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우리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객관식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고 있습니다. 2번과 3번은 확실히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정답은 분명, 1번과 4번 중 하나입니다. 다른 문제도 풀어야 하기 때문에 더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이 순간, 1번이라는 직관적 확신이 듭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번을 다시 보니, 정답이 아니라고 확실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1번이 답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1번으로 결정합니다.
이제 모든 문제를 풀고, 선택한 답을 답안지에 표시해야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아까 1번으로 결정한 문제의 답을 사인펜으로 마킹하려 하니 다시 헷갈립니다. 이번엔 4번이라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듭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주로 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실제 경험을 떠올려보면서 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보면서 정답이 헷갈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신의 경험을 토대로 더 유리한 쪽은 무엇입니까?
- 최초의 답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유리하다
- 답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혹시 처음 떠오른 답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나요? 실제 이와 유사한 장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택은 처음 답변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대략 75% 정도가 처음 생각을 믿는 편이 유리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이러한 장면에서 확률적으로 답을 고치는 편이 유리할까요, 혹은 놔두는 편이 좋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직감으로 찍은 첫 번째 답은 바꾸는 편이 더 유리합니다. 사실 우리는 시험을 보면서 답을 바꿔서 맞췄던 좋은 경험이 그대로 둬서 나빠진 경험보다 더 많습니다. 바꿔서 틀린 기억은 생생한 반면, 바꿔서 맞춘 기억은 그만큼 강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떠올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처음 답을 쉽게 바꾸지 못할까요? 심리학으로 알아보는 우리 마음의 작동법, 답을 고치면 틀릴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잘못된 신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후회스러운 기억은 좋았던 기억보다 강하고 오래간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 교수와 스탠포드 대학의 데일 밀러(Dale Miller) 교수는 일리노이 대학의 1,561명(남성 49%, 여성 51%)의 심리학 개론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중간고사 시험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실험자들은 학생들이 객관식 시험을 치를 때, 최초의 답을 바꿀 경우 특별한 표시를 하게끔 안내했습니다.
답안지 내용을 분석한 결과, 25%는 처음의 답을 바꾸는 바람에 틀렸으나(원래 정답인데 오답으로 수정한 경우), 51%는 답을 바꿨기 때문에 정답을 맞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머지 23%는 처음 답도 오답, 바꾼 답도 오답이었습니다.
학생 단위로 분석해 보니 54%의 학생들은 답을 바꿔서 점수가 높아졌고, 19% 학생들만 답을 수정해서 점수가 깎였습니다. 처음의 직감을 포기하고 다른 답으로 바꾸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실제 시험을 쳤던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무작위로 선정한 학생들 중의 무려 75%는 답을 바꾸는 것이 불리하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쿠르거 교수는 이러한 ‘잘못된 신념’의 원인이 궁금했습니다. 학생들에게 1번 문제는 답을 바꿔서 틀렸고, 2번 문제는 답을 고수해서 틀렸다는 상황을 제시한 후, 언제 더 후회스럽고 스스로 바보스럽게 느껴지는지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답을 바꿔 틀린 1번 상황을 훨씬 크게 후회했으며 자신의 결정이 어리석었다고 응답했습니다. 고쳐서 틀린 기억은 후회가 너무 커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반대로, 고쳐서 맞혔던 좋은 기억은 평소 실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기억은 그렇게 강렬하지도 않고 쉽게 잊혀집니다.
우리 뇌가 손실과 이득을 똑같이 처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날린 경험은 오래 기억하지만, 불필요한 비용을 아껴 통장에 그대로 둔 기억은 금세 사라집니다. 최초의 답을 포기해서 얻을 손실을, 답을 바꿔서 얻을 이익보다 크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최초 직감의 오류(first instinct fallacy)’는 이처럼 최초로 떠오르는 답을 바꾸는 것이 충분히 유리할 수 있음에도 최초 선택을 고수하는 인지적 오류를 뜻합니다. 새로운 대안의 좋은 면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대안을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손실만 크게 부각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 직감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잘된 결정이든, 잘못된 결정이든 결정했으니까 그냥 가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본능적으로 선택한 최초의 답을 다른 대안으로 바꿀 때가 더 유리합니다. 객관적으로 더 유리한 선택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답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다음 시험부터는 과감히 답을 바꿨을까요?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답을 바꿔서 경험한 후회가 더 빠르고 쉽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대안을 의심하고 새로운 대안의 장점을 탐색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최초 대안을 늘리고 다른 대안을 찾아라
‘최초 직감의 오류’는 보통 하나 혹은 두 개의 대안만이 있을 때 쉽게 등장합니다. 따라서 처음 대안을 셋 이상으로 늘리면 최초 직감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블랙베리, 페브리즈, 펜티엄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브랜드 이름을 제작하는 렉시콘(Lexicon)이라는 회사의 작품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브랜드는 단순한 브레인스토밍 같은 아이디어 발상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멀티트래킹(multitracking)이라는 이들만의 발상법을 활용합니다. 멀티트래킹이란 브랜드 이름을 만들 때, 2인 1조의 3개 팀을 구성하고 3팀의 대안을 동시에 검토하는 기법입니다. 최초 대안을 3개 이상으로 구성하는 것만으로 이미 생각의 범위는 넓혀집니다.
실제 이 기법이 효과가 있는지에 관해서 연구가 진행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제작하라는 임무를 준 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프로세스를 달리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광고를 한 번에 하나씩 만들어 피드백을 받게 했습니다. A라는 광고를 만들었다면 피드백을 통해 수정해서 A-1, 다시 피드백을 받아 A-2… 식으로 다섯 번의 수정을 거쳐 여섯 개의 광고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처음에 세 개의 광고를 만든 후, 피드백을 받고 두 개를 만들고 다시 피드백을 거친 다음 최종 한 개를 완성하게 했습니다.
두 그룹 모두 동일하게 여섯 개의 광고를 만들었고 다섯 번의 피드백을 받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처음에 세 개를 만든 그룹은 처음 하나를 만든 그룹에 비해 광고회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시연에서 호평을 받았고, 실제 웹사이트에 게시했을 때 고객의 클릭을 더 많이 얻었습니다. 최초 대안을 늘리는 것은 무조건 유리합니다. 하나의 대안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생각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해외 출장이나 해외여행을 갈 때,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여권입니다. ‘여권을 어디에 뒀지?’하고 생각해 봅니다. 맨 처음 생각은 바로 ‘책상 서랍 안’입니다. 찾아보니 없습니다. 다른 곳을 찾아볼 생각을 잠깐 해보지만, 여전히 책상 서랍 안에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없는 것이 확인이 됐는데도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최초 직감의 오류에 빠져 있으면 여권을 찾는 시간은 점점 길어집니다. 여권이 있을 법한 다른 장소를 떠올릴 수 있어야 오류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의사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기획안에 꽂혀 있으면 다른 좋은 기획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맨 처음에 대안이 하나였다면 다른 대안을 탐색하는 시도는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최초 대안으로부터 기획안의 Version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 선택되는 것은 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초 대안을 늘리고 다른 대안을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퇴근하고 뭘 하시겠습니까? 대안이 하나라면 하나 더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작은 생각 훈련이 더 좋은 결정을 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바꾸는 것을 후회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바꾸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바꾸는 것에 대한 후회는 바꾸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항상 더 클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지금 당장은 무언가를 바꾸는 것에 대한 후회가 크게 느껴지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5년 전, 10년 전, 20년 전.. 좀 더 먼 과거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후회가 큽니까? 대부분은 바꾸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더 많은 경험을 쌓지 않은 것, 더 많은 공부를 하지 않은 것, 다른 취미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 더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지 못한 것, 여행을 가지 않은 것 등등 먼 과거의 일일수록 그 상태를 유지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큽니다.
처음 생각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과거의 일을 돌아봐야 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지금 우리에게 교훈이 되어 바꾸는 것에 대한 확신을 높여줄 것입니다.
연초에 생각했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새해에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안을 하나 더 늘리고, 과거를 돌아보면 처음 생각에 매달리지 않고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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