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명은 어떻게 된 거지? 다들 살아는 있어?”
갑자기 뜬금없지만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인터스텔라>나, <투모로우>, <2012>, <설국열차>,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이런 영화를 보고 난 직후가 아닌 이상 ‘내일 지구가 어떻게 멸망할지 몰라.’라는 상상에 깊게 빠지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대부분은 내일 먹을 점심메뉴나 만날 사람, 조금 더 진지한 고민이 있다면 미래설계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겠죠.
매년 봄이나 가을의 인상이 점점 옅어진 것이 느껴질 때면 ‘지구 온난화가 정말 오고 있구나’하는 정도의 실감은 있습니다. 다만 통장에 찍힌 숫자에 대한 걱정을 찍어 누르고 올라오기엔 부족할 뿐이죠. 미디어에 묘사되는 기후위기도 온실가스로 인해 뜨거워지는 날씨와 녹아내리는 빙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북극곰 정도랄까요.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저 역시도 ‘지구 멸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국내의 젊은 작가들이 불어넣은 일명 ‘SF 붐’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창작자들이 인문학과 페미니즘이 뒤섞인 걸작들을 써 내려가자, 자연스럽게 기후위기를 상상하게 된 것이죠.
기후위기를 다루는 SF소설의 여러 모티브 중 저를 가장 두렵게 만든 것은 단연코 ‘페르미의 역설(Fermi’s paradox)’입니다. 원자폭탄 설계 팀의 일원이자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remi)는 점심시간 동료와 시시콜콜한 잡담에 빠져들었습니다. 대화의 소재는 당시 미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UFO였죠. 대화를 하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페르미는, 정신을 차린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우주가 그렇게 광활하다면 우리는 왜 아직도 다른 지적 생명체나 우주 문명과 조우하지 못한 걸까?
페르미의 이러한 상상력에 여러 설정으로 답을 준 SF소설은 많지만, 의외로 답은 굉장히 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탄소 기반 문명을 구축한 지 수백 년이 되지 않아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도달한 것처럼, 수백억 년의 역사를 지닌 우주에서 이미 출현한 다른 문명은 서로를 발견하기 전에 스스로를 태워 죽인 것일지도 모르는 셈이죠. 차라리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처럼 이미 지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완벽에 가까워진 외계인이 우리가 충분히 성숙해질 때까지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클리셰를 믿고 싶을 정도입니다.
<기생충>이 보여주는 기후 위기의 아이러니
기후위기를 주제로 인권과 정치적 갈등과 연관된 인상 깊은 상상력을 제공한 다른 작품 중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 중 하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입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질 것 같은 폭우라는 기후재난이 부유층에게는 그저 잔디가 깔린 넓은 집 앞마당에서 비 오는 날의 캠핑을 즐기게 해주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소득층에겐 기후위기란 침수로 인해 역류하는 똥물 속에서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건져 내야 했던 사투의 현장일 뿐입니다.
1인당 배출하는 탄소의 양은 저소득층에 비해 고소득층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과 피해는 저소득층의 삶에 직격탄으로 돌아온다는 아이러니는 <기생충>에서 고소득층의 ‘인디언 캠핑’이란 메타포로 상상력을 보태 상징되기도 합니다.
미국은 자연과 조화된 삶을 살아가던 인디언을 정복하고 세계 제일의 탄소 기반 문명을 세워냈습니다. 인디언은 본질을 상실한 채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기생충 속 인디언 시뮬라크르의 홍수 속에서 기후재난은 추억으로 미화될 뿐입니다. 이는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와 피해자가 뒤집히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전환된 아이러니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상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것은 실타래 풀듯이 간단한 일이 아닐 겁니다. 기후 문제는 결국 우리들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될 문제로 남겠죠. 저는 기후전문가가 아니고, 심지어 이 분야를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굳이 기후 파트를 따로 떼어내 쓰기로 결정한 것은 스스로도 기후위기를 알아가기 위함이기도 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상상력을 공유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한 편의 영화 같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기후위기에 대한 상상력을요.
팬데믹은 앞으로 다가올 기후위기의 ‘개막식’이다
좋아요, 똑똑한 사람들이 준 시나리오를 읽어봅시다. 재난 영화는 기후 위기가 불러올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병충해에 의한 식량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찾아 은하를 건너는 영화부터 해수면의 상승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반쯤 잠긴 채 얼어붙는 영화, 사막화된 지구 속에서 물과 석유라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적 갈등을 겪는 8기통 테크노 바바리안들에 대한 상상.
어느 것도 겪고 싶지 않은 암울한 미래지만, 지금 상태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 동시에 겪어야 할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나리오의 개막식 같은 증상이 근 2년간 우리의 일상을 갉아먹은 팬데믹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설 중 하나를 짚어봅시다. 산림 벌채, 도로 건설로 대표되는 인류 문명의 외연 확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앓던 질병이 도시의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해 인수 감염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증상입니다.
스페인 독감 또한 인수 감염이 전 세계를 물들인 사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바이러스를 분리·보존하는 기술이 없어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한 농장에서 인수 감염을 통해 전파가 시작되었다는 추측이 존재합니다(〈익스플레인 : 코로나바이러스를 해설하다, 2020, 넷플릭스 다큐〉) 비정상적으로 밀집된 인구와 가축이라는 비자연적인 환경이, 본래 같은 종끼리만 전파되는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옮겨 ‘스페인 독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주장이죠.
인간의 외연 확장 중 하나인 이주와 운송의 발달은 바이러스의 발이 되어 전 세계로 퍼지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대륙과 대륙을 건널 운명이 아니었는데, 감당할 수 없는 발을 얻었다’는 주장이죠. 매클루언식 미디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인간은 외연적 확장이 극에 달한 나머지 바쁘게 살아야 하는 운명을 떠안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팬데믹으로 인해 이동이 제한되어 버리는 ‘자가 절단’을 얻어버린 것입니다.
1도가 올라갈수록 ‘불지옥’이 되어갈 지구
팬데믹은 기후위기가 불러올 여러 시나리오 중 겨우 한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오며 쌓은 방대한 레퍼런스를 통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할 경우 발생할 12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기온이 상승하며 가을이 점점 짧아집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사막화가 진행되며, 복합적인 기후 변화로 인해 빈곤과 난민 문제가 심화됩니다. 예기치 못한 산불과 재난이 더욱 자주, 높은 빈도로 발생할 것입니다. 바다 생태계는 붕괴되고 팬데믹처럼 인류가 만나 본 적도, 알지도 못하던 바이러스가 전파됩니다. 기후 분쟁이 시작됩니다.
좀 더 시나리오를 단순화시켜 “1도씩 기온이 상승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제시하는 분석도 존재합니다(『6도의 멸종 : 기온이 1도씩 오를 때마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마크 라이너스). 기온이 2도 상승하면 가뭄이 지중해 연안과 인도의 상당 지역을 강타할 겁니다. 전 세계 옥수수와 수수 농장이 문을 닫아 세계 식량 공급은 패닉에 빠질 겁니다. 옥수수를 사료로 제공하는 축산 농장을 포함해서요!
심지어 공기 중 이산화탄소량이 늘어날수록 작물의 영양소가 떨어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The Great Nutrient Collapse」Helena Bottemiller Evich, Politico(2017)). 당 자체는 늘어나지만 그만큼 건강에 유익한 다른 영양소, 예컨대 칼슘이나 단백질, 철분이나 비타민C 같은 영양소가 줄어들면서 불량식품처럼 변하고 말 거라는 주장이죠.
3도가 오르면 4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물 부족을 겪을 겁니다. 4도가 오르면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는 너무 더운 나머지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합니다. 북위도 지방조차 여름마다 폭염으로 수천 명의 목숨이 위협받고, 인도는 32배의 폭염이 발생하여 93배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겁니다.
사하라 사막과 근접한 남부 유럽은 가뭄에 시달리게 되고, 카리브해 근방은 21개월 더 오래 지속되는 건기를 겪게 되죠. 북부 아프리카는 더욱 심각해서 건기가 60개월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5년간 비를 제대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2050년 즈음에는 아시아에서만 약 10억 명이 될 것입니다. (「Projetions of Water Stress Based on an Ensemble of Socioeconomic Growth and Climate Change Scenarios : A Case Study in Asia」, Charles Fant)
안 그래도 산불이 잦은 지중해 지역은 2배, 미국은 6배 이상 화재가 늘어납니다. 2017년에 가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토마스(Thomas) 화재는 10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을 발생시켰는데, 이런 최악의 화재가 2017년만 해도 캘리포니아 주에선 9천여 건 발생했습니다.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최악의 화재가 덮쳐올 확률 역시 동반 상승하는 것입니다.
생태계 그 자체가 변화하면서 닥쳐올 문제들도 만연합니다. 뜨거워지고 말고를 떠나, 공기 자체도 건강에 나빠질 겁니다. 기온 상승이 불러일으킨 가뭄은 공기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분진 노출, 분진 폐렴이라 불리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SF소설처럼 온 지구를 유해한 분진이 뒤덮어 분진을 막기 위해 돔을 덮는 도시 국가가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분진으로 인해 사망률이 2배 올라가고 입원이 3배 이상 증가하는 치명적인 재난이 나타날 겁니다. (「Drought Sensitivity in Fine Dust in the U.S Southwest」 Ploy Achakulwisut) 미디어에도 자주 노출되었던 피해 중 하나인 산호 백화현상(Coral Bleaching)은 바닷속 생태계의 근원이자 식량 공급원인 황록 공생 조류를 사멸시켜 바다 생태계의 순환 시스템에 치명적인 피해를 낳을 것입니다. (Robinson Meyer, “Since 2016, Half of All Coral in the Great Barrier Reef has Died”, The Atlantic, 2018)
팬데믹과 같은 바이오 하자드는 바이러스 인수 감염뿐만 아니라 생물을 매개로 한 전염으로도 더 자주 발생할 것입니다.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모기가 사람 피를 빠는 일이 잦아지니 더욱 체감되는 영역이기도 하죠.
황열병은 원래 아마존 분지 지역, 혹은 밀림에서만 일어나는 병이었습니다.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만 걱정할 문제였죠. 그러나 기후 상승으로 인해 2016년부터 모기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황열병 역시 아마존 분지를 벗어나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대도시에도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죠.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판자촌을 중심으로 3천만 명 이상의 사람이 치사율 3~8%에 이르는 전염병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Yellow Fever Circles Brazil’s Cities」 Shasta Darlington and Donald G. Mcneil Jr.)
이처럼 기후위기는 생각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알지도 못하는 바이러스를 더 빨리, 더 많이 인류에게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비용도 큰 문제입니다. 다들 겪은 것처럼, 팬데믹은 단순히 치사율을 떠나 사회적 기반과 시스템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비용의 문제를 남겼습니다. 선진국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긴 하였지만, 몇 세기 전 일부 국가가 다른 지역을 식민지 삼아 한껏 누렸던 자산을 바탕으로 되찾은 안정일지도 모릅니다.
늘어나는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국가에서는 기후 난민이 발생하여 정처 없이 세계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지 않을 경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이 세 지역에서만 기후 난민이 1억 4000만 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Armed-Conflict Risks Enhanced by Climate-Related Disasters in Ethnically Fractionalized Countries」 Carl-Fried Schleussner, et al,)
마치며
사실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늘어놓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똑똑하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이미 많이들 한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리고 “왜 반응하지 못했는지”라는 열린 질문입니다. 우리의 발치에 덩그러니 놓인 이 질문에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