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수상이 암살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치적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애도의 마음이나 명복을 빌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는 강성 우파로서 일본의 반인륜적, 반문명적인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시종일관 우리에 대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데다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자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현직 수상으로서 암살에 의해 죽은 사람은 이번으로 6번째이다. 1909년 초대 수상을 역임하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에 의해 사살된 이후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4인의 전현직 총리가 암살에 의해 사망하였으며, 전후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아베 전 수상이 처음이라 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입헌군주국으로 바뀐 이래 지금의 101대 기시다 수상에 이르기까지, 총 64명의 인물이 수상의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본다면 약 10%의 전현직 수상이 암살에 의해 사망한 셈이다.
수상 재임 횟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로서 총 5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했으며, 다음으로 4회 수상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가 있다. 그러나 재임 일수 기준으로 본다면 아베 신조가 사상 최장이다.
2.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는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4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했으며, 암살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출신지가 쵸슈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현 일대)으로서 같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우리 한국인들에게 나쁜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다.
이토나 아베 모두 4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했으나, 경력 면에서 본다면 이토가 훨씬 더 화려하다. 아베는 수상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 2차례에 걸쳐 수상 도전에 실패한 경력이 있다. 이에 비해 이토는 메이지 유신 공신으로서 쵸슈번의 일개 무사에서 공작이라는 최고 귀족의 자리에 올랐으며, 44세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초대 수상 자리에 오른 후 4회에 걸쳐 수상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천황의 자문기구인 추밀원의 의장직을 3차에 걸쳐 맡았고, 또 초대 조선통감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두 사람 모두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밉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도 보인다. 한국에 대해 아베가 매파적 자세였다면 이토는 비둘기파에 가까왔다. 아베는 스스로 강성 우파의 선두에 서서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이토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정치권력의 핵심은 모두 메이지 유신 공신, 이른바 명치원훈(明治元勲)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 대다수의 공신들이 조선의 병합을 주장하였으나 이토는 이에 반대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부국강병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여야 한다는 강경파들에게는 이토는 상당한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조선 병합에 반대하던 이토도 암살 직전인 1908년 무렵부터 태도의 변화가 보인다. 조선병합 강행파의 의견에 제동을 걸지 않으며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쪽으로 입장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일본의 실세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진심으로 조선을 위한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된다. 그로부터 꼭 70년이 지난 1979년 10월 26일엔 박정희가 사살되니 10월 26일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토 히로부미는 총에 맞아 쓰러진 후, 자신을 쏜 사람이 조선 청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를 쏘다니, 바보 같은 자식이다.
그로서는 자신이야말로 일본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진심으로 조선을 걱정해주는 사람인데, 그런 자신을 죽이다니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3.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조선에 대해 매파든 비둘기파든 오십보백보로서 일본의 정치 지도자란 어차피 그놈이 그놈일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우리의 국권을 찬탈하는데 앞장섰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가 매파든 비둘기파든 우리에겐 별 의미가 없다. 한국인이라면 그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칭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은 요즘의 젊은이들 표현으로 1도 없다.
다시 아베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강성 발언과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자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않던 자이다. 반도체 원자재 수출 규제로 우리의 등 뒤에 비수를 꽂은 자이다. 나로서는 그의 죽음을 도저히 애도하거나 명복을 빌어 줄 수 없다.
원문: 이재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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