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채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진정성 있는 삶을 바란다. 진정성 있는 삶의 지향점을 찾고 진정성 있는 배우자를 만나고 진정성 있는 리더와 일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리더와 일할 때 직무에 더 만족하고 성과도 높다. 또, 진정성을 나누는 결혼 생활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하고 이혼율도 낮다.
우리 삶에 진정성은 미덕이다.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을 발견해 그것을 성취하려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본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며 세상과 교류하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정성 없는 성취는 거짓되고 공허할 뿐이다. 우리는 진정성에 항상 목마르다.
그런데,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라”는 금언을 충실히 따르지 못한 인생은 과연 가치 없는 것일까?
진정성이란 뭘까?
휴스턴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진정성은 우리의 진짜 자아를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브라운 교수는 진정성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드러내고 포용하는 것이 자신답게 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난 브라운 교수의 견해를 감히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수긍할 수도 없다.
누가 나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하겠는가? 나를 강연에 초빙하는 고객사와 청중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크게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 거기에 효과적인 전달 스킬만을 바랄 뿐이다.
때때로 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편히 노출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왜 내게 저렇게까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 어떤 때는 치부라고 여길 수 있는 약점까지 얘기하는지 공감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나는 내게 진심을 토로하는 사람보다는 적당히 자아를 숨기고 거리를 두는 사람이 훨씬 편하다.
사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진정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나 혼자만의 여행에선 진짜 자아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입사 면접을 보러 가거나 고객을 응대하는 환경에선 진정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자신의 타고난 성격 특성인 셀프 모니터링(self-monitoring)이 진정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황이 변해도 좀처럼 태도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타고난 성격적 특성이다. 셀프 모니터링이 높은 사람은 사회적 신호에 민감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 하지만, 셀프 모니터링이 낮은 사람은 처한 상황보다는 내면의 상태에서 오는 신호에 훨씬 더 민감하다.
낮은 셀프 모니터링의 사람들은 높은 셀프 모니터링의 사람들을 카멜레온이나 위선자라고 비난하지만, 적어도 조직에서 이들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더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오른다. 높은 셀프 모니터링의 사람들이 사회적 평판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가 지켜보는 환경에서 더욱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 낮은 셀프 모니터링의 사람들은 진정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지만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쉬워 조직에선 프로답지 못하다는 평을 얻곤 한다.
진정성은 리더에게 필요한 요소일까?
아이러니한 사실은 우리가 진정성 있는 리더를 원하지만, 환경 변화에 잘 대처하는 높은 셀프 모니터링의 사람들이 리더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데이비드 데이 교수 등의 연구진은 136건의 연구, 2만 3천 명 직원들을 분석한 결과 높은 셀프 모니터링의 사람들이 리더의 위치에 승진하기 쉽고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Day DV, Schleicher DJ, Unckless AL, Hiller NJ. Self-monitoring personality at work: a meta-analytic investigation of construct validity. J Appl Psychol. 2002 Apr;87(2):390-401).
더 아이러니한 일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표출한 리더의 성공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리더로서 어려움과 두려움을 솔직히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한 리더가 자신감과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성은 꼭 우리 삶에 필요한 요소일까?
그렇다고 내가 삶에서 진정성을 추구하지 말고 카멜레온처럼 환경에 잘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진정성에 대한 환상이 과도한 나머지 진정성이 엄격한 도덕 가치가 되어 삶에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진정성이 부족한 성취면 어떤가? 진정성이 다소 부족한 만남이면 또 어떤가? 성취 후에 주변을 더 챙기면 되고, 만남 후에 진정성을 나눌 시점은 분명 올 것이다.
최근 연구들을 보면 자기 정체성조차도 하나의 분명한 특성일 필요가 없다. ‘Be yourself’가 되려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점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 배스대학교 경영학과 오틸리아 오보다루 교수는 자기 개발과 직업적 성공을 포함한 만족스러운 삶에 있어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복수의 대안적 정체성이 보다 효과적임을 역설했다(Obodaru, O. (2012). The self not taken: How alternative selves develop and how they influence our professional live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37(1), 34-57.). 사람들은 특정 자아 인식에만 머무를 때, 대안이 될 수 있는 다른 자아의 가능성에 문을 닫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펜실베니아 와튼스쿨의 아담 그랜트 교수는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것이 아이의 정체성을 직업으로 규정해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들에겐 직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이 커서 원했던 직업은 사라지더라도 다른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너 자신이 되라’는 말은 무시하고 사는 편이 좋다. 그런 조언은 이미 좋은 조건과 안정된 환경을 갖춘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SNS로 자신의 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소통하는 일론 머스크나 정용진 부회장과 같은 분들은 부러운 대상이지 롤모델은 아니다.
나 자신이 되기에 평범한 우리가 처한 환경은 너무 불안정하다.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정체성과 진정성을 확고하게 정하기보다는 매 순간 성장하고 변화하는 자신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더 중요하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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