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서울스러움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이제 서울은 뉴욕, 런던, 도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의 주요 대도시가 되었다. 내로라하는 도시들 사이에서 서울만의 이미지는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분명 서울은 역사가 깊은 도시이지만,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도시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근 서울관광재단이 공개한 유튜브 영상 〈My Soul SEOUL〉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잘 반영했다. 이 영상에는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궁도 등장하지만, 영상의 주를 이루는 것은 화려하고 빠른 템포의 도시의 야경과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서울관광재단이 내외국민 9,0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 이미지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젊은이들이 저녁에 어울리기 좋은 도시’다. 상세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생애주기 가운데 서울에 가장 오고 싶은 시기는 언제인가?: 젊었을 때(77.4%)
- 마주하고 싶은 서울의 시간대: 저녁(34.7%)
- 서울과 어울리는 음악 장르: 팝(84.9%)
이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외국민에게 일반적으로 서울은 K-pop으로 상징되는 ‘빠르고, 역동적이며, 유행에 민감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울스러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서울의 로컬 브랜드는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고, 역동적이며, 유행에 민감한’ 브랜드는 아마도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투자운용사 엘캐터톤아시아로부터 700억 원규모의 투자를 받은, 펜디 같은 럭셔리 브랜드와 탑모델 지지 하디드 같은 셀럽이 먼저 찾는, 기업가치는 1조 원이 넘는 힙셔리(힙+럭셔리)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아닐까 싶다.
젠틀몬스터의 시작이 영어교육회사라고?
젠틀몬스터의 시작은 약간 독특하다. 김한국 대표는 현대캐피탈에 입사한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북미지역에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영어 교육회사인 캠프코리아(현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에 입사했다. 그는 주임으로 입사한 지 1년 반 만에 임원으로 승진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영어교육은 당국의 규제를 많이 받는 산업이었다. 그는 영어교육으로는 더 이상 비전이 없어 보다고 판단해서 대표에게 신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오랜 스터디 끝에 신사업 아이템으로 선택된 것이 ‘트렌드가 바뀌어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자 ‘대기업과 경쟁이 없는’ 안경테였다.
안경테는 완전히 새롭게 도전하는 사업인 만큼 젠틀몬스터는 생산기술, 판매 네트워크 등 모든 것을 바닥부터 쌓아가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스토리의 출발점은 창업자가 특정 아이템의 오타쿠 수준의 매니아였거나 오랜 기간 업계에 몸담으면서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창업했다는 식이 많다. 김한국 대표는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안경 오타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나라 성인 안경 착용 비율이 약 45.9%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특별히 다른 안경 착용자에 비해서 전문성을 더 가진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젠틀몬스터 창업을 준비하며 김한국 대표는 그의 부족한 전문성을 채울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검색 사이트에서 ‘안경’을 검색해 나오는 업체들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안경 산업에 대해 알고 싶다’라고 말하며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안경업체 관계자들을 어렵사리 만나고 설득해가면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브랜드 이름도 함께 지었다. “사람은 누구나 내재된 욕망이 있고 그게 바로 몬스터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고, 다소 상반된 두 단어인 젠틀과 몬스터를 연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2011년 2월, ‘젠틀몬스터’라는 이름의 브랜드가 탄생했다.
젠틀몬스터라고 처음부터 지금의 젠틀몬스터는 아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젠틀몬스터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홈트라이’를 시도했다. 홈트라이는 고객이 온라인에서 선택한 5개의 안경을 배송해주고 고객은 집에서 안경을 직접 착용해본 뒤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반송하는 시스템이다.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택배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했다.
홈트라이는 분명 우리나라 안경업계에서는 신선한 시도였지만, 고객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은 온라인으로 안경테를 따로 구매하고 안경원에서 렌즈를 맞추는 것보다는 안경원에서 검안을 마친 뒤 추천해주는 안경테를 선택하는 것을 더욱 익숙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싸늘한 반응에 젠틀몬스터는 창업 7개월 만에 폐업 위기까지 몰렸다.
반전의 기회는 ‘제품’에서 나왔다. 함께 협업 작업을 진행했던 타투이스트로부터 ‘젠틀몬스터 제품이 안 예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주요 타깃인 ‘패션피플’이 원하는 힙한 디자인에 몰입했고, 2011년 말 ‘트램씨2’를 선보였다. 그때부터 서서히 시장의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장에 존재감을 알리고 있을 때쯤,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착용하며 ‘천송이 선글라스’로 큰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이다. 스타 마케팅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계획된 PPL은 아니었다. 스타일리스트에게 협찬으로 전달된 수많은 선글라스 중 ‘예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었다. 제품에 집중하고 ‘예쁜 안경테’를 만들어낸 결과였다.
‘천송이 선글라스’는 분명 젠틀몬스터의 인지도를 크게 올려주었지만, 지금 젠틀몬스터가 가진 이미지 중에 ‘한때 천송이 선글라스로 유명했던 브랜드’라는 이미지는 전혀 없다. 젠틀몬스터가 착실히 그다음을 계획해서 완성도 높게 실행해 냈기 때문이다.
역시 젠틀몬스터 하면 공간이지!
젠틀몬스터를 말할 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공간을 빼놓을 수 없다. 젠틀몬스터는 브랜드 정체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음식을 조리해서 내는 패스트푸드처럼 15일에 한 번씩 새로운 전시를 여는 패스트 스페이스 개념의 홍대 ‘퀀텀 프로젝트(Quantum Project)’를 2014년에 시작했다. 이후 2015년 남겨진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을 표현하기 위해 목욕탕을 개조한 계동 ‘배쓰 하우스(Bath House)’를 열였고, 2021년 리테일의 미래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하우스 도산(Haus Dosan)을 열었다.
젠틀몬스터가 기획한 공간은 항상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힙스터의 성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경 브랜드가 왜 이렇게 공간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인지, 과연 이 투자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실제로도 김한국 대표는 몇천만 원 들인 공간을 한 달에 두 번씩 뒤엎는 퀀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렇게 하고 무엇을 얻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이 스페이스의 밸류가 상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지금도 김한국 대표는 말한다. 제품만 좋아서는 안 된다고. 제품·스타일링·문화·공간·기술이라는 다섯 가지 영역은 곱하기로 작동한다. 이 중에서 한 가지라도 ‘0’이라면 결국 전체도 ‘0’이 된다는 것이다.
젠틀몬스터는 이 정신에 기반하여, 제품·스타일링·문화·공간·기술 다섯 가지 영역이 녹아들어 간 ‘젠틀몬스터다운 공간’을 새롭게 만든다. 이 공간은 젠틀몬스터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하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공간팀 채용 공고에는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은 분’이라는 항목이 필수 자격요건으로 쓰여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세상을 놀라게 해주자’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젠틀몬스터는 ‘공간을 잘 활용해서’, ‘천송이 선글라스여서’ 지금의 젠틀몬스터가 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혁신적인 공간 연출이나 방송 노출 효과 모두 지금의 젠틀몬스터를 만든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젠틀몬스터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놀라게 되는 것은 공간이나 방송보다는 일관된 방향성이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김한국 대표뿐만 아니라 젠틀몬스터 직원 누구든 인터뷰할 때 반드시 나오는 한 마디가 있다.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해주자’는 젠틀몬스터의 정신이다. 김한국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뭘 하든 새로워야 합니다. 젠틀 몬스터의 목표를 설명하라고 하면, 새로운 것이 51%, 매출이 49% 정도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주 미묘한 포인트를 조절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듯 그는 ‘새로움’에 집착한다. 패션과 아트를 합쳐 전에 없던 비주얼과 맛을 선보인다는 F&B 브랜드 누데이크도, 하우스도산에서 쇼핑하는 동안 옆에 돌아다니는 6족 보행 로봇도, 선글라스 회사지만 아트 디렉터·조향사·파티시에·바리스타·소믈리에 등 다양한 직원들이 속해 있는 이유도 모두 다 ‘세상과 사람을 놀라게 하자’는 단단하고 일관된 젠틀몬스터의 정신을 기반으로 뻗어온 결과다.
“젠틀몬스터의 적은 젠틀몬스터라고 해요”
젠틀몬스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11년 창립 첫해에는 5명의 직원으로 1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지만, 2021년 기준으로는 약 700명의 직원이 2,980억의 매출을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게다가 아이웨어 브랜드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2017년에는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를, 2019년에는 F&B 브랜드 누데이크를 선보이면서 끝없이 새로움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젠틀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적당히’라는 말은 절대 통용될 수 없어 보인다. 김한국 대표는 한 강의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3개월 동안 책 100권을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결심이 흐트러질 경우 손을 잘라버리겠다는 각오로 칼을 지니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또 젠틀몬스터를 만들 때도 처음에는 안경이나 공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지만 적극적으로 필요한 인재들을 찾아내고 협업하여, 결국 젠틀몬스터를 만들어 냈다. 이 정도 열정을 가지고 완성도 있게 일을 해내면, 새로운 산업에 진입해도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지금은 누데이크를 총괄하고 있는 하예진 프로젝트 파트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되게 재수 없게 들릴 수 있는 말인데(웃음), 저희끼리 젠틀몬스터의 적은 젠틀몬스터라고 해요.
김한국 대표와 젠틀몬스터 구성원들은, 젠틀몬스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젠틀몬스터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그의 말이 영 재수 없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놀라게 해주자’는 정신을 선명하게 덧칠해오며 가장 젠틀몬스터스럽게 실현해가는 그들의 모습에 기대가 된다.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10년 뒤에는 또 어떤 브랜드가 되어있을지 말이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참고 자료
- 〈2014 [싱글즈]학교: 내 성공의 비밀 – 김한국〉(싱글즈 매거진 유튜브)
- 「[DBR] 안경을 예술로 바꾼 그들, ‘천송이 선글라스’의 신화를 쐈다」 (2014. 11. DBR)
- 「천재 괴짜 ‘김한국’ 성공 스토리」(2014. 10. 1 패션비즈)
- 「<대표를 보면 브랜드가 보인다②> 젠틀몬스터 ‘세상을 놀라게 하라’」 (2014. 05. 16 fn아이포커스)
- 「젠틀몬스터는 어떻게 10년 만에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됐을까?」(2021. 09. 10 BrandBrief)
- 「[현장] 선글라스 브랜드가 로봇을 만든다?…미래형 리테일 공간의 진화」 (2021.03.17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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