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김 위에 밥을 펴 놓고 여러 가지 반찬으로 소를 박아 둘둘 말아 싸서 썰어 먹는 음식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늘은 김밥의 역사입니다! 김밥의 역사를 보면 사회 트렌드를 볼 수 있는데요. 지역 특산물에 대한 관심으로 유행한 충무김밥, 외국 문화 및 상류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탄생한 누드김밥, 저금리 시대 가성비의 김밥천국,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탄생한 키토김밥. 이처럼 본질은 잃지 않으면서도 트렌드 속에서 변주되는 김밥, 김밥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1. 김밥의 원조는 일본일까, 한국일까?
우선 우리나라에서 김을 먹은 것에 대한 기록은 13세기 삼국유사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신라시대부터 김을 먹었다고 전해지죠. 1425년의 『경상도지리지』에는 김 양식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김을 밥에 싸 먹었다는 기록은 그로부터 4세기 뒤에나 등장합니다.
19세기 『동국세시기』에는 정월대보름에 김이나 배춧잎, 곰취잎 등에 밥을 싸 먹는 음식인 복과가 등장하는데요. 한자 표기를 위해 과로 적혀있지만, 원래 이름은 복쌈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김으로 싼 복쌈을 김쌈이라고 했죠.
비슷한 시기 쓰인 <시의전서>에는 김에 기름을 바른 뒤, 소금을 뿌려 재워두었다가 구워 네모반듯하게 잘라 밥에 싸 먹는 음식을 김쌈이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복과와 김쌈은 오늘날의 김밥과는 모습이 다릅니다. 오늘날 김밥의 모습은 일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779년 발간된 『신센콘다테부루이슈』에는 마키즈시(말이형 초밥) 만드는 법이 실려있는데요. 김 위에 밥을 펴 바른 뒤 내용물을 올리고 발로 눌러가며 마는 것이 오늘날 김밥과 동일하죠.
즉, 김에 내용물을 싸서 먹는 음식은 한국이 먼저 나온 것이고, 오늘날 김밥의 외형은 일본이 먼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밥의 원조가 일본이냐 한국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판단은 어려분에게 맡길게요:)
2. 쉬지 않는 김밥, 충무김밥
일제강점기, 충무(현재 통영시에 편입)에 살던 한 어부의 아내가 고기잡이하러 나가는 남편에게 매콤한 해산물 무침을 속 재료로 넣어 만든 김밥을 싸주었는데요. 문제는 덥고 습한 날씨에 김밥이 쉬어 버리곤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는 김밥에 아무런 간도 하지 않고 속 재료를 반찬처럼 따로 담아 빨리 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본 다른 어부들도 따라 하면서 충무김밥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무김밥은 원래 뱃머리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충무 일대의 한려수도는 일제강점기부터 유명한 관광지였는데요. 뱃머리 김밥은 관광 음식으로 자리 잡았죠. 당시 뱃머리 김밥은 무김치, 오징어 새끼, 문어 새기, 홍합 등 해산물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었고, 유람선 내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꼬치에 끼워서 판매되었죠.
또 다른 유래도 있습니다. 1950년대 충무의 옛 여객선터미널 부근에서 김밥 행상을 하던 어두이 씨가 주인공으로, 판매하던 김밥이 자꾸만 쉬자 속 재료를 따로 두는 충무김밥을 개발했다는 겁니다. 유래가 어찌 되었든 어두이씨는 충무의 뚱보할매로 유명했는데요. 1981년에 열린 전통문화 행사와 지역 특산물을 선보이는 축제인 ‘국풍81’에도 초대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어 씨의 충무김밥은 개장 3시간 만에 700인분이 전부 팔리며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충무에서 운영하던 뚱보할매집도 유명해지며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몰려들었죠. 이후 충무에는 수많은 원조 간판을 단 충무김밥집이 생겨나고, 서울은 물론 LA에도 충무김밥집이 생겨납니다.
3. K-캘리포니아 롤 = 누드김밥
요즘은 찾기 어려워졌지만, 한때 김보다 밥이 바깥쪽에 있는 누드김밥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1995년 압구정에서 처음 등장했죠.
당시 압구정은 강남 부자들의 자녀이자 미국 유학생인 오렌지족들의 주 활동지였습니다. 압구정로데오거리는 이들의 입맛에 맞게 미국식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그중에는 캘리포니아 롤도 있었습니다.
오렌지족의 소비를 선망하는 X세대들도 캘리포니아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분식집이나 김밥집들은 비싼 아보카도나 해산물를 빼고 캘리포니아 롤을 흉내 내 X세대를 사로잡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누드김밥이죠.
캘리포니아 롤은 1960년대 미국 LA에서 탄생했습니다. 1960년대 LA가 미국-일본 무역의 거점으로 부상하게 되는데요. 일본 회사원들의 LA 출장이 잦아지면서 LA에 도쿄 카이칸이라는 일식집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만 상대로 해서는 수익이 충분하지 않았죠.
당시 미국인들은 날생선을 그대로 먹는 스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쿄 카이칸에서는 미국인들도 스시에 친숙해질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캘리포니아 롤이었죠.
처음에는 아보카도를 초밥처럼 밥 위에 올린 형태였지만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리마키 형태로 아보카도, 마요네즈, 게살을 김과 밥 속에 넣어 선보였는데, 이를 본 미국인들은 김도 떼어낸 뒤 먹었습니다. 결국 김도 속으로 숨겨 넣다 보니 지금의 캘리포니아롤이 완성된 것이죠.
4. 마약김밥
광장시장의 마약김밥은 사실 꼬마김밥입니다. 어느날 손님이 마약처럼 손이 계속간다는 뜻에서 마약김밥이라고 불렀고, 이 별명은 2003년 블로그 열풍을 타고 인터넷에서 유명해졌습니다. 결국 가게에서도 꼬마김밥이 아닌 마약김밥으로 부르게 된 거죠.
원조 마약김밥집으로 알려진 곳은 광장시장에 있는 모녀김밥입니다. 1975년 이상훈 씨가 당시 집에서 만든 꼬마김밥을 커다란 소쿠리에 담아 와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행상을 한 게 시작이죠. 김밥 판 돈을 모아 지금의 노점 자리를 사면서 광장시장에 터를 잡았습니다. 원래는 상호명도 없이 장사했지만 방송에 소개된 이후 찾아오는 손님이 늘자 2008년 모녀김밥이라는 간판을 달기 시작했죠.
다만 2023년부터 식약처에서 음식 앞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도록 권고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마약김밥이라는 단어를 보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5. 상호명을 신중히 골라야 하는 이유
주문하면 즉석에서 말아서 내주는 즉석김밥 전문점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반입니다. 1994년 김가네와 종로김밥이 각각 대학로와 종로에 문을 열었죠. 김밥천국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도 같은 해였습니다. 부대찌개와 보쌈으로 유명한 놀부에서 김밥 프랜차이즈를 낸 것이었죠. 하지만 이 김밥천국은 잘 안 되었는지 금방 사업을 접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김밥천국의 시작은 그로부터 1년 뒤 인천 주안동에 등장한 조그만 분식집이었습니다. 김밥천국은 당시 2,000원 정도였던 김밥 가격보다 절반이나 저렴한 1,000원짜리 김밥이 주력 아이템이었습니다. 열자마자 대박이 났죠. 설상가상 얼마 지나지 않아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저렴한 김밥천국의 인기는 더더욱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업체들도 전국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김밥천국’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김밥’과 ‘천국’은 보통명사라 상표권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죠. 그렇게 누구나 김밥천국이라는 간판을 달고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김밥천국 상호명은 상표권 등록이 되어있지 않지만, 김밥천국의 간판 디자인 자체는 2003년에 상표권 등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김밥천국의 창업자 유인철씨가 등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죠. 유인철 씨는 뒤늦게 상표권 무효 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고 마랐고요. 심지어 한 중국업체가 현지에서 김밥천국 상표권을 선점해 한국 김밥천국이 중국에 진출할 때도 사용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김밥천국은 상호명도 간판 디자인도 잃어버려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음식의 일관성이 없는 싸구려 식당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죠. 결국 유인철 씨도 2013년 자신의 지분을 전부 처분하고 김밥천국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6. 저탄고지 키토김밥의 등장
최근에 가장 유행하는 김밥은 바로 키토김밥입니다. 밥 대신 달걀 지단으로 채운 김밥을 말하죠. 키토는 키토제닉(Ketogenic) 식단의 줄임말로,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 주는 저탄고지 식이요법을 말하죠. 2016년 방영된 〈지방의 누명〉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큰 관심을 얻으며 알려졌습니다.
키토제닉 김밥을 처음 유행시킨 곳은 서울 강남의 ‘보슬보슬’입니다. 보슬보슬 창업자 이용훈씨가 이전에 다른 분식집을 할 때 김밥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밥 양을 줄여달라’거나 ‘밥을 아예 빼고 말아달라’는 요청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밥 대신 달걀 지단을 넣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하죠.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 남원상. (2022). 김밥. 서해문집
- 김성윤. (2020) [공복 김선생] ‘복쌈’부터 ‘키토김밥’까지, 김밥의 진화. 조선일보
- 이용재. (2022). 김밥의 원조는 한국일까, 일본일까.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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