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하나의 팁이 있다면 타인들은 나의 일관성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어느 ‘타자의 시선’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 그런데 때때로 그 타자에게 자신이 일관되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들킨 듯 수치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실제 타인, 나를 바라보며 평가하리라 믿는 그 타인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를테면 내가 내향적인 인간이었다가 외향적인 인간이 되든, 인문학책을 쓰는 작가였다가 여의도의 애널리스트가 되든, 짧은 머리에 뿔테안경을 쓰다가 빨간 머리로 염색한 힙스터가 되든 진실할 만큼의 관심은 없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관심 있는 척할 수 있고 그러한 변화에 잠시 놀랄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 자신의 인생 속으로 빠져들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기 인생의 문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타인들의 존재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수 없다.
나의 변화는 타인들이 감지하는 것보다 수백 배 수천 배로 민감하게 때론 느껴지곤 한다. 내향적이거나 소심한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는데 사실 타인들은 나의 변화에 거의 아무런 방해물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타인 입장에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적당히 넘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갑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의 변화라든지, 오랫동안 유지해온 집단생활에 방해되는 종류의 변화라든지 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대체로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변화의 부담은 그런 ‘객관적인 문제’ 보다는 ‘내부적인 시선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혹여나 어떤 타인의 시선에 매여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타인’ 따위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런 종류의 누군가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내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란 많지 않다. 그저 뒷말을 실어 나르거나 언젠가는 그들끼리도 서로 평가하고 험담할 사람들의,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전혀 없는 종류의 말과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 부담스러운 존재가 근처에 있다면 한동안 전혀 만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타인들이란 ‘변화한 나’에 맞추어 재편되거나, 따라오고, 조정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 대해 평가하길 좋아하는 타인이 공유하는 기준이란 대체로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그런 어디 숨었는지 알 수 없는 타인들의 시선 같은 걸 신경 쓰는 일은 자신의 인생에 너무 미안한 일이다.
나란, 나의 삶이란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새롭게 인식한 가치를 향해 뛰어들고 변화하는, 그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하고자 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옳고, 그들 같은 건 없다고, 있다 하더라도 별반 신경 쓸 가치가 없을 거라고 말이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