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곡주나 고구마주 따위를 끓여서 얻는 증류식 술. 무색투명하고 알코올 성분이 많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아랍의 연금술사가 만든 약, 소주
소주, 그러니까 증류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요. 기원전 3000년 중동지역에서 수메르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 기원전 500년쯤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죠.
물론 이들은 원시적인 형태의 증류주였고, 오늘날과 같은 증류주는 8~9세기경 아랍의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an)이 증류 장치인 알람빅을 개발하면서 시작됩니다. 당시 아랍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술을 마시지 못했는데요. 그럼에도 이런 증류 기술이 발명된 것은 와인을 증류해 만든 포도 소주를 약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죠. 이 포도 소주는 증류기에서 이슬방울로 맺혀 떨어져 만들어지기 때문에 ‘땀’이라는 뜻의 아라크(araq)라고 불렸어요.
하이얀의 증류기와 아라크는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서방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터기에서는 라키(raki), 유럽 남동부에서는 라키아(rakia), 에티오피아에서는 아라키(araki),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서는 아락크(arrack)가 등장하죠.
2. 안동 소주가 유명한 이유
동방에는 13세기 거의 전 세계를 지배했던 원나라에 의해 증류기와 증류주가 퍼지게 됩니다. 당시 원나라는 증류기를 이용해 말젖 소주인 아라히(arkhi)를 만들었고요. 원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고려에도 증류주가 소개되며 소주가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개성 일대에서는 이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르기도 했죠.
참고로 오늘날 개성, 안동, 제주가 국내 소주의 명산지인 이유도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에 머무른 몽골군의 주둔지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어요.
당시 소주는 각종 곡물, 쌀, 누룩 등을 원료로 하여 맑은 부분만 걸러낸 청주를 다시 끓여서 증발한 것을 모아 만드는데요. 쌀을 이용해 소량의 소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비싼 술이었죠. 따라서 초기에는 궁중이나 사대부들만 접할 수 있는 귀한 술이었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양반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게 됩니다.
3. 식민지 시절 유행했던 기계소주
1900년대까지 소주는 주로 가정이나 주막, 동네 양조장에서 만들어 판매되는 가양주 문화가 이어져 왔는데요. 일본의 식민 지배 이후, 효율적인 세수 파악과 일본인의 술 판로 확대를 위해 가양주 문화를 없애기 시작합니다. 1909년 주세법을 공포하고, 1919년 이후에는 영세업자의 소규모 생산을 사실상 금지하죠.
이로 인해 일본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워진 공장에서 만들어진 소주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소주 공장은 1919년 평양의 ‘조선소주’와 인천의 ‘조일양조조주식회사’인데요. 이들은 1827년에 로버트 스테인(Robert Stein)에 의해 발명된 연속식증류기를 이용해 소주를 제작했죠.
이 증류기를 이용하면 기존의 증류기와 달리 고순도의 알코올을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대규모로 소주를 만들 수 있었죠. 이렇게 만들어진 소주를 당시에는 ‘신식소주’ 혹은 ‘기계소주’라고 불렀어요.
1920년대 유명했던 기계소주는 다이헤이 소주에서 선보인 월선과 영월, 그리고 아사히양조의 금강소주 등이 있었죠. 재밌는 것은 영월의 경우 기계식과 조선 전통 방식을 반반씩 조합해 양조한 술이라는 점이예요.
참고로 앞서 알람빅(단식증류기)으로 만든 소주와 연속식증류기로 만든 소주는 생산 방식과 맛이 달랐는데요. 이를 구분하기 위해 1961년 주세법에서는 단식증류기로 만든 소주는 증류식소주, 연속식증류기로 만든 소주를 희석식소주로 정의합니다.
4. 진로가 1위를 빼앗겼던 순간
1964년 정부에서 ‘양곡소비절약지침’을 시행하는데요. 이 시행령으로 고구마를 제외한 다른 원료로는 증류식 소주 및 주정을 만들지 못하게 됩니다. 당시 소주 1위 업체였던 진로는 원래 증류식 소주를 만들던 회사였는데, 갑자기 제조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죠.
이를 기회로 여긴 회사도 있었습니다. 주정과 청주를 생산하던 삼학이었죠. 이들이 희석식 소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인공감미료를 넣은 소주를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삼학은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홍보했고, 그 결과 호남과 수도권을 장악하며 진로소주를 넘어서게 되죠.
하지만 삼학의 영광의 순간도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무리한 광고 탓에 자금난에 허덕였고 1970년에는 부도를 냅니다. 정부의 특혜 융자로 회생했지만, 또다시 빚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자 위조 납세필증을 이용해 탈세합니다. 결국 1971년 삼학의 사장 김상두가 구속되고, 이듬해 삼학양조는 문을 닫게 되죠.
5. 무사카린, 무설탕 소주 등장
희석식 소주는 순도 95%의 알코올에 물을 타서 만드는데요. 여기에 감미료를 넣지 않으면 쓴맛밖에 없어 먹기 힘들죠. 소주 회사들은 강한 쓴맛을 감추기 위해 단맛을 내는 시클라메이트, 사카린등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시클라메이트는 미국에서 방광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1969년부터 사용이 금지됩니다. 이후 사카린이 소주에 단맛을 내는 대표적인 원료로 들어있었죠.
하지만 사카린도 1977년에 FDA에서 발암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해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미국과 캐나다, 몇몇 유럽 국가들은 한동안 사카린 사용을 금지했죠. 그런 상황에서 1988년 소주 회사들이 수출용 소주에는 설탕을, 내수용에는 사카린을 넣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됩니다.
이 논란을 본 보해에서 발 빠르게 무사카린 소주를 내놓죠. 1989년에는 정부가 사카린 소주 전면 금지를 발표해 다른 소주 업체들도 사카린 대신 아스파탐과 스테비오사이드 등을 첨가한 소주를 선보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는데, 1994년 호주가 한국산 소주의 스테비오사이드 함유 사실을 문제 삼아 전량 폐기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호주에서는 스테비오사이드가 금지되었거든요.
2000년대 이후에는 설탕이 성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2007년 참이슬 프레쉬로 대표되는 무설탕 소주들이 등장하기도 했죠. 2022년에는 제로 슈거를 외치며 등장한 새로도 있고요.
참고로 사카린 소주는 유해성 입증이 어렵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나온 뒤 2012년에 다시 허용되었어요. 소주를 마실 때 소주병을 아래쪽을 팔꿈치로 탁탁 치는 건 병 밑에 가라앉은 사카린 불순물을 제거해준다는 속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네요.
6. 증류식 소주의 반격, 원소주
희석식 소주가 사실상 소주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하며 전통 방식의 증류식 소주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나 싶었는데요, 2022년 가수 박재범이 출시한 증류식소주인 원소주가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증류식 소주가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원소주, 원소주 스피릿, 원소주 클래식 총 3종류를 출시했는데요. 이 중 클래식의 경우 전통방식의 증류방법을 써서 만든 술이죠.
마치며
일제는 세금과 같은 다양한 규제를 통해서 우리나라 전통 방식의 증류식 소주를 쇠퇴시키고, 공장식 희석식 소주를 주류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주류가 된 희석식 소주는 값싼 감미료를 찾기 위해서 여러 차례 변화를 거치기도 했고요.
그때 만들어진 주류 문화가 그대로 이어져 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다가도, 그런 역사적 흐름마저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주는 싼 맛에 마셔야 하는 술이기도 하고요.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 김태완 「증류 기술과 대한민국 소주의 역사」(2019), 한국식품연구원, 식품과학과 산업. vol.12
- 남원상 『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술 소주』(2021), 서해문집.
- 탁재형 『우리술익스프레스』(2022), EBS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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