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납품업체에 대한 발주처의 갑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발주처의 인격 모독을 보면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지시는 둘째치고, 인간이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가 너무 많이 묻어난다.
아무리 갑을 관계라지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회사와 직원과 가정의 운명이 어깨에 위에 놓인 상황에서는 비인간적인 모욕도 묵묵히 들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웬만하면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에게는 안 되는 모양이다.
세상에는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계승되며 퍼져나가는 것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이고, 하나는 무례함이다. 인간은 주 양육자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곳에 베풀면서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받은 모욕도 다른 사람에게 행하면서 살아간다. 이 순환은 좀처럼 막을 수 없다.
에리히 프롬은 다양한 이분법을 구사한 심리학자다. ‘사랑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도 그가 내세운 대표적 이분법이다. 그는 우리 문명이 죽음의 문화가 아닌, 사랑의 문화로 향해야 함을 거의 모든 책에서 역설한다. 그러나 죽음의 문화 또한 그 나름의 순환 능력과 폭발력이 대단해서, ‘좋은 이야기’로 그런 문화를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하다. ‘사랑하며 살자’ 같은 말이 맥을 추지 못하는 순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갑질, 인격 모독, 무례함, 인간 비하 같은 것들이 법적인 문제보다는 도의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문제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공연성이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 대 일 관계에서는 인정되기 쉽지 않다. 인격 모독으로 인한 위자료도 사실상 많이 인정받기가 어렵다. 업무방해죄니 하는 것들을 싹싹 긁어모아도 의미 있는 처벌이 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법무부에서는 ‘인격권’ 자체를 민법에 규정하여 손해배상이나 금지청구 등을 용이하게 하자는 법률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법무부에 있을 때 했던 일 중에서 많이 공감되는 일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재산권은 그렇게 소중히 하는 법체계가 인간의 인격에 대해서는 다소 미적지근하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물건이 소중한가, 내 인격이 소중한가? 많은 사람들이 인격에 손을 들거나, 둘을 비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성인군자는 못되지만, 내 위치에 따라 갑질하며 인격 모독하는 일만큼은 피하려 애쓰며 살고 있다. 그것은 대단한 윤리적 수행이 필요한 일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기본은 한 사회나 문명의 주춧돌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대단한 정의를 부르짖는 것보다, 기본을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기도 하다. 정말이지 필요한 건 ‘기본’이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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