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커피숍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커피숍은 2층 건물이며 한쪽면은 널찍한 통유리창이고 한쪽은 벽돌로 된 벽입니다. 어디에 자리를 잡으시겠습니까?
- 음료를 가져오기도 편하고 계산도 가까운 카운터 바로 앞
- 외부 풍경이 보이지 않는 1층 벽면 구석
- 외부 풍경이 보이는 1층 통유리창 옆(간혹 음료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지나침)
- 외부 풍경이 보이는 2층 통유리창 옆(사람들의 왕래는 거의 없음)
- 외부 풍경이 보이지 않는 2층 벽면 구석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하셨나요? 주변 동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흔한 심리테스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실험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합니다. 훔쳐보고 싶은 욕망 이런 게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이러한 장소가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탁 트인 시야는 물이나 음식 같은 자원을 찾거나 포식자나 적이 다가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기 유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위에서 노려볼 수 없도록 위가 막혀 있으며 등 뒤에서 공격할 수 없는 구석자리는 포식자나 적으로부터 보호해줍니다. 따라서 이 2가지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는 장소는 인간의 생존에 훨씬 유리하며, 우리의 DNA는 특별히 학습하지 않고도 이러한 장소를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대부분 4번을 택했을 텐데요, 커피숍 2층 통유리창 옆의 구석 공간처럼 바깥을 볼 수 있는 전망(prospect)과 자신의 뒤를 은폐할 수 있는 피신(refuge)이 동시에 제공된 환경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현상을 전망과 피신(prospect and refuge)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설의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대한 선호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선호하는 독특한 위치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커피숍에서 가깝고 편한 위치에 앉지 않고 굳이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뒤를 숨긴 채 바깥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는 심리적 기제는 왜 필요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기제가 조직 생활에 주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이번 시간엔 우리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장소의 특성이 조직 생활을 보다 슬기롭게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직에도 전망과 피신이론이 적용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전망할 수 있어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경영환경은 그 자체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업무 효율을 떨어뜨립니다.
예측하기 힘든 환경일수록 명확한 목표를 담은 비전과 리더십은 큰 힘을 발휘합니다. 단순히 현재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쉬운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볼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우리 사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더 자주 정보를 공유해야 업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조직 내의 직위에 따른 공간적 위치에도 전망과 피신이론이 작동됩니다. 조직에서 우리는 자신보다 높은 직위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뒤가 노출됩니다. 우리는 윗사람의 모니터를 편하게 관찰하기 어렵지만 윗사람들은 우리의 모니터를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뒤가 노출된 위치에서는 두려움이 더 큽니다.
그래서 회의장이나 면접장에서 자신의 바로 뒤에 출입문이 있다면 긴장은 높아지고 마음 편히 의견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회의를 할 때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견 내기를 강요하기보다는 나중에 따로 의견을 듣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에서 자리는 지위가 아니라 물리적 위치일 수도 있습니다.
공간적 위치에 대한 선호에는 남녀차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위치에 관한 기억이, 남성은 이동에 관한 기억이 더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건의 위치를 묻는 것은 주로 집안에서 남편이 하는 질문입니다. 동시에 쇼핑몰에서 헤매지 않고 출입구를 찾아 빠져나오는 것도 남자가 잘하는 일입니다.
성역할에 관한 학습이 충분치 않은 나이의 아동에게 레고 블록 같은 것을 쥐어 주고 무언가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남자아이들은 자동차, 배와 같은 이동 수단을 만드는 반면에 여자아이들은 집, 정원과 같은 위치에 관한 무언가를 쉽게 떠올리고 만들어 냅니다. 위치에 관한 여성의 민감성을 감안하면, 사무실이나 회의장, 회식 등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리에 따라 심리적 안정감이 다를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불안한 자리에 앉게 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의견을 제시하라고 하고 마음껏 즐기라고 한다면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조직생활을 하면서 항상 피신할 수 있는 위치에만 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사냥과 채집을 해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망과 피신 이론은 생존을 위해 항상 피신할 장소에 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신 장소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한 인간이 다음 날 사냥과 채집을 보다 활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공간의 필요성은 성격에 따른 차이도 없습니다.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하루 종일 치열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을 하고 다녔다면 퇴근 후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에 자연스럽게 끌립니다.
집 안에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나 집 근처의 카페, 공원 등도 심리적 피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적 피신의 공간에서 축적된 에너지는 다음 날 업무 성과와 관계, 창의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구불구불한 길에 더 끌린다
여러분 앞에는 두 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이나 들판 사이로 직선으로 뻗은 길이 있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들판과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구불구불한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그림이 더 끌리십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선으로 뻗은 길보다 구불구불한 길을 더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스티븐 카플란(Steven Kaplan)의 길 찾기(wayfinding)이론은 사람들이 단순한 길보다는 적당히 복잡한 지형을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구불구불 흐르는 시냇물, 모퉁이를 돌아가는 길 등은 우리에게 탐색하고자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호기심이 있어야 채집과 사냥에 유리했을 것이고 문명의 발전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즉, 호기심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발달된 심리적 기제입니다. 직선으로 뻗은 길은 너무 뻔해 매력을 느낄 수 없지만 산수화의 부드러운 곡선 모양의 길은 신비로움을 주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언가를 찾아보게끔 유도합니다.
우리가 조직에서 하는 일에는 정확성과 속도가 중요한 일이 있고, 호기심과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일에 너무 직선적인 사고와 프로세스만이 강조된다면 흥미를 느낄 리가 없습니다. 너무 정형화된 업무 프로세스는 속도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구성원들의 호기심과 집단지성에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명확한 목표와 절차가 늘 유리한 것도 아니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항상 낭비인 것도 아닙니다. 마냥 쉬워 보이는 길이나 과제보다는 적당히 구불구불한, 그래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과제를 우리는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쉽고 편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망과 피신이 있는 곳과 적당한 난이도의 과제를 선호합니다. 만일 조직이 전망과 피신이론, 그리고 길 찾기 이론에 부합하지 못한 환경이라면 심리적 안정감도 창의성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일하는 방식과 업무 환경의 변화에서 성장의 답을 찾자
코로나로 일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그간 직선으로 빠르게 달리던 방식에서 약간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 처리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무실에서 바로 회의를 소집해서 만날 수 있었는데 일정을 정하고 아젠다를 배포한 후, 화상 시스템으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불편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의외로 이런 방식에 길 찾기 이론의 지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 길에서 우리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솔루션을 발견했다면 구불구불한 길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가 발견한 지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점점 재택근무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조직들도 늘고 있습니다. 한참 만에 함께 모여 일을 할 때도 심리학이 주는 지혜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자동차와 같은 인공물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그 사물을 피해서 다시 구도를 잡습니다. 인간은 인공 환경보다는 자연 환경을 훨씬 선호하는 심리적 기제를 타고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방에는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 초원이나 공룡의 그림들로 가득합니다.
실제 성인들도 복잡한 대도시의 인공물로 가득 찬 사진보다는 빌딩 사이로 나무나 꽃이 함께 있는 사진을 더 좋아합니다. 스웨덴 Chalmers University of Technology의 Roger Ulrich 교수는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자연 풍경의 사진이 실제 생리적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위치와 풍경은 우리의 심리와 생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분수대도 고객들의 소비에 영향을 미칩니다. 분수대에 물이 펑펑 샘솟을 때, 고객들의 인당 매출액이 높아집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쇼핑몰들이 강변에 있거나 인공운하를 끼고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인공하천인 청계천이 점심시간에 잠깐 산책하는 직장인에게 주는 행복감은 우리의 예상보다 클 수 있습니다.
푸르른 초목과 열매, 그리고 꽃도 우리의 긍정 정서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꽃은 먹을 수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꽃이 있는 곳에서 열매를 얻을 수 있고, 고기를 제공할 수 있는 초식동물들도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꽃에도 큰 매력을 느낍니다. 꽃 자체가 인간의 심리에는 희망이고 기대감일 수 있습니다.
작은 화분 하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이익은 기대 이상입니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다시 사무실에 모였다면 사무실에 자연환경을 조금씩 가미하는 변화를 함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 시간엔 전망과 조망이론, 그리고 길 찾기 이론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 조직에 주는 교훈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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