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자문해 주는 사람들은 믿을 사람이 못 된다. 그렇게 잘 는데 왜 굳이 내 돈을 운용해 주겠는가.
깊게 생각해볼 만한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그러나 인내에 대한 숨겨진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1.
현실부터 생각해 볼게요. 우리 주위에는 끝없이 ‘고수익 보장’을 속삭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문자만으로도 몇천 통을 받았을 것 같아요. 이쯤 되면 문자 전송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들에 투자하고 싶어집니다. 아시겠지만 대부분 사기꾼들이고, 뒤가 없는 회사들입니다. 뒤가 없으니 온갖 과장과 거짓과 사칭이 난무합니다. 속으시는 분은 없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운용을 잘하는 사람은 우리의 돈을 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부자들의 돈이 알아서 흘러들어오죠. 맡기려는 수요가 많습니다. 반면에 부자가 아닌 사람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것은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닐 겁니다.
제 주위에도 투자를 정말 잘하는 분들이 많고, 와중에 남의 돈을 맡아주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 MBA 동기 모임을 위해 운용해 준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만은 끔찍히 꺼립니다. 간혹 후배들 전반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을 낙으로 사는 분들은 몇 있어도, 굳이 투자를 대리해서 해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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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은 원래 제약이 있습니다. 돈이 더 모인다고 수익률이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손정의의 비전 펀드도,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도, 돈이 더 적었으면 수익률은 더 높았을 거예요. 그러니 남에게 문호를 개방할 이유가 없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큰돈을 벌어주겠다는 말은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는 구성입니다. 그러니 논리적 모순을 덮기 위해 이야기를 붙입니다. 원래 안 하는데 이번만 특별히, 너만 특별히… 이런 구차한 설명을 얹어서 목돈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도망칩니다.
2.
그렇다면, 우리는 꼭 돈이 많아야만 좋은 투자자에게 돈을 맡길 수 있을까요? (제 로보어드바이저 광고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ㅎ) 좋은 투자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사실 좋은 투자자가 원하는 건 돈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투자자들의 투자 원칙은 사실 ‘시간’에 많이 종속됩니다. VC 업계에서 유명한 알토스 같은 회사를 한번 생각해 보죠. 알토스가 다른 회사들보다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차별화된 전략을 가져갑니다. 1~2년의 단기에는 벌어지지 않는, 그래서 대부분의 경쟁자들이 바라보지 않는 어떤 축을 볼 거예요. 인내심과 집념이 있는 회사만이 장기간 고수할 수 있는 어떤 원칙들을 고집할 겁니다.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훌륭한 회사들은 모두다, 장기적인 원칙에 대한 투자를 합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일시적인 성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지가 안 돼요. 아마존 같은 기업도 마찬가지에요. 99%의 기업들이 단기 실적을 위해서 장기적 목표를 등한시할 때, 아마존은 장기적 목표를 공감할 수 있는 주주나 투자자들을 모아서 그 이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존은 그 목표에 맞지 않는 주주는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고까지 말합니다.
워런 버핏은 말할 것도 없지요. 시간의 축이 맞지 않는 조급한 분들은 굳이 서로 불편하게 지내지 말자는 메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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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세상은 단기적 성과에만 관심이 있고, 그를 추적하며 일희일비합니다. 그 시장에서의 마케팅을 포기하고, 이해받기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서일 겁니다. 이 점은 정말 중요합니다. 선순환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시도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성공한 모든 위대한 회사들은 이 장기 시계열이라는 마법의 관점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의 성공이 5~10년간의 지속적이고 누적적인 투자의 결과라면, 내일의 성공도 예측하기가 쉬워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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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가장 좋은 전주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시간의 힘을 이해하고,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의 축이 잘 정렬된 파트너 같은 투자자는 희소할 뿐만 아니라 놀라운 가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돈이 없더라도 투자자가 함께 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참여자들은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좋은 투자자라면 동료를 구할 때 마음이 급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배제할 겁니다. 궁금하다면 그런 투자자를 만났을 때 슬쩍 물어보세요.
단기 투자로 접근해도 될까요?
학을 뗄 겁니다. 단기적으로 수익이 높다 운운한다면 위험한 사람이고요. 장기의 기준을 잘 이해 못하는 사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버핏은 과거에 23%의 수익을 내고 있을 때에도 앞으로는 15%, 혹은 그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며 기대치를 현실화하는 아주 많은 겸양을 반복했습니다. 지금도 단기적으로는 언제든 손실이 날 수 있다며 단기 투자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경고를 날립니다.
즉, 이들은 기대치가 맞지 않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위해 아주 많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이게 중요한 열쇠입니다.
인내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좋은 투자자들도 돈이 많은 사람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결과일 뿐, 실제로 찾고 있는 사람은 돈 자체가 아니라 인내심이 부자인 사람인 것입니다.
역으로 돈만 많고 마음은 조급한 사람들, 당장 실적을 쫓아 이리저리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은 역시 매력 없는 동료일 것입니다.
4.
장기 투자하라, 인내하라고 하는 말들도 사기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를 때까지 간섭하지도 말고 평가하지도 말라, 책임지지도 않겠다, 이렇게 들릴 수도 있잖아요. 동의합니다. 장기투자를 이야기해도 결과가 좋은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단기 성과로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류의 마케팅이 99.999% 사기라면, 장기 투자는 그 비율이 의미 있게 낮을 겁니다. 사기꾼은 긴 시계열을 못 보고, 기다리지도 못하거든요. 애초에 발상을 해내기도 힘들 겁니다. 찍어보자면 20% 정도만 진짜라고 해볼게요. 이 정도면 굉장히 높은 비율입니다.
좋은 투자자가 원하는 파트너는 항상 인내심 있는 투자자이지, 목돈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자신의 긴 시계열을 이야기하면 훌륭한 투자자들에게 돈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투자를 선호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어떤 분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투자자에게 위임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자격과 조건은 인내심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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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과가 장기적으로 안 좋아도 무조건 인내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애초에 못하건 잘하건 인내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을 때만 질 좋은 투자자들이 문호를 개방해 주리란 의미에 가깝겠죠. 그리고 10개 중에 5개 정도는 엄청난 수익률로 보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돈이 적어도 좋은 투자의 인연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할 겁니다.
원문: 두물머리 천영록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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