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라면, 일본의 ‘라멘’으로 진화하다
세계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국가는 중국이라고 한다.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나오는 오류다. 국민 한 사람당 인스턴트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국가는 단연 우리나라이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국민 한 사람이 일 년에 평균 76봉지의 라면을 먹는다. 2위의 인도네시아 52봉지를 멀찍이 따돌리고 세계에서 단연 1등을 차지하고 있다. 대체 인스턴트 라면은 누가 발명한 것일까?
라면은 중국이 옛날부터 먹어온 국수의 한 종류다. 1880년대 후반 일본이 개항하면서 요코하마, 코베, 나가사키 등에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했는데, 이때 중국인들이 가져와 일본에 전파했다고 한다. 1910년에 일본 동경에 중화요리점 ‘라이라이간(来々軒)’이 개점하여 큰 인기를 얻었는데, 주 메뉴가 ‘남경소바’ 혹은 ‘지나소바’라 불린 라면(라멘)이었다. ‘라이라이간’에서 중국 면 요리와 일본의 식문화를 융합시킨 최초의 일본 라면(이하 라멘)을 팔았다는 이야기다.
이를 시작으로 라멘은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라멘 전문점, 중화요리점, 레스토랑, 포장마차 등 라멘을 파는 가게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지역별로 독특한 라멘이 생겨나면서, 라멘은 일본의 국민적 음식으로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라멘’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언제 어떻게 출발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여러 가지 설은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중국 서북부에 있는 란주에서 가장 많이 먹은 면의 일종인 랍면(拉麺, 라미엔)에서 왔다는 설이다.
한자로 ‘랍(拉)’은 ‘끌어당겨 늘린다’라는 뜻이 있다. 랍면은 메밀국수나 우동처럼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당기고 늘려 가늘고 긴 국수 형태를 만드는 수타법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라면을 한자로는 “拉麺”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노면(老麺, 라오미엔)에서 나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으레 인스턴트 라면만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일본식 라멘집이 들어서면서 라멘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라멘이라 하면 당연히 식당에서 요리한 라멘을 생각하며, 봉지라면이나 컵라면은 반드시 ‘인스턴트 라면’이라 부른다.
그러면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다. 발명가이자 기업가로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인 라면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사람이다. 이를 기반으로 닛신식품(日淸食品)이라는 기업도 창업하였다. 닛신식품은 지금도 일본의 유력한 종합식품회사로서 연 매출액이 약 5조 원에 달하고 있다.
〈만복〉,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사업가 부부 이야기
드라마 <만복>(만뿌쿠)는 NHK TV소설이다. 2017년 방영되었으며, 전체 151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 드라마는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들어낸 닛신식품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와 그의 처 마사코(仁子)의 일생을 모델로,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안도 모모후쿠와 마사코 부부의 극 중 이름은 다치바나 만페이와 다치바나 후쿠코로 변경되어 나온다. 드라마 제목 만복(만뿌쿠)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남편 만페이와 부인 후쿠코의 이름 앞자 한 글자씩을 따서 “만뿌쿠”가 될 수도 있고, 배 가득 먹는다는 만복(滿腹)도 일본어 발음으로는 “만뿌쿠”가 된다. 그러니까 만뿌쿠 부부가 만들어가는 만뿌쿠 이야기가 바로 드라마 〈만뿌쿠〉라 할 것이다.
주인공 이마이 후쿠코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세 자매 가운데 막내다. 그녀가 발명가 다치바나 만페이와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둘은 후쿠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월급쟁이가 되라는 장모의 입버릇에도 발명가, 기업가의 길을 간다.
만페이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성실함으로 오사카 지역에서 큰 명성을 얻지만, 사업에는 늘 불운이 따른다. 사업을 잘 일궈 성공하려다가도, 무슨 마가 끼었는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일어나 좌절된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이용만 당하다가 말아먹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후쿠코는 남편을 격려하며 쪼달리는 사업 자금을 대기 위해 곳곳으로 돈을 빌리러 다닌다.
한편 만페이에 대한 사람들의 신망이 높아지자, 오사카의 중소업자들은 만페이에게 상호신용금고 조합장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조합장이 된 만페이는 부실화된 신용조합을 다시 일으키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에게 융자를 한 것이 문제가 되어 직을 물러나고 만다.
그래도 만페이는 꿋꿋이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 이때 라면 사업을 시작한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누구나 쉽고 값싸게 먹을 수 있도록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기로 한다. 수많은 실패를 거쳐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그의 회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를 모방한 수많은 업체가 난립하게 된다. 그때 만페이가 생각해낸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컵라면’이라는 아이템이다. 이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경쟁자들을 물리치게 된다. 결국 사업을 반석에 올린 만페이와 후쿠코는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기업은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전중윤 회장은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라면을 생산, 판매했다. 묘조식품은 닛신식품의 라이벌 회사였는데, 전후 어려운 한국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무상으로 기술을 원조한 것이다. 묘조식품은 2000년대에 닛신식품에 합병되었다.
이런 닛신식품도 한국에 기술을 제공했던 적이 있다. 1985년 빙그레가 라면 산업에 진출할 때였다. 그래서 빙그레 라면은 후발주자임에도 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별로 인기는 좋지 않아서, 2003년에 라면산업에서 철수했다고.
PS.
이 드라마에서 후쿠코의 어머니이자 만페이의 장모인 이마이 스즈(今井鈴)의 역할이 재미있다. 그녀는 사업을 한답시고 실패만 거듭하는 사위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사위가 하려는 일에 딴지를 건다. 그렇게 만류해도 사위는 제 갈길을 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온갖 뒷일을 푸념하며 처리해 준다. 그녀는 항상 입버릇처럼 이 말을 달고 산다.
저는 무사(武士)의 딸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면 “저는 양반집 딸입니다”와 비슷한 느낌인 모양이다. 드라마 속의 딸들은 언제나 반신반의하는 모양이지만.
원문: 이재형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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