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역량을 갖춘 두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성공 확률이 높을까요?
- 심리적으로 절박한 상황에서 도전할 때
-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도전할 때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1번을 택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흔히 ‘窮則通,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 뭔가 절박한 상황에서는 성공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窮에 대한 깊은 해석이 아닌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쓰는 범위에서 窮을 의미함을 밝혀둡니다)
그런데, 궁즉통은 현실적으로 맞는 말일까요? 우리 모두는 절박함으로 인한 성공 경험을 어느 정도 갖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미루다 벼락치기를 한 경험, 마감일 하루 전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작성한 보고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짜내다 섬광처럼 스쳐 간 좋은 생각… 우리의 기억 속에 절박함은 분명 성공 가능성을 높여 주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절박함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을 안정적이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전략처럼 느껴집니다.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야 조직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은 매년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기와 절박함은 정말 우리의 성과를 높여줄까요? 절박함에 관한 우리 마음의 작동법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보다 슬기롭게 절박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박하면 악수(惡手)둔다
다음 3가지 창업 방식 중에서 당신은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 성공 가능성 20%에 500만 달러 수익
- 성공 가능성 50%에 200만 달러 수익
- 성공 가능성 80%에 125만 달러 수익
3가지 창업 방식은 모두 기대가치가 100만 달러로 동일하지만, 성공 확률은 다릅니다. 스탠포드와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진들은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제 이런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성공한 창업자들이 ‘High Risk, High Return’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 진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였습니다.
연구 결과, 성공한 창업자일수록 3번을 선택하고, 실패한 창업자일수록 1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성공한 창업자들이 위험에 관한 선호도가 높을 것이라는 상식은 틀렸습니다.
우리가 위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때는 현재가 절박할 때입니다. 작은 가능성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합니다. 암 말기 환자들은 작은 생존 가능성을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그래서 생존 확률이 낮은 대안 요법에 큰돈을 쏟아붓는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
도박장에서 ‘올인(All-in)’은 이미 딴 돈이 많은 사람들이 쓰는 전략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돈을 잃고 절박한 상태에서 작은 가능성이 크게 보일 때 선택하는 전략입니다. 퇴직금을 모두 투자해서 ‘이 사업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실패 확률을 높이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궁즉통은 진실이 아닙니다. 경영학자 조지프 라피(Joseph Raffiee)와 지에 펑(Jie Feng)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내 기업가가 된 5,000명을 추적 조사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창업할 때 직장을 계속 다녔던 사람도 있었고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전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비즈니스 아이템을 테스트한 사람들과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한 사람들 중, 어떤 집단의 창업 성공 가능성이 높았을까요? 직장을 그만두고 올인(All-in)한 사람들이 보다 절박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도 높았을까요? 결과는 직장을 계속 다닌 창업가들이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에 비해 실패 확률은 33퍼센트 낮았고 성공 확률은 높았습니다.
절박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감일을 앞두고 창의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뭔가를 창작하는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높게 부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감일을 맞췄다는 성취 욕구가 더 크게 작동합니다. 성취 욕구를 충족한 만족감은 창의성을 높이는 지속적 에너지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감일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이후 창작물에서 그 이상의 창의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마감일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전략은 결과물의 질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개선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한 번은 창의적일 수 있지만 지속적인 창의성을 발현하지는 못합니다.
절박함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위험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절박함이 성공과 이어지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합니다. 『오리지널스(Originals)』의 저자인 펜실베니아 와튼 스쿨의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한 분야에서의 안정감이 다른 분야에서 자유로운 독창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험 포트폴리오(Risk Portfolio)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위험 포트폴리오란 한 분야에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다른 분야에서 신중을 기함으로써 위험을 상쇄한다는 뜻입니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특정 영역에서 위험을 감수할 동안 다른 영역에서는 안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모든 것을 걸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격언은 적어도 과학적 사실은 아닙니다.
성공한 기업들의 후속 투자가 실패한 기업의 투자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것도, 가난한 사람들의 사업 성공에 비해 부잣집 자녀들의 사업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도 위험 포트폴리오 덕분입니다.
메이저 리거 류현진의 뛰어난 투구는 결혼 후, 가정에서 주는 안정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는 러닝슈즈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팔고 다녔지만 한동안 본업인 회계사 일을 계속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1976년에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업했지만 1977년까지는 휴렛팩커드의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구글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한 이후에도 스탠퍼드 박사 과정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룹 퀸의 브라이언 메이는 앨범을 낸 후에도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을 한동안 지속했으며, ‘All of me’라는 멋진 음악으로 유명한 존 레전드도 낮에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의 경영컨설턴트로 밤에는 곡을 만들고 주말에 공연을 했습니다.
위험 포트폴리오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의 위기 의식은 구성원들에게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위기 의식이 구성원들을 똘똘 뭉치게 만들어 성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엉뚱하게도 높은 역량을 갖춘 직원들의 이직률만 높일 뿐입니다.
위기 의식은 다른 여유 자원이 확보된 상태에서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조직에서 여유 자원은 꼭 물질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신체적, 심리적 여유자원도 위험 포트폴리오 구성에 핵심적입니다.
베를린 음악학교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학생들은 하루 종일 연주 생각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조금씩 자주 섭취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집중이 필요한 장면에서 효율성을 발휘하도록 자신들의 신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던 것입니다.
성과개선 컨설팅 업체인 에너지 프로젝트(Energy Project)의 창립자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자신의 저서 『무엇이 우리의 성과를 방해하는가(The way we’re working isn’t working)』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의 구성원들이 감정에너지의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성과 모드와 휴식 모드 사이에서 균형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지점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두 영역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때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유지할 수 있으며, 스트레스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슈워츠는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컨설팅을 시작하면서 직원들의 신체적, 심리적 자원을 다음과 같은 문항으로 측정합니다.
- 적절하게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습니까?
- 아침에 업무를 시작할 때 열정과 설렘을 느낍니까?
- 우선순위에 따라 하나씩 과제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 팀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열정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 직장에서 급여를 넘어서는 목표가 있습니까? 이를 통해 동기부여를 받고 있습니까?
이 문항들에 평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심리적 자원이 충분해야 각각의 과제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생각할 여유도 생깁니다.
국내 많은 조직에서 ‘패밀리 데이’를 도입하여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정시 퇴근하는 문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 저녁이라도 6개월을 지속하면 업무 만족도, 의사소통, 일과 삶의 균형 등의 항목에서 개선됩니다. 물론 취지를 살려 제대로 휴식을 취했을 때의 성과입니다.
슈워츠는 저녁 또는 주말 동안의 휴식, 정기 휴가, 90분 간격으로 취하는 짧은 휴식, 오후 시간의 짧은 낮잠, 하루 7~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수면 등 다양한 형태의 재충전 습관은 우리의 건강과 업무효율성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성과가 개선된 것을 느끼셨다면 슈워츠의 연구 결과를 한 번쯤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만의 위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자
위기는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따라서 위험 포트폴리오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 상황에서 최악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위험 포트폴리오가 없는 조직은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위험 선호도가 높아집니다.
카지노에서 마지막 올인으로 손해본 금액을 복구하려는 어리석은 도박을 하려 듭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팔아 도박 자금으로 활용합니다. 시계, 장신구, 신발, 옷 뿐 아니라 타고 온 자동차도 팔아 원상복구를 시도합니다. 전형적인 땜질 방식의 대응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과정을 통해 뭔가 학습하는 것도 없습니다.
미 해병대는 실전에 강합니다. 탁월한 신체적 조건, 실전에 가까운 지옥 훈련, 리더십이 탁월한 지휘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미 해병대는 그들의 전통에 답이 있다고 말합니다. 미 해병대는 계급이 가장 낮은 병사가 가장 먼저 식사를 하고 계급이 높아질수록 나중에 먹습니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Leaders eat last)”는 전통은 미 해병대 구성원에게는 매일매일 겪는 일상입니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신뢰가 형성됩니다.
위기 상황에서 난데없이 ‘나를 믿고 따르라’는 말은 믿기 어렵지만, 매일매일 삼시 세끼 식사를 하면서 보인 행동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신뢰라는 심리적 안정감은 위기에 더욱 강한 군대를 만드는 법입니다.
팀원들 서로가 심리적 지지가 되고, 무언의 눈빛으로 신뢰를 느끼고 있으며, 각자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더욱 높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팀원 각자의 장점이 팀의 성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조직은 절박한 위기에서 똘똘 뭉치기 마련입니다.
절박함만으로 성과를 창출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서로가 심리적 자원이 되는 조직이라면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서로에게 심리적 지지가 될 수 있는 우리만의 전통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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