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은 1967년 개봉된 영화다. 박노식과 남정임, 이대엽, 태현실 등이 출연하였다. 1966년 쇼브라더스가 제작한 홍콩 무협영화가 수입되어 큰 인기를 끌자, 한국형 무협영화로 제작된 것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고려의 부활을 꿈꾸던 조선의 이조판서(극 중에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가 생전에 거사를 위해 황금 108관을 숨겨놓았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인 검객 박창도(박노식 분)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항상 베어 죽인 악당들 주검 옆에 저승길 노자나 하라고 동전 한 닢을 던져둔다.
한편, 죽은 대감의 딸 옥화는 아버지가 숨겨둔 황금 108관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동시에 죽은 이조판서의 반대파인 장정승 일파도 거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황금 108관을 찾는다. 그러나 옥화와 장지 모두 거사는 명분에 불과하다. 둘 다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눈이 어두워져 있다. 황금이 숨겨진 곳을 아는 사람은 대감의 친구였던 주지뿐이지만, 주지는 대답을 거부한다.
양 세력은 황금을 독차지하기 위해 검객을 고용한다. 옥화는 주인공인 검객 박창도를, 장지는 수수께끼의 검객 조창운(이대엽 분)을 고용한다. 둘은 모두 검술의 초고수이다. 하지만 옥화와 장지 일파는 이들을 그저 도구라고만 생각한다. 황금을 차지하면 모두 죽여버릴 속셈이다.
그들의 속셈을 파악한 박창도와 조창운은 도리어 힘을 합해 옥화와 장지 일파를 처단한다. 그리고 땅에 숨겨둔 금괴 상자를 찾아낸다. 하지만 상자 속에는 금이 아니라 돌로 가득 차 있다. 이조판서는 돈을 노리고 달려드는 자들을 이용하여 거사를 성공시키려 했고, 일부러 황금 108관의 군자금이 있다고 헛소문을 낸 것이다.
떠돌이 검객이라고 생각하였던 조창운은 사실 조정의 관리였다. 역모 사건을 파헤치려 장지 일파에 거짓 고용된 것이었다. 일이 마무리되자 박창도는 다시 유랑의 길로 떠나고, 조창운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당시 이 영화는 한국형 무협으로서 꽤 신경을 써서 제작했다. 당시의 영화평을 보면 아주 수준 높은 결투 장면이라고 추켜올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결투신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홍콩 무협영화도 지금 보면 유치한 면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결투 장면에서는 무술감독과 스턴트맨 등의 협력을 받아 박진감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에는 칼싸움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주인공을 포위하고 달려드는 악당들은 배를 완전히 드러낸 채 검을 높이 들고 덤비며, 주인공은 훤히 드러난 배를 그냥 베기만 한다. 악당들은 마치 일부러 칼을 맞으려 덤벼드는 사람들 같다.
당시의 출연배우들은 검술이나 무술을 특별히 수련한 게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이들을 지도할 무술감독도 변변히 없었고, 스턴트맨이라는 직종이 확립되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형편이라 하겠다.
중학교 때 봤고, 최근에 다시 감상했다. 중학교 때는 꽤 재미있는 영화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무술영화에서 무술 액션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그보다 지금 배우들의 옛 얼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지명과 백일섭이 각각 옥화와 장지 일파를 돕는 조연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오지명과 백일섭을 〈순풍산부인과〉와 〈꽃보다 할배〉로 기억하겠지만, 사실 이들은 젊었을 때 꽤 인기 있는 액션 배우들이었다.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재미있다.
원문: 이재형의 브런치
이 필자의 다른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