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일본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나라가 또 없을 것이다. 일본은 지리적으로도, 또 많은 부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나라다. 그러나 77년 전 식민 지배의 역사는 여전히 한국인들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있다.
안 그래도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던 양국 간의 관계는 문재인 정부와 아베 정권 기간 중 악화 일로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이뤄졌던 위안부 협의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비등했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승소 선고를 내림으로써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무역 제재와 지소미아 종료 논란이 이어졌고, 한국에서는 일본산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꼬일 대로 꼬인 대일 관계에 돌파구는 있을까. 문재인 정부를 ‘반일’이라 공격했던 윤석열 당선인은 경색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게 될까.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일본 대학교에서 정치와 행정을 가르치고 있는 이헌모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인터뷰이: 이헌모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했고, 1990년 일본 정치의 격변기에 일본 유학을 감행하여 30년째 일본 도쿄에 살고 있다. 현재 지바현 중앙학원대학 교수로 정치와 행정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등이 있다.
이헌모 교수의 책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 일본 정치 이해를 위한 필독서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 성공으로도, 실패로도 볼 수 있다
임예인: 일단 총평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이헌모: 사실 한 가지로 얘기할 수는 없겠죠. 보는 관점에 따라 성공으로도, 실패로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일단 성공이라는 관점부터 여쭙고 싶어요. 이번 정부 들어 대일관계가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어떤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할까요?
이헌모: 한일관계가 좋아졌느냐 나빠졌느냐를 따진다면 당연히 나빠졌지요. 다만 이를 온전히 ‘문재인 정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국이 크게 성장했고 국제적 위상 또한 문재인 정권 들어 높아진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같이 미국의 압력에 의해, 또는 일본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의 외교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점에서 실패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이헌모: 이유를 막론하고 양국간의 관계가 악화된 이상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도 어렵겠지요. 2019년 들어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의 비율은 70%를 넘겼습니다. 1978년 조사 이래 최악을 기록했어요. 특히 위안부 협상을 재협상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위안부 협상은 양국 외교부 장관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발표한 ‘양국 정부의 합의 결과’였어요. 이를 한국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가 없다는 논리지요.
임예인: 그런데, 사실 한국 여론이 워낙 나쁘기는 했습니다. 위안부 협상을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는 탄핵으로 붕괴해버렸고, 위안부 협상 자체가 문제였다는 여론이 비등했어요.
이헌모: 그런 면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권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후유증으로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7년 대선 때만 해도 보혁을 막론하고 대선 후보 대부분이 위안부 재협상, 또는 파기를 외쳤거든요. 심지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위안부 협상을 ‘뒷거래’로 규정하고 파기를 시사했죠. 이를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임예인: 홍준표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같은 목소리를 낸 몇 안 되는 사안이었죠. 두 후보가 모두 ‘파기’를 주장한 걸로 알아요. 재협상보다 어쩌면 더 극단적인 주장이었죠.
이헌모: 그랬죠. 물론 이건 대선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 메시지였기에, 실제 당선되었을 때 진짜로 합의를 파기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예요.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도 대선 후보 당시에는 재협상을 주장했지만 정부 출범 후에는 결국 재협상을 포기했거든요. 현실 외교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지요.
임예인: 그럼 일본 쪽에서 너무 과잉반응을 보인 건 아닐까요?
이헌모: 그렇다고 그렇게 보기는 또 어려워요. 문재인 정부는 재협상은 하지 않겠지만 수용할 수도 없고, 위안부 합의가 해결된 것도 아니라는 어중간한 입장을 폈습니다. 일본 측에서 볼 때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가 간의 협의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고 분노하고 실망이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것이고요.
임예인: 일단 국가간 합의가 이루어진 이상, 그것이 아무리 졸속으로 이뤄진 것이라 해도 지켜져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이헌모: 기본적으로는 지키는 것이 국제적인 룰이겠지요. 그렇다고, 위안부 협상이 잘 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가 위안부 협상이 잘못되었다고 여겼어요. 문재인 정부로서도 이런 여론과 국민 정서에 맞설 수 있는 이론적 토대나 실리적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도, 그렇다고 거부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다만 이럴 때 진짜 빛을 발하는 것이 정치이고 실용적인 외교력이라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측에 좀 더 성의를 갖고 경색 국면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임예인: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죠?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가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며, 일본의 사과를 계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요.
이헌모: 결국 협상을 사실상 원점으로 돌리려고 했던 게 우리 정부인 만큼, 문재인 정부에서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최소한 일본측과 공식/비공식적인 외교 창구를 계속 유지하고 활용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실질적으로 거의 단절 상태였죠. 물론 한국에게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쌍방의 책임이죠. 하지만 ‘원인제공을 한국에서 했다’는 빌미를 준 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임예인: 대일관계가 어그러진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장면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었는데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일본은 여기 대해서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죠. 국제법상 말이 안 된다, 한국 특유의 ‘국민 정서법’이 작용한 것이다, 반일 정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등, 비난 여론이 드셌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참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고 일본과의 관계를 우려해 판결을 미루도록 법원을 압박했던 박근혜 행정부가 잘 한 건 아니잖아요. 결국 문재인 정부로서는 전임 정부로부터 어려운 짐을 또 하나 떠안은 셈이 되어버렸죠.
임예인: 문제는 이게 법원 판결이라는 거에요. 뒤집을 수가 없잖아요. 일본의 반발에 문재인 대통령의 반응도 ‘법원 판결에 행정부가 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고요.
이헌모: 그 부분도 사실입니다. 삼권분립이 작동하는 이상, 행정부가 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죠. 하지만 정치적 해결의 폭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단 한국 정부가 선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화 단절 수준까지 가서는 안 됐습니다.
한일 관계 악화, 일본의 책임은 없었나?
임예인: 한국 내에서는 한일관계 악화에 일본의 책임이 더 크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이헌모: 근본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사실 지금 한일관계 악화 역시 한국 문재인 정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본 국내의 환경변화가 더 큰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을 진정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껄끄러운 경쟁자 또는 무례한 이웃이라 덧칠하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넷 우익, 전반적인 일본의 우경화 현상과 자민당 내의 친한파 의원의 소멸, 전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보수 우익성향 정치가들의 대두가 더 문제지요.
임예인: 여기에 정치적 문제를 경제 분쟁으로 비화시킨 것도 일본이었습니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아미드 등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죠.
이헌모: 그런 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해당 조치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조치이며, 한국에 뭔가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이것이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것은, 사실 비공식적으론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였어요.
임예인: 사실 한국이야 식민지 시기의 앙금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일본은 한국에 대해 왜 이렇게 공격적일까요?
이헌모: 과거에는 일본이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보고 형님이 아우 도와주는 식으로 대했어요. 미국이 제일 큰 형님, 그리고 일본은 작은 형, 한국은 막내, 이런 위계질서에 한국을 위치시켰죠. 어쩌면 형이 아우를 대하는 것 같은 관용이나 배려적인 측면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국력이나 위상이 일본을 앞지르거나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잖아요. 그러니 한국을 본격적으로 경계하고 방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신화
임예인: 사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쫓아왔다 해도, 여전히 양국 경제 사이즈 차이는 크지 않나요?
이헌모: 예전처럼 격차가 분명한 건 아닙니다. 2021년, 일본에서 꽤 큰 파장을 일으킨 기고문이 한 편 있었습니다. ‘왜 일본은 한국보다 가난해졌는가’라는 제목이었죠. 물론 명목국민소득 기준으로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 꽤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구매력평가 기준으로는 일본이 이미 한국에 역전당한 상황이에요.
임예인: 하지만 오랜 기간 선진국으로서 일본이 쌓아올린 산업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아닐까요?
이헌모: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신화 역시 사실 과장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도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 따라잡힌 일본 제조업의 비참한 현실, 모르는 건 일본인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죠. 이 기사는 반도체는 물론 주방, 거실가전에서도 밀리는 일본의 제조업 현실을 노골적으로 지적했죠. LG의 ‘시그니처’ 브랜드를 예로 들어, 일본 브랜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임예인: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제한 조치가 내려졌을 때, 한국 보수 언론에선 큰일났다고 난리가 났었잖아요. 첨단 소재에 대한 일본의 기술 수준이 워낙 높아서, 일본 없이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이헌모: 실제로 일본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의 뼈대인 삼성,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입히면 한국이 용서를 빌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죠. 그 결과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 제한 조치를 단행한 것이기도 할 테고요. 물론 양국간의 갈등과 수출 규제 조치가 한국 기업들에도 큰 피해를 끼쳤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부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방적인 것은 아니었죠.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을 한 수 아래로만 본 일본 경제산업성의 실책에 가까웠다고 봐야 할 겁니다.
임예인: 사실 잘 이해가 안 되는 조치였어요. 아무리 일본의 첨단 소재 산업이 경쟁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희소한 자원이라거나 격차가 절대적이라거나 한 건 아니었잖아요.
이헌모: 결국 일본 스스로도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라는 신화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기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21세기 초 일본 자체 반도체 프로젝트가 모두 실패하면서, 경제산업성은 체면을 버리고 TSMC 공장을 유치하려 했다고 합니다. TSMC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더리 업체죠. TSMC는 사실 일본에 공장을 짓는 걸 썩 내켜하지 않았고 일본이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제시하며 세일즈 중이었는데, 이게 이상하게 일본에서는 “TSMC가 일본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것 같다. 역시 일본은 망가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얘기가 돌았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TSMC는 일본에 공장을 짓지도 않았죠.
임예인: 일본에서는 “도와주지 않는다“ “가르쳐주지 않는다” “상관하지 않는다“ 등으로 구성된 ‘비한 3원칙’이 나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상호 이익을 위한 무역인데, 마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헌모: 그래서 ‘일본의 현실을 모르는 건 일본인뿐’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것이겠지요. 특히 아베 정권 아래에서, 한국과 관련한 조치를 취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이 경제산업성 출신 관료들이었습니다. 졸속적인 수출 제한 조치를 포함해서 말이죠.
임예인: 한일간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한 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고난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일본 내의 정치적 리더십 이전에, 과거와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한국이 일본의 진정한 경쟁자가 되었다는 의미지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본 내의 여론이 자민당과 우익 세력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우호적인 관계로 변화하려면 일본 정권교체밖에는 길이 없어 보이지만, 지금의 일본 야당으로서는 그도 여의치 않으니… 앞길이 요원하다 할 수밖에 없네요.
‘혐한’을 주도하는 일본 저널리즘
임예인: 더 예전 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전부터 계속되어온 일본의 도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토 분쟁이나 과거사 망언도 계속되었고요.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걸까요?
이헌모: 일본의 역사 교육 문제는 분명 심각합니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 국정역사교과서 문제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가르치려고 해서’ 문제라면… 일본의 역사 교육은 ‘정부가 가르치는 걸 막아서’ 문제입니다. 제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질문했더니, 120명이 넘는 학생 중에 10명이 채 안 되더군요. 그나마 거기서 유학생을 빼면 수는 훨씬 적어집니다.
임예인: 최근 미국의 한 드라마에서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을 소재로 다룬 걸 보고, ‘일본인들이 불쾌해할 소재’라고 꽤 시끄러웠던 일도 생각납니다.
이헌모: 지금 일본인들은 역사를 모릅니다. 가르치지도 않고 찾아서 공부도 하지 않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어느 국가든 감추고 싶은 역사는 있겠지만, 일본은 그냥 감추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미화’ 또는 ‘축소’ 시키고 있으니까요. 매년 8월이 되면 일본도 나름 특집 방송 같은 걸 해요. 하지만 자신들이 원폭 피해국가임을 강조할 뿐, 자신들이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고 점령 통치하면서 저지른 잔학한 만행은 온데간데 없지요.
임예인: 실제로 양국간의 역사 인식이 첨예하게 갈리잖아요. 한국에서는 일본이 전범국으로서의 인식이 없다고 주장하고, 일본에서는 이미 청산된 과거사에 한국이 계속 집착하며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주장하고요.
이헌모: 여기에는 저널리즘의 문제 또한 한 몫을 합니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도 신문과 TV의 영향력이 매우 큰 편인데요. 일반지와 스포츠신문을 합쳐, 일본의 신문 발행 부수는 3,300만 부 이상에 달해요. 요미우리나 아사히의 발행부수는 720만 부, 480만 부로, 발행부수가 뻥튀기되었다는 논란까지 있는 조선일보가 100만 부를 겨우 넘기는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하죠. 단순히 물량만 많은 게 아니라 신뢰도 역시 높은 편입니다. NHK가 69점, 신문은 67.7점, 민영TV방송도 61.3점에 달해요. 선진국 중에서 TV 방송과 신문 같은 언론 신뢰도가 일본처럼 높은 나라도 드물 겁니다.
임예인: 실제로 일본 저널리즘이 그 점수만큼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헌모: NHK 정도라면 모를까, 보수지나 민영 방송 같은 경우에 그렇지가 않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저널리스트로 이케가미 아키라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일본의 KBS라고 할 수 있는 NHK 출신 방송인으로, 왕성한 방송 활동과 저술 활동으로 일본의 여론 형성에 실제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죠. 그런데 이 사람의 주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그는 상해 임시정부는 실체가 전혀 없는 것이었고, 한국이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건국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이 역사를 끌어왔다고 말해요. 상해 임시정부가 일본에 투쟁한 결과 현재의 한국이 있다는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지배 과정에서 가혹한 행위를 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 측에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그것이 극단적으로 강조되어 결과적으로 반일 정서가 심화된다는 주장이죠.
임예인: 한국이 가르치는 역사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일본의 역사 교육이 썩 나은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잖아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한국이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도 복잡한 근현대사 문제를 지극히 단순한 잣대로 일도양단하고 있는 거죠.
이런 문제는 최근 들어 더 심해졌습니다. 일본 미디어는 한국 정치에 꽤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한때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뉴스가 일본 미디어까지 지배할 정도였으니까요. 문제는 이걸 굉장히 단순한 구도로 묘사한다는 데 있어요. 예를 들어 박근혜 촛불시위에 나왔던 사람들은 좌파고, 좌파는 친북세력이라는 식이죠.
임예인: 촛불시위가 외친 박근혜 탄핵은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았었는데, 촛불시위 전체가 좌파라고 하면… 그건 너무 조악한 구분인데요.
이헌모: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는 좌파고, 반미 반일주의자이며, 친북주의자이고, 주체사상 신봉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일제 부역자 후손 재산 몰수는 법치국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식의 ‘통쾌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거죠.
외교 문제로 비화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산역 앞에 보면 강제 징용공 동상이 세워져 있거든요. 일본 아나운서가 이 징용공 동상 앞에서 “이런 조작된 역사에 의한 동상 따위를 만드는 것이 한국은 창피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 논리에 동조하는 한국인 학자를 섭외해 “창피하다”는 대답을 이끌어내요. 이런 프로그램이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휴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두 시간씩 편성되어 방송됩니다.
임예인: 일본의 혐한 저널리즘이 심각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헌모: 물론 한국 정부가 무조건 옳고, 반일도 무조건 옳다는 식의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간이 반일이고 강제징용 같은 역사도 한국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방식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워 나가는 겁니다.
공영방송인 NHK 같은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민영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경우 힌국 비하 내지는 깎아내리기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이 싫다고 하면서도 주야장천 한국 관련 방송을 하는 까닭이, 그게 시청률 확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참 웃픈 현상입니다. 또 재미있는 게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인데요…
임예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요? 한국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말씀이신가요?
이헌모: 네, 그렇습니다. 조선, 중앙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일본어판 기사도 제공중인데요. 보통 문재인 정부와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이게 일본 최대 포털인 야후재팬에 소개되고 바로 조회수 상위 랭킹에 들어갑니다. 그런 기사를 보면서 일본의 넷 우익들은 상대적 우월감에 젖게 되고, 한국을 향한 비방과 조롱을 더하는 거예요. 마치 서로 공조하는 느낌마저 들어요.
임예인: 저널리즘의 문제는 한국뿐만이 아니군요… 아니, 어쩌면 한국보다 더 심한 것 같기도 해요.
이헌모: 사실 한국에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미디어의 문제점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 보니 일본 쪽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만… 사실 한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죠. 일방적인 선의나 섣부른 호의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일방적인 비난과 매도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임예인: 왜 이런 문제가 오히려 더 심해지는 걸까요?
이헌모: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되는 거죠. 최근에는 유튜브도 문제입니다. 과도한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돈을 버는 채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나 한일관계는 양국 모두에서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돈을 벌 수 있는 주제거든요. 일본에서 이미 혐한은 하나의 비즈니스입니다. 한국에서도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유튜브가 점점 늘고 있고요.
일본과의 외교 관계 개선은 왜 필요한가?
임예인: 좀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던져 보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왜 필요할까요?
이헌모: 아무래도 한국은 안보나 경제 문제 등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니까요. 한-미-일간 안보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침 한국 보수세력은 미국에 대해 숭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새 정부의 태도는 당연히 미국의 의도대로 일본과의 안보 등 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네요.
임예인: 점점 심각해지는 국제 정세 역시 한 몫을 할 것 같습니다.
이헌모: 그렇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홍콩, 대만 문제 등에서 야욕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고요. 여기에 최근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질서를 크게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더욱 한-미-일간의 안보 공조를 강화하려고 할 겁니다.
임예인: 한미일 공조 강화가 중국을 자극할 우려는 없을까요?
이헌모: 미국의 입장을 추종하는 모양새가 되면 중국의 태도가 문제가 되겠죠. 이는 한한령 같은 제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지혜롭게 줄다리기하며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데, 그런 균형외교를 과연 윤석열 정부가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임예인: 반대로, 일본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일본도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할까요?
이헌모: 일본으로서도 한국은 중요합니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동북아시아에서 고립되고 마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한국과는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겠죠. 그게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대륙국가를 견제하는데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의 압력 정도에 따라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임예인: 경제적인 측면도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일단, 일본의 경제 제재로 인해 한국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을까요?
이헌모: 물론 ‘수출규제로 한국을 무릎 꿇리겠다’는 일본 넷우익 식의 시나리오가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역은 승패를 가르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탈일본’에 성공하긴 했습니다만 공급처를 바꾸는 과정은 굉장히 험난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던 셈이죠.
임예인: 일본 입장도 궁금한데요. 말씀하셨던대로 핵심 소재를 끊어 한국을 무릎 꿇리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는데, 전혀 그렇게 되질 않았잖아요.
이헌모: 일본 내에서도 그런 인식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요즘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다소 힘든 시간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고, 반면 일본 업체들은 중요한 공급처가 끊겨 고난을 겪고 있다고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경제 제재를 일본의 자살골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임예인: 결국 상처뿐인 싸움이었군요.
이헌모: 한국은 일본에게 더이상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일본은 한국을 더이상 도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나 무역을 마치 싸움의 도구처럼 여기고, 관계를 끊어도 밑질 게 없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사실 양국 관계가 나빠지면 양국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대화의 물꼬를 틔웠으면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일관계를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임예인: 대선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며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일본에 온건한 스탠스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데요.
이헌모: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재명보다 윤석열이 당선되기를 노골적으로 바라고 있었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 저널리즘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번 대선 역시 굉장히 단순한 구도로 바라보았죠. 이재명은 친북, 반일, 좌파로, 윤석열은 친미, 친일, 우파로 구분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겠죠.
임예인: 그런데 국민의힘이 일본과 가깝다는 것도 프레임인 것 같아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도 반일 감정은 강하지 않았나요?
이헌모: 실제로 그렇습니다. 일본 미디어에서 한국 정치를 단순화해 이해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상황이 훨씬 복잡하죠. 실제로 살펴보면,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집권 시기에 김대중, 노무현 집권 시기보다 한일관계는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공식 방문해 일본 우익들에게 ‘혐한’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지요. 조금만 파악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고정관념을 먼저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 세상을 해석한 것 뿐이죠.
임예인: 그럼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일본의 기대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꼬여버린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헌모: 어느 정도 유화적인 제스처가 나올 수는 있을 겁니다. 일본 측에서도 기대 심리가 있고, 우리 측에서도 새 정권이 탄생했으니, 이를 기회로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왔고요.
다만 가시적인 변화가 당장 일어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실타래가 너무 꼬여있어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한다 해도, 양국 국민의 감정이 골이 상당히 깊게 파여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전체가 우경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일본은 한국이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죠. 여기에 양 국민 모두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그렇게 절실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임예인: 맞아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정부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당장 징용공 관련 대법원 판결만 해도 정부가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이헌모: 그렇습니다. 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판결 문제 등은 정부 차원에서 좌지우지하기 힘든 측면이 있죠. 아무리 윤석열이라고 해도 무대포가 아닌 이상, 하루 아침에 환경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랬다가는 과반수의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요. 개선을 추구하긴 하겠지만, 아주 획기적인 접근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합니다.
임예인: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에 나선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헌모: 우선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 자체는 높게 평가합니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과거처럼 저자세가 아니라, 대등한 입장과 위치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외교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특히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의 위상과 국격이 오른 데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마땅히 대화에는 나서되, 재일 한국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비굴한 외교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예인: 외교관계라는 게 한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일본 쪽은 좀 어떤가요?
이헌모: 일본도 한국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올해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는데요. 지금 기시다 정권과 자민당은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장기 정권이 될 수도 단명정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시다 정권으로서는 선거 때까지는 한국 문제의 전환을 도모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기존의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선거 여론에 유리하다 판단할 테니까요. 따라서 5월에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지만, 참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7월까지는 특별한 액션도 변화도 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예인: 양국 관계를 다시 되돌리려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극화된 정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미디어, 나빠질 대로 나빠져 버린 국민 감정…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헌모: 차근차근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민간 부문에서의 교류도 도움이 될 테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의 한일 갈등은 한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도 분명 관측됩니다.
양국간의 관계가 일방향적인 것에서 쌍방향적인 것으로 점차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K-POP이나 한류 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일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제가 일본에 올 때만 해도, 한국인이 일본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는 있어도 일본인이 한국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임예인: 어쩌면 문화가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헌모: 뭐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보다는 상호간의 밸런스가 맞는 것이 바람직하죠.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대학에서 매년 ‘한국 사정’을 가르치며 ‘친한파’를 십 수년간 양성해온 저도 나름 공헌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분노와 증오만 키워가는 내셔널리즘보다는, 서로의 장점은 인정하고 단점은 타산지석으로 삼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