한 고향만두가 큰 인기를 끌어 30년간 냉동만두의 일인자로 군림해 왔죠.
하지만 2010년 미국 시장에 먼저 선보인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가 2013년 국내에 들어오면서 시장은 한순간에 바뀌게 됩니다. ‘비비고 왕교자’가 출시 1년 만인 2014년에 냉동만두 시장 1위로 올라서게 되죠.
사실 CJ제일제당에서는 이전에도 백설, 프레시안 등 만두 브랜드를 런칭했지만 해태 고향만두에 밀렸었죠. 비비고 왕교자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에는 고향만두의 내용물을 잘게 다진 만두 스타일에서 이렇다 할 차별화가 없던 만두 시장에 만두소를 갈지 않고 썰어 넣고, 만두피의 식감이 살아있는 만두가 차별화를 주었기 때문이었죠.
비비고의 성공 이후로 정체 중이던 시장의 경쟁이 활발해지며 다양한 제품 개발이 이루어졌고, 2014년 3,000억 원대에서 정체 중이었던 냉동만두 시장은 2018년 4,615억 원대로 증가합니다. 2019년에는 풀무원에서 만두소가 보일 정도로 얇은 만두피를 사용한 ‘얇은피꽉찬속만두’를 출시하며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로 인해 해태제과는 풀무원에게 2위 자리마저 빼앗기고 3위로 전락합니다.
마치며
우리나라에서 ‘만두’하면 속에 무엇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고기만두, 김치만두, 새우만두 등으로만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수많은 만두가 존재하고 만두 문화가 발달했죠. 우리나라와 중국의 이렇게 만두 문화가 다른 것은 중국에는 만두를 지칭하는 말이 세분화되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시마, 김, 파래, 미역으로 구분되는 해초가 영어권에서는 전부 seaweed로 표현하는 것과 파스타가 이탈리아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동일하죠. 좀 더 어렵게 말하면 ‘기호로 존재하지 않는 지시 대상은 그 언어 사용자들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쉬르의 언어학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고 쓰레기 만두도 그렇고 라면에서의 우지 파동도 그렇고 대만 카스테라 등등의 사례를 볼 때 식품 산업은 언론의 마녀사냥으로 쉽게 오해받고 피해입는 것 같네요. 나중에는 이런 사례들을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고
- 박정배. (2021). 만두 한중일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 따비
- 정혜경. (2008). 만두 문화의 역사적 고찰. 동아시아식생활문화학회지
- 김혜경. (2023). “비비고 독주 누가 막을까” 설 앞두고 ‘냉동만두’ 경쟁 열기. 뉴시스.
- 윤덕노. (2014). 중국 음식과 문화 ④ 點心, 마음에 점을 찍다 – 허기진 마음 채우는 가벼운 식사. Chindia Plus. Vol.88
- 윤덕노. (2021). 만두의 역사…그 진실과 오해와 허풍. 한국외식신문.
- 이상언. (2021). 언론의 ‘악행’으로 지목된 ‘만두 파동’ 실상 이렇습니다 [이상언의 ‘더 모닝’]. 중앙일보.
- 이지원. (2020). CJ 비비고 10년의 기록, 안방은 장악했지만…. 더스쿠프.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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