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최근 우리 사회의 소비형태 중에서 ‘리볼빙’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생각한다. 보통 15% 정도의 고금리로, 신용카드 결제 금액을 다음달로 미루는 게 리볼빙인데 현재 우리 나라 전체 리볼빙 금액이 7조를 넘어섰다. 당연히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리볼빙이 무서운 건, 이달 결제 금액을 다음 달로 미룰 수 있지만, 다음 달이 모든 면에서 이번 달과 다를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다음 달에 획기적으로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고, 소비 습관도 획기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 보통 우리는 이번 달 만큼 다음 달에도 벌고 소비한다. 왠지 다음 달에는 덜 지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은 또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달에 겨울 코트를 사는 일은 몇 년 만에 이례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다음 달은 겨울 코트만큼의 지출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여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 달에는 설날을 맞이하여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을 사야 할 수 있고, 갑자기 누군가의 경조사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 혹은 세금이나 보험료가 몇 십만원 부과될 수도 있고, 갑자기 자동차나 보일러가 고장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또 그 다음 달에는 우연한 지출이 줄거나, 우연한 수입으로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삶에 계속 불시의 지출이 찾아온다. 그러면서 삶 자체의 ‘평균’이 ‘불시의 소비’라는 걸 알게 된다. 그때 있는 건 사실 고금리로 쌓이는 빚 밖에 없다.
이게 ‘지옥’이 되는 이유는 소위 ‘돌려막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기 사건을 담당하다 보면, 돌려막기 사기가 얼마나 흔하고 많은지를 알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다음 달이면 자금이 회수되어 이자까지 쳐서 줄 수 있다며 돈을 빌리며 돌려막는다. 매우 흔한 형태다. 그나마 마이너스 통장으로 리볼빙이나 카드론을 막는 사람들은 현명한 편이라 볼 수 있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낫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미래의 나로 현현한다. 나도 여러 지출들의 쓰나미에 휘둘린다.
그나마 하나 노력하는 건, 어떻게든 당장의 지출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다음 달의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당장 이번 달의 내게 ‘절제’가 필요하다. 마치 니체가 영원히 환생하여 삶을 반복한다면, 그 반복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건 현생, 즉 ‘지금’밖에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
사실 소비를 포함하여 모든 일이 같다. 당을 줄이려면 오늘부터 줄여야 한다. 글을 쓰려면 일단 오늘 한 단락이라도 써야 한다. 운동을 하려면 오늘 팔굽혀펴기랑 스쿼트 20개라도 해야 한다. 사랑을 하려면 오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야 한다. 돈을 벌고 싶으면 오늘 만난 사람한테 명함이라도 하나 줘야 한다.
바뀌지 않는 나날들이 쌓이면 미래는 더 확고한 오늘이 될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함에도 미룬 것들은 모두 지옥문의 재료가 되어 더 근사하게 미래에서 우리를 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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