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세대와 말할 때마다 “저요?”가 유달리 자주 들린다. 당연히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일단 “저요?”를 먼저 한다. 나도 가끔 전염되어서, 누군가가 나에게 사소한 걸 물어보면 “저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때 특징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 템포 쉬면서 말을 고른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습관이자 유행일 수 있는데, 그 순간에서 짐작되는 게 있다.
이런 언어습관은 자신에게 질문이 오는 게 낯설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대개 어디에 사는지, 몇 살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고향은 어딘지 같은 것을 묻는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자 정보이지만, 그런 질문조차 어느 정도 ‘실례’가 되어가는 시대가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에는 동호회 같은 곳에서 만나더라도 서로의 직업이나 나이 등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닉네임으로 부르며 모임의 주제에만 집중하는 경향도 보인다. 나의 사적인 정보에 대해 묻지 말라, 라는 암묵적인 룰이 언어습관에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2.
과거에는 전화번호부에 온 집의 전화번호가 공개되어 있었고, 심지어 주민번호까지 동네방네 공개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게 아주 민감한 정보가 된 시대다. 법적으로 보면,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이나 ‘사생활의 비밀’ 같은 기본권들이 강조되는 맥락과 같다.
달리 말하면, 개인 간의 관계에서 각자 간직하는 비밀이 많아지고, 서로에게 엄격한 선을 지키면서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요?”의 뉘앙스에는 그처럼 “나한테 그런 걸 왜 묻는 거죠?”라는 질문이 함축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하고, “나한테 묻다니, 내 말에 집중하겠다는 뜻인가요?”라는 묘한 뉘앙스가 느껴질 때도 있다.
달리 말하면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 건 TMI로 여겨질 수 있지만, 묻는 말에 이야기하는 건 ‘당신이 원했으니 내가 말할게’가 된다는 것이다. “저요?”는 때론 불쾌함이나 숨고르기지만, 때론 반가움이다. 서로에 대해 잘 묻지 않는 시대에, 서로에 대해 묻는다는 건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3.
그러니까 “저요?”라는 대답은 관심에 대한 무서움과 갈구가 모두 담겨 있는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유명인 몇몇은 한순간 잘 나가더라도 몇몇 사소한 정보나 과거의 행적으로 인해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거의 모든 정보는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인생을 걸고 넘어뜨릴 덫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는 관심을 갈구하는 ‘외로운’ 시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추앙’받길 바라며 SNS에 자기를 전시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화색이 도는 표정으로 “저요?”라고 말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이 시대에 살아가는 일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관심’과 관계 맺는 방법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누군가의 관심 때문에 울고 웃고, 실패하며 성공하고, 괴로워 떨다가도 환희에 차오르는 시대다.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되지만, 지나친 무관심은 삶을 공허하고 메마르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무관심과 외로움이 더 일반적인 시대인 만큼, 서로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나누는 관계를 만든다는 것에 많은 고민을 필요할 것이다. “저요?”라고 되묻는 그 순간의 머뭇거림 너머로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서로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서로의 선을 다정하게 살짝 넘는 관계들이 널리 자리 잡았으면 싶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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