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딱 하나 꼽으라면, 아마 ‘단절’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달리 말하면, 무엇이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끊어낼 줄 아는 것이다. 크게는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을 이겨내는 것부터, 작게는 쓸데없는 생각을 중지시키거나 나태한 상태를 그만두며, 유혹에 휩쓸려 가는 자신을 멈춰 세우는 게 모두 ‘단절’의 일종이다.
단것을 계속 먹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어느 순간에는 끊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보통 아이라면 TV에 정신없이 빠져들기 때문에, 스스로 TV를 절제할 줄 아는 아이는 비범하게 느껴진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며 시간을 빨아들인다.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을 하려면, 몰입을 어느 순간 끊어내야 한다.
걱정이나 불안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는 근본적으로 걱정이나 불안이 없는 게 불가능한 시대다.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졌고, 금융과 자본을 둘러싼 유동성도 심해졌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리스크들을 매번 걱정하다 보면, 하루 몇 시간도 온전히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단절의 능력이 부족하면 술이나 담배, 마약 등 중독성이 심한 것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2.
인내심이나 꾸준함, 루틴 같은 것들이 요즘 시대의 화두이다. 무엇이든 꾸준히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런데 ‘꾸준함’으로 요약되는 태도의 핵심 또한 ‘단절’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달리는 시간을 다른 시간과 구별하고 단절시키는 능력이다.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오늘 기분이 어떻건, 어떤 의심이 들건, 모든 걸 끊어놓고 일단 달린다. 이게 꾸준함의 비결이다.
단절은 새로운 것의 탄생에 필수적이기도 하다. 창의성이나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라고 모두 말한다. 그런데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기존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령, 기존 패션이 점점 더 스키니해지고 달라붙을 때, 그런 상태를 끊어내고 헐렁한 패션이 등장한다면 창의적인 것이 된다. 모두가 휴대전화로는 전화 기능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런 상태를 끊어내고 휴대전화를 컴퓨터처럼 쓰는 상상을 할 때 스마트폰이 탄생한다. 창의성은 기존 상태의 연속이 아니라, 기존 상태와의 단절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
3.
단절은 거의 언제나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단절이다. 매너리즘과 권태에 빠진 나, 습관적인 중독에 빠진 나, 나태함에 빠진 나, 상처받은 나, 자책하거나 후회하고 걱정하는 나.
그런 나와 단절된 곳에 백지처럼 깨끗한 내가 있다. 이 나는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도 있고, 사랑에 몰입할 수도 있고, 나를 돌보는 일에 몰입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 상호 간에도 단절은 필요하다. 사랑하다가 자신의 일을 하고, 다시 사랑하다가 나를 돌보고, 다시 당신을 본다. 그 일에서 이 일로 ‘건너다닐’ 때에도 단절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언젠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더 자주 깨어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나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절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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