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쁘기만 한 적보다는 장점이 많은 적을 증오하는 편이 쉽다. (…) 미국인들은 국제 사회에서 다른 국가나 민족을 잘 증오하지 못하는데, 어떤 외국인을 보아도 자신이 우월하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보다 (후버니 루스벨트 같은) 동포 미국인에 대한 증오가 더 신랄하다.
외국인 혐오증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뒤처진 남부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미국인들이 사력을 다해 외국인을 혐오하기 시작한다면, 미국적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잃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미국의 철학자인 에릭 호퍼가 저서인 『맹신자들』을 통해서 한 말이다. 하지만 호퍼 역시 1951년 『맹신자들』을 펴낼 당시만 하더라도 차마 확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설마 자신이 예언한 미래가 실제로 도래할 줄은. 그것도 이렇게나 빠르게.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미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호퍼의 해당 발언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호퍼의 문장을 반대로 말하면, 미움을 받는 존재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뜻이 된다. 보잘것없고 하찮다고 생각되는 대상은 패악을 부려봤자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조롱을 당하거나 경멸을 받을지언정. 말하자면 많은 이들로부터 증오를 받기 위해서는 ‘위협’이 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실제로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중국이 이러한 대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한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뚜렷한 ‘반중 정서’가 감지된다. 그 전부터 조금씩 조짐이 보이던 중국에 대한 반감은 2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확산되던 때를 기점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와, 지금은 한창때의 반일 정서를 압도할 만큼 커졌다.
물론 이러한 반중정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떤 이들은 반중 정서를 단순한 혐오의 감정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만은 없다. 반중 정서는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감지되는 흐름이며, 그 이면에는 중국의 폭력적인 민족주의, 독재적인 정치, 타 국가와 민족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 시진핑의 무리수적인 행보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노골적인, 말 그대로 ‘혐오를 위한 혐오’도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중국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중국을 미워하면서도 중국이 어째서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지, 어째서 대만의 독립적인 움직임에 그토록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지, 왜 시진핑이 세계의 경계와 반발을 무시하고 그토록 조급하고 무리수적인 행보를 반복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실은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게 중국은 언제나 남의 나라, 남의 일에 불과했다. 반중 정서 역시 때로는 지나치다고 느낄 때가 있었고, 가끔은 이해할만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그 이면에 자리한 맥락이나 진정한 문제점, 그에 대한 대응책까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와 같은 국제적인 큰 흐름은 나 같은 ‘개인’과는 무관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 한청훤님이 쓰신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 모든 상황을 하나로 연결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이어져 있듯, 중국 관련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중국은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그렇기에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너무나 가깝게 엮여있어 당연히 우리와 같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앞서 기술한 중국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점 및 중국의 현 정치·문화·사회·경제적인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중국과 한국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는지, 그러므로 한국이 중국과의 이슈에 있어 얼마나 영리하고 거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300페이지가 안 되는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중국 관련 이슈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국제정세나 중국의 역사에 문외한인 나와 같은 초심자가 읽어도 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있다. 특히 시진핑의 유년기나 현 중국의 공산당 정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중국이 한국과 유사한 인구문제를 겪고 있다는 부분은 미처 모르던 사안이라 놀라웠다. 1가구 1아이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소황제’ 같은 아이들이 넘쳐난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실상 중국은 한국과 유사하게 급격하게 노령화되는 중이라고 한다.
다행히(?) 어느 정도 부유해진 뒤 이러한 위기를 겪는 중인 한국과 다르게, 부유해지기 전에 이와 같은 사태를 맞이하게 된 까닭으로 향후 상당한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시진핑이 사교육을 갑자기 철폐한답시고 독재적으로 사교육 시장을 닫아버린 행동이나 어린이 주 3시간 이하 게임제한 등의 무리수적인 정책을 펼친 것은 모두 이와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대만에 대한 히스테릭한 반응도 그렇고.
책을 읽고 반중정서를 단순히 이웃 국가 간의 필연적인 감정싸움 정도로 여겼던 나의 안일한 시각을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 이슈를 정치권에서 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런 면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정부에 계신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지만… 가능할까.
원문: 한승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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