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고 있다. 남들은 이성민 때문에 봤다는데 나는 송중기 때문에 본다. 언제부터인가 송중기가 내 마음속에 와락 들어와 버렸다. 다른 누굴 봐도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 오직 송중기를 볼 때마다 한번 저렇게 태어나서 살아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있으면 황홀하고 흐뭇하다.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인사도 잘한다. 볼에 바람 넣어 귀여운 표정 짓는 것도 잘한다. 어쩜 저럴까? 강아지 아닐까?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진윤기처럼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둘째 아들 진동기가 술에 잔뜩 취해 평생 아버지 진양철 회장의 눈에 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며 살아왔는지 아냐고 목 놓아 울부짖을 때, 진윤기만 그와 같은 ‘인정 투쟁’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윤기가 돈이 없나? ‘재벌집’ 기준에서 보면 그렇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충분한 부와 명예가 보장된 삶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제기될 법하다.
첫째 아들 진영기나 둘째 아들 진동기, 고명딸 진화영은 왜 그런 행복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가? 왜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나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재미있는 책 읽고 향기로운 와인 마시며 인생을 즐기며 살지 않는가? 그편이 자신에게도 이롭고 회사에도 이롭고 국가 경제에도 이롭지 않은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진윤기를 제외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않는다. 진양철은 돈은 많지만 자식들이 변변치 않아 불행한 늙은이다. 그에게 돈이 많다는 게 과연 흐뭇한 인생의 행복으로 다가올까? 자신이 일궈놓은 순양 그룹을 마음 놓고 물려줄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사무칠 뿐이다.
진양철의 자식들은, 그 잘나가는 재벌 2세들은 행복한가? 드라마에 재현되는 그들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들 사이에는 인륜적인 애정이 결여되어 있으며 아버지의 눈에 들어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 보니 백화점을 빼앗기고 나사가 풀린 진화영은 물론이고 차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진동기, 위태로운 장남의 지위를 어떻게든 사수하려는 진영기의 삶 모두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렇게 물음을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 덕목이 그들에게 과연 중요할까? 말하자면 그들은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애초에 ‘행복’과는 다른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2.
요즘은 ‘행복’이 마치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지고의 덕목처럼 여겨지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이 아닌 다른 가치를 열망하며 살아갈 수 있다.
리오넬 메시의 아내는 남편이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몹시 괴롭고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왜?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가 인정하는 ‘월드컵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메시의 삶의 목표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이었다면 일찌감치 욕심을 내려두는 편을 택하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든 말든 내 삶은 변하지 않아. 나는 지금 나의 모습에 만족해. 하지만 메시는 그렇게 행복에 투항하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얻어 냈다.
은퇴를 미루고 명예회복을 위해 손바닥이 벗겨지도록 배트를 휘두르는 야구 선수는 어떤가? 그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윤회의 사슬을 끊듯 싹둑 잘라버리고 편히 쉬면서 그동안 번 돈으로 여생을 즐기는 것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이승엽은 왜 실패했을 때 갖은 비난이 쏟아지는 지도자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걸까? 만약 그들이 안온한 일상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와 같은 위험이 도사린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엽과 안정환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안온한 행복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진영기나 진동기, 진화영은 일상의 행복보다 경영권 세습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인물들이다.(혹은 그 외부를 상상해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매개로 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 존재의 활력을 확인하며, 그와 같은 권력을 쥘 수 있다면 행복쯤은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보여준다.
앞서 말했듯 진윤기는 그 권력 다툼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이지만 별다른 생기도 돌지 않는다. 그는 크게 화를 내지도 않고 엄청나게 기뻐하지도 않는다. 그의 삶은 무언가 텅 비어 있는 듯 보인다. 그에 비하면 진영기, 진동기, 진화영은 보다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는데, 가장 생생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진화영조차 백화점을 빼앗긴 뒤로는 눈에 띄게 생기를 잃고 만다.
3.
진양철의 자식들을 손가락질하며 부모의 인정과 분에 넘치는 권력을 헛되이 추구하다가 일상의 작은 행복을 놓쳐버렸다고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들이 욕심을 내려놓고 안락하고 비경쟁적인 일상을 선택하면 그 삶은 우리가 본받을만한 행복한 삶이 되는 걸까? 만약 우리가 행복한 삶을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단지 돈의 많고 적음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본인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있으며, 그 추구 과정은 사람들이 흔히 바라는 안온한 행복과 거리가 멀 수도 있다. 진양철의 자식들을 보며 우리가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배 권력에 대한 욕구 이외의 어떤 가치에도 감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양철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진양철은 그의 자식들과 달리 단순한 지배욕을 넘어선 가치에의 헌신을 보여준다. 물론 그 가치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갈리겠지만 말이다.
원문: 한영인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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