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사임 직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2020년 8월 24일 월요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는 명암이 엇갈리는 날이었다. 하나는 연속 재임 최장수 총리라는 신기록을 달성하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한편, 그날 오전 아베 총리는 게이오대학 병원을 일주일 만에 다시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아베 총리의 건강 악화설이 재차 핫이슈가 되고 있으며 또한 다양한 억측을 낳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오후에는 병원을 다녀온 아베 총리가 관저에서 간단히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했으나, 근래 들어 지병 악화설이 나도는 가운데 여러 억측이 난무하는 형국이다. 이로써 아베 총재 4선은 물 건너갔다.
자민당 총재의 임기가 내년 9월까지이고 중의원의 임기가 내년 10월까지이므로 임기 1년을 남기고 아베 정권의 향후 거취가 매우 주목되는 바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렇게까지 건강 악화설이 불거진 이상, 아베 수상의 자민당 총재 4선은 일단 물거품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도 아베 총리가 자신의 작은 외조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전 수상의 기록을 깨고 신기록을 세운 기념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아베 수상의 건강 악화로 일단 연기되었다고 전해진다.
2012년 12월 당시 민주당 정권에 압승해 정권을 탈환한 이래 7년 8개월에 걸친 장기 집권이다. 이는 2006년 전후 세대 첫 주자로 제90대 총리대신으로 취임해 정확히 1년간 재임한 기록까지 합하면 전전·전후 불문하고, 1885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총리부터 시작된 135년 헌정사에서 최장수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일본 헌정사의 레전드로 등극했다. 그럼 7년 8개월에 걸친 장기 집권을 통해 남긴 정치적 유산, 즉 레전드를 통해 남긴 레거시(Legacy)는 어떤 것이 있는가?
물론 지금 당장 사임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떤 형태로 퇴진을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아베 총재 4선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포스트 아베에게 정권을 인계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민당 내 파벌 간의 역학 관계와 코로나 정국으로 인한 국내외의 혼란과 경제적 침체 등 악재가 겹치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지병 악화설이 나도는 총재로 해산 총선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자민당은 의원총회 또는 당대회를 통한 총재선거를 해 후임자를 결정하는 수순에 들어가겠지만, 이런 타이밍과 결단이 매우 난감한 형국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아님 아베 수상이 도쿄 올림픽에 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내년 임기 말까지 간바루하는 투지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미궁에 빠지고 있다.
아베 장기 집권의 정치적 유산
첫째, 장기 집권으로 인한 1강 체제 구축.
무엇이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는가. 선거에 강한 총재였다는 점이 가장 크다. 아베 신조를 총재로 선거를 치른 총 6번의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선거에 강한 총재가 다소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국정운영이 있더라도 자민당 내 국회의원들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고, 저항은 언감생심이다. 자민당 총재이며 수상으로서 갖는 권한은 당내 불만 여론과 세력화를 최소화하기에 충분했다. 아베 1강 체제의 구축이다.
둘째,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며 야권을 무력화.
아베 수상 집권 중에는 모리카케 학원 문제 등을 비롯한 자신을 포함한 측근과 주변의 스캔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때마다 지지율이 요동치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는 이긴다. 비록 압승은 아니더라도 패하지도 않는다. 이로 인해 야권이 얼마나 무능하며 무력한 세력인가를 새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본 속담에 ‘이기면 관군, 지면 적군(勝てば官軍, 負ければ賊軍)’이란 말이 있다. ‘무엇이든 강한 자 또는 최종적으로 이긴 자가 곧 정의이다’란 의미다. 실제 도리(道理)와는 관계없이 승패에서 이긴 자가 정의를 얻게 된다는 의미로, 흔히 스포츠에서 ‘게임에는 이겼는데 승부에서 졌다’고 패배를 아쉬워하며 위로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의 세계에서 이런 허무한 감상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소선거구제에서 2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아베 총재가 이끄는 자민당은 각종 대형 스캔들에도 선거에서 연전연승함으로써 스캔들에 대한 ‘면죄부’를 얻어 기사회생하고, 동시에 야권의 전력을 약화해 유권자에게 무능하고 무력한 야당으로 각인시키는 효과를 보았다. 이는 또한 정치적 무관심과 투표율 저하로 이어져 아베 정권은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았지만, 결국 이는 일본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지게 된다.
셋째, 삼권분립의 유명무실화와 민주주의 퇴보.
의원내각제의 제도적인 특성상 입법부와 행정부의 엄격한 분리는 어렵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자민당 내의 총무회나 정무조사회를 통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베 1강 체제가 견고해지면서 여당을 패싱하는 정책 결정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2014년 ‘내각인사국’ 설치와 함께 중앙부처 간부 관료들의 인사권을 수상관저가 총괄하게 되면서부터 급격히 관저 정치가 힘을 얻게 된다. 이는 중요 정책 결정이 여당 자민당을 패싱하며 이루어져,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의 견제 기능의 상실이 노골화되면서 정당정치의 기능부전을 야기한다.
또한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 등을 통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가 말 그대로 유명무실해졌다. 아베 정권은 수상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을 비롯한 많은 의혹에 대해 야당의 신랄한 추궁을 받으면, 아베 수상의 소위 ‘고항논법(ご飯論法)’이라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해 논점을 희석해 왔다. ‘고항’은 밥을 뜻하는 일본어로 고항 논법이란 다음과 같다.
Q. 아침밥 드셨습니까?
A. 밥은 먹지 않았습니다(빵을 먹었지만 이건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Q. 아무것도 안 드셨다는 거네요.
A. ‘아무것도’라고 한다면, 어디까지를 식사의 범위에 넣어야 할지 반드시 명확한 것이 아니라서…
이런 식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애매모호하게 회피하며 논점을 흐려 당초 질문과는 상관없는 말장난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소모하게 하는 논법이다. 이는 아베 총리의 주특기이자 전매 특허이다. 이런 식으로 다음에 또 같은 질문이나 추궁을 받게 되면 그때는 “그 건에 관해서는 이미 답변을 드렸으니…”라는 식으로 발뺌을 하며 비난과 추궁을 빠져나가기 일쑤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통제와 견제는 유명무실하게 변모해 갔으며, 아베 수상 본인은 야당 의원의 언설에 야지(野次)를 놓는 등 일국의 수상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전형적인 국회 경시 행태이다. 또한 아베 수상은 말실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자신이 ‘입법부의 장(長)’이라는 실언도 한다. 아마 수상이 행정부의 장(長)뿐 아니라 입법부의 장까지도 겸직하는 것으로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원문: Hun-Mo Yi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