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학습’에 대한 회의
아래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어떤 목표가 학습 동기를 높인다고 생각하는가?
- 교육의 목표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교육이 효과가 있다는 신호다. 따라서 당신의 목표는 심리적으로 편안한 영역에서 벗어나 어색한 상황에 당신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 교육의 목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점점 스킬이 는다고 느낀다면 교육이 잘되고 있다는 신호다. 당신의 목표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당신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기업 교육에 오래 몸담아온 나는 2번과 유사한 목표 설정에 매우 익숙하다. 최근 내가 진행한 몇 개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를 살펴 보자.
- 조직 내 중간관리자가 조직 창의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학습해 업무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 의사결정 과정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을 학습하여 기존 의사결정 방식에 적용해 개선할 수 있다.
- 몰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의 직무에서 몰입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을 실행하고 업무 몰입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A, B, C는 모두 2번과 같이 효능감을 측정하기 위한 목표 설정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은 가급적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이해하기 쉬운 사례와 상황을 단순화시킨 토론이나 워크샵이 교육 과정 개발의 핵심이 된 지는 오래다. 여기에 게임적 요소까지 더해졌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iton)이라는 그럴듯한 용어지만, 여하튼 본질적으로는 흥미와 재미를 통해 학습자들을 교육 프로그램에 쉽게 몰입시키겠다는 취지다.
한 마디로 쉽고 재미있어야 학습 효과가 높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적용하기 쉬운 사례와 게임과 같은 요소를 잘 개발하는 것이 어느새부터 HRD(기업교육)의 대세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코로나19가 닥쳤다. 코로나는 기업 교육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코로나로 거의 모든 교육이 취소되었지만, 조직에선 현실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례, 워크샵, 게임 위주의 교육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습과 성장은 본질적으로 재미적 요소보다는 고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끝내 무언가를 알아냄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는다.
“성장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것이다”
확증편향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가 최근 발표되었다. 코넬대학교 SC 존슨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 케이틀린 울리(Kaitlin Wolley)와 시카고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 행동과학과 마케팅 교수 에일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는 2022년 4월 Psychological Science에 「Motivating Personal Growth by Seeking Discomfort」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무척 반가웠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적 성장 욕구를 높이는 방안이다
울리 교수와 피시바흐 교수는 5건의 실험을 통해 스킬 향상에 집착하는 것보다 불편함을 추구하는 편이 학습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연구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성장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것이다. 쉽고 편한 학습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쉽고 편하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연구진은 먼저 현장으로 향했다. 즉흥 연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이 글의 맨 처음 소개한 2가지 목표 중 하나에 무작위로 할당했다. 연구 결과 ‘스킬 향상을 기대한 학생들’에 비해 ‘불편함을 추구한 학생들’의 학습 성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이어 또 다른 실험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건강 관련 기사를 읽게 했다. 이때도 기사가 어렵고 불편한 게 당연하다고 인식했던 피험자들은 기사를 통해 뭔가 배우겠다고 생각한 피험자들에 비해 더 열심히 읽으려는 의지와 행동을 보였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폭스 뉴스는 우리나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있어 조선일보와 비슷하다.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뉴욕타임즈는 민주당 기관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나와 다른 견해가 불편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피험자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피험자들에 비해 반대 성향의 뉴스를 더 열심히 읽었다.
그렇다면, 왜 불편함이 학습 동기에 더 도움이 됐을까?
긍정적 경험과 피드백이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부정적 경험을 성장의 신호로 인식하는 것이 더 큰 동기부여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긍정적 자극보다 불편함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자극에 훨씬 민감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느끼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자극을 회피하거나, 맞서 싸운다. 또 다른 방식의 대처법은, 쓴 약에 꿀을 타는 것처럼 스트레스 위에 긍정적 경험을 덧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효과적인 제3의 대안이 있다. 바로 상황을 재해석하는 마인드셋이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불안하다. 하지만 이를 흥분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신이 겪는 떨림을 불안으로 해석하는 사람에 비해, 흥분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실력 발휘도 더 탁월하게 한다.
불편함 자체가 무조건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편함을 학습 과정에서 당연히 여기고 실제로도 불편함을 느껴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긍정적 요소보다 더 큰 동기부여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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