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알코올성 음료의 하나. 엿기름가루를 물과 함께 가열하여 당화한 후, 홉(hop)을 넣어 향(香)과 쓴맛이 나게 한 뒤 발효하여 만든다.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가열한 병맥주와 가열하지 않은 생맥주가 있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러분은 가장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가요? 저는 위스키, 전통주, 와인, 맥주 등 다양한 술을 시도해 보았지만, 가장 많이 마시게 되는 것은 역시 맥주인 것 같아요. 특히 무더운 여름날에 마시는 맥주는 못 참죠.
맥주는 수많은 스타일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는 없고 큰 줄기만을 다루었습니다. 혹시나 좋아하는 스타일의 맥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뭐라 하진 말아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임페리얼 스타우트나 퀠시의 이야기도 빠져 있어요(…)
맥주의 역사를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맥주는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음료였다는 점이에요. 역사를 조사하다 보면 근대 이후에 발명되었거나, 고대에는 있었지만 사라졌다가 근현대에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맥주는 고대(심지어 중석기), 중세, 근대(산업혁명, 대항해시대), 현대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있죠. 아마 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었던 것 같네요.
1. 맥주, 농경보다 먼저 시작되다
보통 맥주의 역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그것보다 약 7천 년 앞선 1만 3700년 전 중석기 시대 유적에서 곡물로 맥주를 빚은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당시 존재하던 나투푸인들은 돌절구를 이용해 밀, 보리 등으로 술을 빚었을 것으로 추정하죠. 이 발견이 맞다면 농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술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맥주는 기원전 4300년경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문명에서 등장합니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카스(Kas)라고 불렀는데요. ‘입으로 갈망하는 것’을 의미하죠. 맥주는 수메르에서 시작해 이집트를 거쳐 북유럽까지 전해집니다. 하지만 포도 재배가 가능했던 지역은 주로 와인을 마셨고, 와인을 만들기 어려운 곳에서 맥주가 자리 잡았죠.
고대 영국에서는 자연에서 채취한 벌꿀로 만든 미드(Mead)라는 술을 마셨습니다. 미드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벌꿀 채취에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벌꿀 소량에 곡물을 당화시켜 넣어 만든 미드를 마시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변종 미드는 순수 벌꿀로 만든 미드와 맛이 달랐는데요. 그래서 곡물로 빚은 술이라는 이름의 에일(Ale)이라는 명칭을 따로 붙였죠.
2. 맥주, 수도사만의 특권
중세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를 담당했습니다. 순례자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고, 금식 기간 동안 수도사들이 마실 음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보통 맥주의 재료라면 맥아, 홉, 효모, 물이 꼽힙니다. 하지만 이 당시 맥주는 홉 대신 그루트(Gruit)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지역 대주교 혹은 영주가 그루트권을 독점하고, 양조자나 상인들에게 그루트권을 주는 대가로 세금을 받아왔기 때문이죠. 그루트의 성분은 비밀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곡물을 갈아 여러 향신료와 섞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듯 맥주 제조에는 수도원, 즉 가톨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도 보헤미아 지방은 사정이 나았습니다. 14세기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4세가 수도원뿐만 아니라 도시 시민들도 맥주를 양조할 수 있게 했거든요. 일반인들도 맥주를 빚을 수 있게 된 보헤미아 지방은 맥주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3. 종교를 피해 등장한 홉
최초의 홉 맥주는 1000년경 독일 북쪽의 도시인 브레멘에서 등장합니다. 브레멘은 교회의 힘이 닿지 않는 자유 도시였기 때문에 그루트를 사용할 의무도 없었거든요. 브레멘은 상권 확보 및 집단 안보를 위해 설치된 무역 공동체인 한자(Hanse) 동맹 도시였죠.
홉 맥주는 맛이 좋을 뿐 아니라 홉에는 맥주를 상하게 하는 특정 박테리아의 활동을 방해하는 방부 성질이 들어 있어 상품성도 좋았습니다. 물론 그루트 맥주를 통해 세금을 벌어들이던 도시들은 홉 맥주를 반기지 않았죠. 특히 네덜란드의 윌리엄 3세 백작은 1321년 홉을 넣은 맥주가 자기 영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한자 무역동맹의 도시인 함부르크, 플란더스, 덴마크, 암스테르담 등으로 홉 맥주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죠. 특히 암스테르담에서는 수입한 맥주를 분석해 레시피를 개선한 질 좋은 맥주를 만들어 다른 지역으로 수출합니다.
1500년경에는 플란더스의 이민자가 영국에 밀려 들어오면서 홉 맥주도 같이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그루트와 홉을 사용한 맥주를 구분하기 위해 홉을 첨가한 것을 맥주라고 부르고, 그루트를 사용한 것을 에일이라고 불렀어요. 결국 1600년경에는 모든 영국 맥주와 에일에 홉이 일정량 들어가게 되고, 홉 맥주가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죠.
한자동맹은 홉 맥주뿐만 아니라 맥주순수령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자 동맹은 맥주 제조법을 간단하게 만들어 기존의 맥주에 비해 맛은 떨어지지만 싼 가격으로 시장에 유통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정에 큰 타격을 입혔죠.
신성 로마 제국은 한자 동맹의 맥주가 독점하는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1447년 맥주에 물, 보리, 홉 세 가지 재료만 넣어야한다는 맥주순수령을 반포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빵을 만들 밀과 호밀을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죠.
4.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기네스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맥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수요가 늘어났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계들이 등장한 것이었죠. 1784년 헨리 굿윈(Henry Goodwin)과 새뮤얼 위트브레드(Samuel Whitbread)의 양조장에 처음으로 스팀엔진이 도입됩니다.
당시 런던에서는 홉의 풍미가 강한 새로운 브라운 맥주(흔히 흑맥주라고 부르는 맥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 맥주는 런던에 가장 흔한 노동계급이었던 짐꾼(Porter)의 직업명에서 이름을 따와 ‘포터’라고 불리기 시작했죠. 당시 술집에서 2~3가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을 쓰리 쓰레즈(Three threads)라고 불렀는데, 1722년 랄프 하우드(Ralph Harwood)가 쓰리 쓰레즈의 맛을 재현해 상업화하며 만들어 낸 것이 포터라는 설이 있습니다.
포터는 값싼 브라운 맥아를 사용하지만, 양조장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의 양조장이 필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796년 위트브레드 양조장은 1년에 36갤런들이 통으로 20만 2천 개를 생산했죠. 1759년에는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포터보다 더욱 강한 스타우트 포터를 개발했습니다. 이게 큰 인기를 끌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죠.
5. 인도에서 유행한 맥주
인디아 페일 에일(IPA)은 1790년에 런던의 양조업자 조지 호지슨(George Hodgson)이 개발했습니다. 홉을 많이 넣은 맥주로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특성이 있었죠. 덕분에 동인도 회사와 거래할 수 있었구요. 덕분에 영국의 식민지, 특히 인도에서는 조지 호지슨의 맥주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맥주를 즐겨 마시던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영국에서도 유행하게 됩니다. ‘인도에서 마시던 페일 에일’이라는 뜻에서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죠.
하지만 인디아 페일 에일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차와 진, 라거 맥주가 등장했고, 영국 내에서 알코올 함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거든요. 덕분에 도수가 높았던 인디아 페일 에일은 영국식 비터와 페일 에일로 대체됩니다.
6. 과학적인 맥주, 라거
16세기 독일의 바이에른에는 3월에 만들어 더운 여름에는 동굴 속에 얼음과 함께 저장한 뒤 선선해진 가을에 마시는 메르첸(Märzen)이라는 맥주가 있었습니다. 고온에서 맥주가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맛도 더 깔끔해졌죠. 당시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이는 저온에서 살아남은 효모의 작용으로 인한 맛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잊혔던 메르첸을 가브리엘 제들마이어(Gabriel Sedlmayr)가 널리 알리게 됩니다. 제들마이어는 안톤 드레허(Anton Dreher)와 함께 1833년 영국의 양조장을 돌아다니며 양조 기술을 배웠습니다. 심지어는 속을 비운 지팡이를 양조장에 들고 들어가 맥주를 몰래 담아 갖고 나오기도 했죠.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영국의 양조 기술을 접목해 각자의 맥주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드레허는 깔끔하면서도 고소한 비엔나 라거를 만들어 내고, 제들마이어는 메르첸을 다시 살려내 큰 성공을 거두었죠.
제들마이어의 슈파텐 양조장은 엔지니어 칼 폰 린데(Carl von Linde)의 연구를 지원했는데요. 1873년 린데는 최초의 기계식 냉장기술을 발명합니다. 이젠 더 이상 맥주를 저장하기 위해 얼음동굴이나 지하실을 찾을 필요가 없었죠. 1876년에는 파스퇴르가 『맥주에 관한 연구 Études sur la Bière』를 출판하여 맥주의 효모를 관찰하는 방법과 세균으로부터 맥주를 보호하는 방법 등을 밝혀냅니다.
1845년 덴마크에서 칼스버그 양조장을 차린 칼 야콥센(Carl Jacobsen)도 라거 맥주를 생산했습니다. 1883년 칼스버그 연구소장인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Emil Christian Hansen)은 순수한 라거 효모를 분리 배양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로써 일정한 품질과 맛의 라거 맥주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게다가 칼스버그는 특허를 내지 않고 원하는 모든 양조장에게 자신들이 분리한 효모를 나눠 주어습니다.
7. 현대 맥주의 완성, 필스너우르켈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95%가 필스너 맥주입니다. 이 맥주는 보헤미아의 플젠 지역(Plzen, 현재의 체코)에서 만들어졌죠. 플젠 지역에서는 1295년부터 맥주를 양조했지만, 19세기 런던과 바이에른에서 각자 스타일의 맥주가 발전하고 있을 무렵에는 형편없는 맥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838년 지역 주민들이 맥주 맛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통에 담긴 맥주를 버릴 정도였죠.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플젠 시는 시에서 소유하고 있던 양조장에 바이에른의 양조사 요제프 그롤(Josef Groll)을 영입해 새로운 맥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1842년 그롤은 바이에른의 라거 효모와 홉, 달콤한 모라비아의 보리, 그리고 플젠의 연수로 맥주를 만들어 내는데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황금색의 향미가 진한 필스너였습니다.
필스너는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맑고 투명한 연한 황금색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죠. 참고로 이 양조장이 오늘날의 필스너우르켈(Pilsner Urquell)이 되었답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 랜디 모셔(2020) 『맥주의 정석』 소소북스
- 이강희(2018) 『맛있는 맥주 인문학』 북카라반.
- 조너선 헤네시, 마이클 스미스(2016)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계단
- 최낙언(2022) 『향의 언어』예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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