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에서는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 국가안보실 밑에 경제안보 비서관이라는 직책이 신설됐다. 국가안보실 자체는 문재인 정부 때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가안보실장은 정의용 실장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오히려 새로운 것은 경제안보 비서관의 신설이다.
신임 경제안보 비서관은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다. 예일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 국제거시금융실장,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 SK차이나 수석부총재, 현대중국학회장을 거친 중국통이다.
2021년 11월경에 ‘요소수 사태’가 터졌다. 당시 나는 민주당에 아는 분들을 통해 이재명 캠프에 간략한 메모를 전달했다. 메모의 요지는, 단순하게 요소수 사태에 대한 메시지를 넘어 공급망 쇼크와 공급망 재편의 중요성을 담은 차이나 리스크 관리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차이나’라는 표현은 정무적 고려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요소수 사태 직후 이재명 캠프는 가격통제 정책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는데, 내 메모가 전달된 이후에 ‘아주 쬐금’ 반영되었다. ‘공급망 위기관리’라는 워딩이 반영됐다.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은 링크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급망 관리 기본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지난 대선 때, 내가 이재명 캠프에 전달한 메모의 문제의식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왕윤종 비서관의 인터뷰를 보면, 최근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에서 추진하기로 한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워크)에 대해서 “중국 배제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는데, 이 역시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IPEF 추진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입장이 그런 것이지, 한국 입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은 IPEF에 적극 합류하되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중국 배제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합당하고, 정무적으로 합당하고, 외교적으로도 합당한 메시지다.
2.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공무원 정권’이라는 점이다. 소위 ‘늘공’ 정권이다. 청와대 비서관 및 내각을 발표할 때, 언론에서 ‘서오남 내각’이라는 표현이 회자됐다. 서울대-50대-남성을 지칭한 표현이다. 서울대-50대-남성을 세 글자로 줄이면 ‘공무원’이다. 다시 두 글자로 줄이면 ‘관료’다.
어느 정권이나, 진보든, 보수든 정치와 정책의 협업은 불가피하다. 그간 집권당 입장에서 정책은 결국 관료가 주도해왔다. 그것은 박정희 이래 최근까지 보수의 전통이다.
진보도 대체로 비슷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역시 관료에게 주요 정책을 맡겼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새로운 실험을 했다. 진보 교수에게 정책을 맡겼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은 4명이었다. (순서대로)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이었다. 앞의 3명이 진보성향 교수였다.
취임 이후 약 3년 6개월은 진보 교수가, 나머지 1년 6개월은 기재부 출신 관료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했다.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아래 선택지 중 누가 더 유능하다고 생각할까?
- 진보 교수가 더 유능하다고 생각할까?
- 경제 관료들이 더 유능하다고 생각할까?
3.
어느 정권이나, 진보든, 보수든,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3대 메가 아젠다와 만나게 된다. ①외교·안보 ②경제·성장 ③정치·사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는 3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1945년~1991년, 2기는 1991년~2010년대, 3기는 2010년대 이후~앞으로 계속이다.
1기는 미소 냉전기였다. 2기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탈냉전 미국 유일 헤게모니기였다. 이때가 진정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의 시대였다. 3기는 미중 신냉전 시기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유일 헤게모니가 작동하던 시대에는 안보걱정 없이, 경제적 효율성의 극대화가 가능한 시대였다. 글로벌밸류체인의 전성기였다.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나라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중국이든 러시아든 모두 미국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 달라졌다. 외교·안보 환경도, 경제·성장 환경도 다 바뀌었다. 안보와 경제가 연계되는 시대로 바뀌었다. 전통 안보도 중요해졌고, 경제 안보도 중요해졌다.
공급망 재편이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와 대기업의 공동대응 체계가 매우 중요해졌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전략 산업에서의 기술 우위가 매우 중요해졌다.
향후 한국 정치는 어느 정부이든, 진보든 보수든 미중 신냉전의 강화라는 환경적 변화를 직시한 상태에서 어느 세력이 더 균형 잡힌 대응을 하는지에 따라 경제 고관여층의 지지와 신뢰가 결정될 것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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