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의 경찰서에 수사관 접견을 가는 길이었는데, 도로에 널브러진 자동차들이 보였다. 도로 한 가운데 차가 그냥 세워져 있기도 하고, 양옆에는 버려지다시피 한 차들이 몇십 대는 있었다.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고, 지난밤 폭우의 영향이라는 것은 계속되고 있었다.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수해를 입은 자동차만 수천 대라고 한다.
개중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건 거의 만신창이로 버려져 있는 1톤 트럭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전 재산에 가까울지 모를 트럭도 있을 것이다. 그런 트럭을 버리고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탈출해야 하는 심정이나 긴박함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이 기록적인 폭우는 분명 더 가혹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혹함도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척 스산함을 느꼈다.
2.
유럽의 기록적인 폭염, 전 세계적인 가뭄, 우리나라의 폭우, 호주의 산불,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녹고 있는 빙하, 이 모든 것이 ‘기후 위기’를 가리키고 있다. 물론 폭우와 기후변화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는 더 밝혀나가야 하겠지만, 기후학자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 온도 상승 시 지목한 현상들과 거의 일치한다.
폭염, 폭우, 가뭄, 산불, 태풍, 천둥번개 등의 급속한 증가는 거의 예정된 미래였고, 동시에 현재이며 올해이자 내년의 일이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학자는 울면서 ‘지구 또는 인류’가 위기라는 걸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사실 기후 위기가 도래하더라도, 이번에 목도한 것처럼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기후 취약 계층이 먼저 받게 될 것이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예견한 것처럼, 반지하에 사는 주거 취약 계층이 기후 취약 계층이 된다.
상류층 사람이라면 자동차 하나쯤 망가져도 새로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의 자동차 하나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은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몰려올 수 있다.
기후 위기의 일종이라고 말해지는 코로나19 초창기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건 자영업자나 아르바이트생 등 ‘기후 취약’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었다. 반면 일반적인 소비 흐름이 주춤하면서 현금이 자산으로 쏠리고, 자산 폭등으로 어마어마한 혜택을 누린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가령 강남에 10억쯤 하던 아파트는 30억이 되었다. 기후 위기는 당장 인류를 멸망시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양극화를 전례 없이 심화시키면서 누가 약자이고 강자인지를 확정 짓는다.
3.
기후 위기가 세대 문제라는 것은 명확하다. 가령 올해 7월 28일 자로 지구가 가진 1년 치 탄소 자정 능력은 고갈되었다. 2022년 기준으로 7월 29일부터 지구는 더 이상 올해 배출되는 탄소를 자정할 능력이 없어진다. 즉 8월부터 12월까지 배출되는 탄소는 고스란히 쌓여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킨다. 8월부터 12월까지의 탄소는 미래 세대의 지구를 빌려 쓰는 것과 같다. 이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매년 앞당겨지고 있다. 이건 모두 미래 세대에 지는 빚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또한 계층 문제이기도 하다. 전 세계 기준 상위 1%가 쓰는 에너지량은 하위 50%가 쓰는 에너지량보다 많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후 위기의 피해는 또다시 기후 취약 계층 사람들이 고스란히 입게 된다. 기후 위기가 아무리 심화되어도, 안전할 사람은 꽤 오랫동안 안전할 수 있다. 더 강고한 성채 같은 단지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축적한 자산으로 기후 위기와 맞서 싸울 수 있다. 반면, 성채 바깥의 취약 계층은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 것이다.
당장 윤리적으로 완벽한 실천을 하자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도 내 일상을 채우는 것들을 당장 모두 포기하고, 탄소 발자국을 극적으로 줄일 자신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모든 사태를 인지하고, 그런 인식을 서로 공유하며, 조금씩 실천하고 바꾸어갈 수 있는 것들은 해나갈 필요를 느낀다.
기후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내년, 내후년에는 더 기록적인 폭염이나 폭우, 가뭄, 태풍이 올 것이다. 얼마 전 UN 사무총장은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공동 대응 또는 집단 자살뿐입니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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