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중요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정신요법의 제3학파라 불리는 의미요법(로고테라피)은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창시한 분야입니다. 프랭클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빼앗긴 채 죽음의 공포만이 있었던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지옥과 같은 날들을 보내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며 발견한 사실은 인간은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황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심리학이 인간은 유전과 환경, 두 가지의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이었다면 프랭클은 주어진 유전과 환경 상황에서도 인간 스스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의미감은 조직 성과에도 큰 영향을 미칠까요? 프랭클이 1959년 『Man’s search for meaning』이라는 책에서 로고테라피, 즉 의미요법을 소개한 지 50년이 흐른 2008년, 듀크 대학교의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와 동료들은 프랭클의 책과 똑같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바로 『Man’s search for meaning: The case of Legos』이죠.
프랭클의 책과 같은 제목을 쓰고 로고테라피의 로고를 레고로 바꾸고, 레고를 활용해 의미감에 관해 실험을 진행한 재치는 단연 독보적입니다.
의미감은 크기가 아니라 유무다
댄 애리얼리 교수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40개의 레고 블록으로 ‘바이오니클’이라는 로봇을 조립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조립된 로봇의 숫자만큼 보상을 받게 되는데 댄 교수는 첫 번째 조립 작품엔 2달러를, 두 번째는 1달러 89센트를, 세 번째 조립엔 1달러 78센트를 지급했습니다. 작품이 늘어날 때마다 11센트씩 깎아서 총액을 마지막에 지급했한 것이죠. 이런 식이면 스무 번째 조립에 대해서 학생들은 단 2센트만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몇 개를 조립할 것인지는 학생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경제학의 전제에 따르면 학생들은 자신이 투입한 노동의 가치 대비 보상이 크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조립을 지속했을 것입니다. 이 때, 애리얼리 교수는 실험에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첫 번째는 조립한 레고 작품을 눈앞에 하나씩 쌓아서 자신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는 조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블록을 제출하자마자 눈앞에서 실험자가 해체하는 조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2가지 조건 중 하나에 무작위에 할당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떤 조건에서 더 많은 레고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눈앞에서 자신이 조립한 작품이 해체되는 장면을 목격한 학생들은 갑자기 의미감을 상실했습니다. 작품이 쌓이는 모습을 본 학생들은 평균 11개까지 만들었지만 제작과 동시에 해체된 모습을 본 학생들은 평균 7개 정도에 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블록 조립과 같은 단순 작업이라 하더라도 의미감 상실이 대략 36% 정도의 생산성 감소를 유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미감은 일을 자발적으로 지속하고자 하는 동기에 분명히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댄 애리얼리 교수의 의미감에 관한 다른 실험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번엔 문자가 무작위로 나열된 종이를 나눠준 후, 같은 문자를 찾아 표시하는 과제로 미국의 명문대 학생들에겐 매우 따분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장의 A4지에서 같은 문자로 이뤄진 10개의 단어 쌍을 찾으면 55센트를 지급합니다. 두번째 종이부터는 보상을 5센트씩 깎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몇 장의 종이에서 과제를 수행할지는 학생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보상이 매력적인 수준까지 작업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실험자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했습니다. 이번 실험은 세 집단으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 첫 번째 집단: 감독관이 학생들이 제출한 종이에 학생들의 이름을 쓰게 하고 쓱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보이는 인정 반응 그룹
- 두 번째 집단: 학생들이 제출함과 동시에 감독관이 무시하듯 종이 뭉치 위에 던져 놓는 장면을 목격하는 무시 그룹
- 세 번째 집단: 완성된 종이를 제출하자마자 감독관이 파쇄기에 넣는 모습을 목격하는 파쇄 그룹
보상은 동일했으나 감독관의 반응이 다른 이번 실험에서, 어떤 집단의 작업량이 가장 많았을까요? 그리고 어떤 집단에서 가장 적었을까요? 실험 결과 인정 반응 그룹의 학생들은 평균 9장 정도를 제출한 반면, 파쇄 그룹은 평균 6장가량을 제출하여 레고 실험과 유사한 대략 33% 정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집단은 두번째 무시 그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시 그룹이 파쇄 그룹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업 결과에 대해 무시하는 것과 결과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은 적어도 의미감 차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결론입니다.
업무지시 스킬을 학습한 리더는 업무를 부여하면서 목적과 목표, 의미감을 강조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통해 성과향상을 도모합니다. 그런데 이때 리더가 흔히 간과하는 점은, 업무의 계획과 시작에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보이나 업무 수행 결과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험의 결과를 놓고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작업한 부하직원의 보고서에 대해 ‘책상 위에 놓고 가, 나중에 검토하고 피드백 줄게’하고 세월을 보내는 것은 눈 앞에서 보고서를 찢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일에 있어서 의미감은 의미감이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의미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무관심한 반응은 지적 능력조차 떨어뜨린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 심리학과 폰투스 리앤더(N. Pontus Leander) 교수와 듀크 대학교의 심리학과 제임스 샤(James Y. Shah) 등의 연구진은 무관심한 반응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지적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험은 미국 대학원 수학능력평가인 GRE 시험을 컴퓨터로 시행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중 일부는 GRE 시험을 보기 직전, 대기 화면에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사진들에 잠깐씩 노출됩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이러한 대기 화면 없이 시험을 치게 됩니다.
놀랍게도 실험 결과, 무관심한 반응 사진에 노출된 집단은 평범하게 시험을 친 집단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점수가 낮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누군가의 지적 잠재력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떨어뜨리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단순히 무관심한 표정만 짓고 있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의 지적 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싶다면, 회의나 보고 장면에서 무관심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아주 쉽습니다. 단순히 무관심해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중요하니 ‘누군가에게 관심을 더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관심의 크기에 대해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수준보다 더 큰 관심은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심의 크기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무관심한 반응에 관해서는 개인차가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에 있어 의미감은 MOT(Moment of Truth) 즉, 짧은 결정적 순간에 형성될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과 상대의 일이나 생각에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순간입니다. 리더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관심의 크기가 아니라 관심이 없는 상태와 반응입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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