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몰라도 아는 척〉의 108화 방송대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친구 관계에 대한 속담이 많습니다. 한국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중국에는 ‘근묵자흑’ ‘맹모삼천지교’. 어린 시절 우리의 부모님도 그토록 ‘친구는 가려서 사귀어라’라고 조언을 주시곤 했죠.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친구라도 금수저…”부자 친구 많은 동네서 자라면 커서 소득↑”」이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였죠.
기사 내용에 대한 저의 처음 인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자 친구가 있다면 유리한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았죠. 댓글 역시 ‘뭐 이런 연구에 돈을 쓰나?’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사에서 소개된, 미국 성인을 7200만 명이나 조사했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지나치기는 어렵더군요. (사회과학에서는 보통 1,000명 정도를 조사해도 유의미하고 신뢰도 높은 조사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까요) 궁금해지던 차에 해당 논문을 읽다 보니, 이것 참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부분만 쏙 빼서 보도했구나 싶었습니다.
논문에서 제시한 결과에 대해 미리 알려드리고 싶은 점은, 아쉽게도 부자 친구를 쉽게 만나는 방법이나, 금수저 친구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좀 더 평등이랑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슬픈 현상이었죠.
1. 우리는 왜 금수저, 즉 부자가 되고 싶어 할까?
인간의 행복은 오랫동안 만인의 관심사였습니다. 철학이나 사회학에서도 행복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추려내고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죠.
지금까지 대략 밝혀진 것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성별이 남성일 때, 국가권력이 균등하게 분배되고 투명한 정부 밑에서 살아갈 때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소득이 높아질수록 행복도 같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 U자를 그린다는 것. 전부 사회학에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행복의 조건입니다. 오늘 소개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우정을 연구한 이 연구도 그런 행복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 중 하나입니다.
연구의 결론은 기사에서 소개된 것처럼 ‘금수저 친구가 많으면 소득이 높아진다.’라는 것입니다. 부자인 친구를 많이 사귄 가난한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끼리 친구인 사람보다 그 사람의 직업, 학력, 매력 등 자신의 조건보다 더 높은 소득을 벌었습니다. 친구의 70%가 부유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면 가난한 친구의 미래 평균 수입은 무려 20%나 증가했죠.
심지어 이러한 우정은 가난한 사람이 다닌 학교의 질, 가족 구성원의 구조, 자신의 인종보다 훨씬 큰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친구 관계가 인종이란 한계마저 뛰어넘었다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부자인 친구로부터 돈 될 만한 정보를 얻을 수도, 아니면 상류층 아이들이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는 시험의 존재를 알 수 있을 수도 있겠죠. 적어도 좌절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자극해주는 좋은 관계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 ‘네이처지’에 논문을 발표한 한 연구팀은, 이 상식과 같은 전제를 무려 7200만 명이나 되는 성인을 대상으로 엄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거대한 조사 속에서 연구팀이 알고 싶은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특정 지역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즉 사회적 사다리를 놓을 방법에 대한 고민인 것이죠. 사회적 사다리란 부의 분배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지는지 나타내는 주요한 지표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구성원들 간 상대적 박탈감은 높아지고, 동시에 사회적 위기감이 높아지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불안감은 높아져 갑니다. 이는 곧 사회 전체가 계급 상승을 위한 경쟁에 몰두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자연스럽게 삶의 피로도가 상승하고, 행복의 질은 떨어집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특히 쉽게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네요.)
때문에 연구진은 이 사회적 사다리를 회복시킬 방법을 찾다가 그 방법의 일환으로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를 비교해보고, 부자와 빈자 간의 우정까지 조사하게 된 겁니다.
2. 끼리끼리 노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최근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비슷한 경제적 지위를 지닌 사람들끼리 응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부촌 아파트, 좋은 학군 주변을 둘러싼 명품 아파트를 떠올리시면 이런 계층 간 분리가 어떤 느낌인지 와닿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자들은 대부분 부유한 친구들을 가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친구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를 들으면서 ‘비슷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당연한 얘기인데 무엇이 문제냐?’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촌이 형성되고, 가난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처럼 사회가 파편화돼가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사회 전체적인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도 있지만, 사회 전체가 낭비하는 매몰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불평등이 심해진 사회는 계층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큰 불안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회 전체에 경쟁에 몰두하게 되고, 점차 불평등하고 잃을 것이 많아진 사회는 우리나라의 사교육 비용처럼 필요 없는 잉여 비용의 소비에 낭비하게 됩니다.
또 다른 영역은 사회적 자본입니다. 흔히 우리가 인맥이라고 부르는 그것이죠. 연구는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을 발굴했습니다. 빈부 간 교류가 많을수록 비교적 부자에 속하는 이웃들이 주변의 아이들을 가난에서 구하는 데 더 능숙했습니다. 가난한 아이가 알 수 없는 시험의 존재를 알려준다거나, 대학 입학에 필요한 자기소개서에 필요한 조언을 해준다던가, 성장과 성공을 향한 매개를 해주었죠.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비율이 높은 곳 역시 빈부 간 교류가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간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국가가 계층별로 분리되면서 감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부자들은 대부분 부유한 친구들을 가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친구들을 가지게 된 것이죠.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 이외의 계층과는 만남이 적어져서, 점차 지역 내에서의 인맥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부유한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부를 지닌 사람과 매개될 수 있는 곳, 이를테면 대학에서 더욱 많은 인맥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부유한 자들은 비슷한 이들과의 교류를 찾아 적극적으로 이동한 것에 반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지역에 고스란히 매립되어, 점차 지역 간의 격차와 계급의 격차가 벌어지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계층 간 활발한 교류는, 경쟁에 매몰된 사회를 바꿔나갈 수단이 된다
마지막으로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가지고 계급 간 사다리를 놓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 대학의 사례인데요, 대학에선 값비싼 클럽 스포츠와 학교 동아리 활동에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교통비·신체검사·장비를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학생들은 공통의 관심사로 빈부에 관계없이 모여, 공통의 목표를 나누고, 우애를 다지며 계급의 유동성을 높이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학생들은 SAT에서 더욱 좋은 점수를 받거나, 가난함에도 4년제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는 등 좋은 영향을 받았죠. 또 다른 방법으로 무작위로 기숙사 룸메이트를 배치하거나,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사회 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장기간 매칭시켜 계층 간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색한 상황을 피하고, 비슷한 이들과 있고 싶어 하는 법입니다. 편하고,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 연구 말고도 다뤄보고 싶은 연구가 있었는데, 거기서 내린 결론은 ‘가족, 연애, 직장, 종교 어느 집단이든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는 집단에서 인간은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비슷한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인간끼리 모였을 때 행복도가 높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계층 간 이동이 점차 적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교류가 늘어났을 때 가난한 사람이 더욱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가 기회를 탐탐히 노리고 있는 뛰어난 사람이라서였을까요? 어떤 부자가 가난한 이들을 더 많이 도운 것은 단순히 그가 아량이 넓은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계층 간의 교류가 활발해질 때 부자는 계층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닌 풍요로움을 나누고, 가난한 사람은 패배감이나 좌절감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가능성을 꿈꿀 수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신화는 더 이상 한국에는 없습니다.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와 접점을 늘리는 것, 그것이 이 경쟁과 계급 상승에 매몰된 사회를 바꿔나갈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Social capital I: measurement and associations with economic mobility, Nature | Vol 608 | 4 August 2022
- Social capital II: determinants of economic connectedness, Nature | Vol 608 | 4 Augus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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