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출장을 선호하는가?
비즈니스 출장은 그 자체로 적잖은 스트레스 요인이다. 이동하는 시간을 소비하고 이동 방법을 결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낯선 환경에선 더 많은 인지적 자원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인지적 구두쇠인 인간은 생각의 자원을 더 쓰는 것을 회피하려 든다. 같은 일을 처리하더라도 익숙한 환경에서는 생각을 자동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집에서 일어날 때는 화장실로 이동해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물을 한 잔 마시는 데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자동화된 습관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하지만 출장지에서 깨어난 호텔에선 다르다. 화장실 위치며 세면기 사용 등이 자동화되지 않았으므로 매 장면마다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출장지에서는 근무지로 출근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소모해 퇴근 시간 전에는 평소보다 더 큰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집에서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자동화된 습관이 출장지 호텔에선 전혀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격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시간과 돈, 인지적 자원을 더 크게 소모하지 않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런 비즈니스 출장에도 이점이 있을까?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참신하고 보람 있는 경험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인간은 일생에서 새로운 경험과 사회적 유대가 필요한 나이대에서 자발적 이동이 가장 활발하다. 관계 형성과 경험에 대한 욕구가 높은 시기에 물리적 이동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물리적 이동량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사회적 연결을 갖고 더 위험선호적인 사고 습관을 가지며 보다 긍정적 경험을 많이 할까?
UCLA 심리학과 나탈리 사라고사-해리스 교수 등의 연구진은 물리적 이동량에 따른 정서와 위험 선호성, 그리고 사회적 연결 정도를 측정해 그 결과를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했다. 13세에서 27세의 청소년과 성인들을 모집해 GPS로 석 달 넘게 추적해 측정한 결과, 물리적 이동량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며, 더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이면서 위험 선호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더 많이 이동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긍정 정서를 경험했다. 물리적 이동의 확대는 곧 사회적 연결망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했다. 위험 선호 경향에서는 청소년과 성인이 차이를 보였는데, 성인의 경우에는 물리적 이동이 많다고 해서 위험 선호 경향이 높아지지 않았지만 청소년의 경우에는 물리적 이동량이 많을수록 위험 선호 경향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학교와 집의 안정적 이동을 벗어난 학생들이 일탈을 즐기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연구자는 지적했다.
인터넷으로 모든 게 연결된 세상이지만, 물리적 이동의 장점은 분명하다. 사회적 연결망이 넓고 긍정적이며 위험 선호 경향이 강한 사람이 물리적 이동이 높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구자들이 사전에 이러한 요인을 통제하고 분석한 결과, 물리적 이동 자체가 갖는 힘은 명확했다.
내부 에너지가 있어서 외부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내부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외부 자극이 필요하다. 두 발이 한 공간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바쁘게 돌아다닐 때, 내부 에너지가 높아져 외부 세계와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다. 뇌과학적으로 도파민 뉴런이 활성화되어야 우리는 움직이고, 참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신체를 움직이지 않고서는 도파민 뉴런이 잘 활동하지 않는다. 움직임을 유발하는 도파민 뉴런을 위해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명한 조직과 리더는 원격으로 미팅을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의 장점과, 직접 방문해 사람을 만나고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장점이 발현되는 장면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시급하고 새로운 시도나 사회적 교류의 질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원격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나 관점이 필요하고 사회적 관계망 확대가 필요한 일이라면 비즈니스 출장을 고려하는 것이 옳다.
아침형 인간은 밤에 창의적 생각을 할 확률이 높다는 ‘역설’
본 연구에서는 성인들의 물리적 이동과 위험 선호 경향 간의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위험 선호 경향은 개인의 성격에 기반하고 있는 잘 변하지 않는 특질이기 때문에 성인 시기엔 비교적 안정적인 것도 맞지만, 이동에 따른 위험 선호 경향이 밝혀진 연구도 있다(Wingo et al., 2016; Bevins, 2001). 이는 물리적 이동이 어느 정도는 새로운 경험에 대해 개방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물리적 이동으로 인한 긍정 정서는 특히 인지적 자원이 소진됐을 때, 창의성으로 발현될 가능성을 높인다. 창의성이 쉽게 나타나려면 비판과 통제의 논리적 생각의 힘이 무뎌져야 유리하다. 논리적 생각의 힘이 강할 때는 창의적 사고를 억누를 수 있다.
미시건 주립대학교 인지 신경과학과 로즈 잭스 등의 연구진은 인간에게 이른바 ‘영감의 역설(The Inspirational Paradox)’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침형 인간이 아침 시간대에 가장 활발한 인지적 활동을 하지만, 창의적 사고는 오후 늦은 혹은 밤 시간에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의 경우 오전엔 주위가 산만해도 집중할 수 있지만, 오후 늦은 시간 또는 저녁이 되면 주의 집중이 어려워진다. 이때 논리적 통제력이 약해져 창의적 사고를 하기 쉽다는 것이 영감의 역설이다. 물론, 저녁형 인간은 반대다.
그런데 긍정 정서가 창의적 사고를 증폭시키기 때문에 만약 오후 늦은 시간까지 긍정 정서가 유지될 수 있다면 창의성을 발휘하는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출장으로 인한 물리적 이동이 바로 이 장면을 만들기 용이하다.
그래서 출장지에선 더 많은 메모와 기록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 좋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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