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고를지 몰라 준비해봤어
둘 중에 하나만 골라 yes or yes?
네 마음을 몰라 준비해봤어
하나만 선택해 어서 yes or yes? (…)둘 중에 하나만 골라 yes or yes? (hey)
하나만 선택해 어서 yes or yes?
하나 더 보태서 yes or yes or yes
골라봐 자 선택은 네 맘
- 트와이스의 <Yes or Yes> 중에서
개인적으로 트와이스의 <Yes or Yes>를 들으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2004년 KBS에서 방영된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차무혁(소지섭)이 송은채(임수정)에게 했던 대사다. 송은채가 “차 세워줘요. (안 세워주면) 창문 열고 뛰어내린다.”고 하자, 차무혁은 이렇게 응대했다.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밥 먹을래, 나랑 잘래?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
지금 잣대로 보면 데이트 폭력(?)에 가깝지만, 소지섭의 이 대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미사 매니아’들이 꼽는 최고의 명대사로 남아있다.
소지섭의 대사와 트와이스의 가사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응답 대안을 두 가지로 제시하는 이분형 질문(dichotomous questions)이라는 점이다. 이분형 질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질문법으로 주로 질문자가 주도권을 쥐고자 할 때 쓰는 방법이다. 2004년엔 남성이 이 질문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2018년엔 여성에게 질문의 주도권이 넘어간 점도 흥미롭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레전드 장면
폐쇄형 질문 VS 개방형 질문
질문의 형태는 크게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s)과 폐쇄형 질문(close-ended questions)으로 나눌 수 있다. 개방형 질문은 선택할 수 있는 응답 대안이 주어지지 않아 응답자가 자유롭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고, 폐쇄형 질문은 응답할 대안 항목을 응답자에게 제시하고 선택하게 하는 방법이다. 크게 보면 이분형 질문도 폐쇄형 질문에 속하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이분형 질문과 폐쇄형 질문의 차이를 확인하기 전에 우선, 개방형 질문과 폐쇄형 질문의 장단점을 알아보자. 개방형 질문은 응답자의 자율을 보장하기 때문에 다양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응답자가 답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바로 이 지점에 폐쇄형 질문의 장점이 있다. 폐쇄형은 응답자가 크게 고민하지 않게 답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폐쇄형 질문에는 응답 보기에 이미 질문자의 의도가 녹아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분형 질문의 경우 분명 폐쇄형 질문이지만, 답하는 입장에선 선택권이 보장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예를 들어, 임원과 함께 간 중식집에서 “나는 짜장면이 좋아요. 다들 그렇죠?”라고 폐쇄형으로 물으면, 이 질문에는 질문자의 의도가 명백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기 어렵다. 이처럼 폐쇄형 질문을 받으면 응답자는 자율권을 박탈당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짜장면 먹을래요? 짬뽕 먹을래요?”라고 물으면, 사실 이 질문에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자의 의도가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답변하는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게다가 “먹고 싶은 게 뭐예요?”라고 묻는 개방형 질문에 비해 답하기도 편하다. 특히, 중식집에서 자신의 선호가 분명하지 않고, 중식 요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할 경우 더 그렇다.
따라서 이분형 질문은 속성은 폐쇄형 질문이지만, 겉보기엔 개방형 질문의 장점을 흉내 낸 질문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련한 부모나 판매원, 협상가는 이분형 질문을 선호한다. “언제 숙제할래?”라는 개방형 질문에 답을 곧바로 하는 아이들은 흔치 않다. 그렇다고 “숙제는 저녁 먹기 전에 끝낼 거지?”라고 묻는 질문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지시적 형태다. 이때는 이런 이분형 질문을 활용하는 편이 좋다.
숙제는 밥 먹기 전에 할래? 밥 먹고 나서 할래?
이는 구내식당에 메뉴가 한 가지밖에 없는 폐쇄형이나 외부 식당에서 매번 메뉴를 선택해야 하는 개방형보다, 구내식당 메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형일 때 만족감을 높이는 것도 같은 원리다. 실제로 구내식당에 메뉴가 하나일 때보다 두 개로 늘릴 때 이용률은 크게 높아진다.
‘결정 피로’를 줄이는 편리한 방법
이분형 질문은 특히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느낄 때 효과적이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인지적 가용 자원이 충분할 때는 개방형 질문에 답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기 쉽다.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퇴근 후 집에서 먹을 음식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음식을 하는 과정도 힘들지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도 못지않게 힘들다. 자연스럽게 배달 음식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이런 마음을 잘 아는 배달앱은 접속하자마자 추천 메뉴를 띄워준다.
결정 피로는 샌디에고 주립대학교(San Diego State University) 심리학과 진 트웽이(Jean Twenge) 교수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낸 개념이다. 미국에서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 신혼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리스트로 작성해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관습이 있는데, 이 리스트를 작성하는 예비부부는 적잖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트웽이 교수는 웨딩 플래너와 리스트에 올릴 품목을 고민하다 문득 연구 주제를 떠올렸다.
혹시 뭔가를 결정하는 것이 심리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의지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트웽이 교수는 테니스공, 양초, 티셔츠, 껌, 콜라 깡통 등 여러 물건을 올려 둔 탁자를 준비한 후, 학생들을 두 그룹을 나눴다. 결정 그룹에 속한 학생들에겐 임의로 제시된 두 개의 물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상형 월드컵’과 유사한 게임을 진행했고, 비결정 그룹의 학생들에겐 각각의 물건을 보고 의견이나 최근 사용경험을 말하도록 했다. 이후, 연구자는 학생들이 얼음처럼 차갑거나, 아주 뜨거운 물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지 의지력을 측정했다. 연구 결과, 결정그룹에 속한 학생들이 비결정 그룹의 학생들보다 훨씬 빨리 손을 뺐다.
사소한 결정도 거듭되면 심리적 에너지를 소진하기 쉽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터틀넥,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다. 아인슈타인은 회색 정장만 입었고, 버락 오바마는 네이비 슈트만 즐겨 입었다. 이들은 사소한 결정을 하느라 의지력이 고갈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사람들이다.
트와이스의 ‘Yes or Yes’는 이분형 질문에서 한 수 더 나간다. 이분형 질문의 탈을 쓴 완벽한 폐쇄형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언제 먹힐까?
이미 다른 결정으로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거나, 다른 일로 스트레스가 커 질문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결정을 미룰 만큼 크게 소진되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이 질문은 결정 에너지가 충만한 오전에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된 밤늦은 시간 혹은 새벽 시간도 부적절하다. 퇴근 후 지쳐 있지만, 달콤한 음료나 쿠키로 에너지원을 잠시 확보한 상태 정도가 최적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선명하게 네 맘을 내게 보여봐’라고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트와이스는 선명한 마음은 폐쇄형 질문으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대답만 ‘Yes’로 명확하다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개방형 질문이 필수적이다.
IBM 연구소의 비플라브 스리바스타바(Biplav Srivastava) 연구원 등의 연구진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 폐쇄형과 개방형 질문을 활용해 어떤 질문의 패턴이 효과적인지 분석했다. 폐쇄형과 개방형을 섞은 경우, 더 적은 질문으로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응답자가 질문에 협조적일 때, 그리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 만족스러울 때 효과적이었다.
응답자가 질문에 협조적이지 않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개방형 질문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따라서, 트와이스가 상대의 선명한 마음을 알고 싶다면 개방형 질문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질문의 시기와 상대의 상태를 감안한 운영의 묘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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