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발장’의 양형 이유
얼마 전 매우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한 40대 남성이 배가 고픈 나머지 구운 달걀 18개를 훔쳤다가 붙잡혀 징역 18개월을 구형당했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당연히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 ‘현대판 장발장’이라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역시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옛말이 하나 틀린 것 없다는 비판까지.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다.
그런데 처음에 난리가 나기 시작했던 무렵 분노에 앞서 조금 찜찜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러모로 이상한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들 오해하고는 하지만 판사 역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고 때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으나, 동시에 그의 내면에는 인간인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연민과 측은지심 역시 존재한다. 판사라고 해서 뭐 안드로이드나 뱀파이어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고로 아무리 범죄자를 깔보거나 우습게 여긴들, 혹은 혐오감을 느꼈다고 한들 단순히 배가 고파서 저지른 행위에, 더군다나 절도한 품목이 달걀 18개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가혹한 선고를 내린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는지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상’을 파헤치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관련기사에 의거하여 종합해본 스토리는 이렇다.
즉 해당 피고인의 경우 이번에는 달걀 18개를 훔친 것에 불과하지만 이전에도 유사한 범죄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 왔더라는 것. 그러한 범죄가 누적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 우리나라 법률의 특성상 같은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면 형량이 자동으로 조금씩 올라가게 되어 있고, 그런 까닭에 ‘고작’ 달걀 18개를 훔친 것에 불과한 그가 그토록 중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다시금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법이 그렇다 하더라도 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배가 고파서 그렇다는데 좀 봐주면 안 되느냐고.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주장이 말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법이란 엄연히 사회를 잘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공공의 합의에 의해 정한 규칙이며 질서인데 그것을 판사의 재량에 따라 사안 별로 다르게 적용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크게 문제일 것이므로.
이는 달걀 18개를 훔친 장발장을 동정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사실은 이미 판사의 재량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 아마 18개월이라는 형량은 도무지 판사가 임의로 할 수 없는 어떤 영역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법이 그러하고 어쩔 도리가 없으므로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법이 지나치다면 혹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무작정 판결을 비난하기 이전에 해당 법과 제도를 손 보는 것이 먼저라는 그런 이야기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정해진 제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
정혜진의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이에 대한 책이다. 법과 제도로 차마 담아내지 못하는, 그런 제도 바깥의 낭떠러지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기자로 일하다 변호사로 전직하여 지금은 국선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그간 국선 변호인으로 일하며 만났던 의뢰인들에 대한 22가지 사례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냈는데, 읽다보면 정말이지 눈쌀을 절로 찌푸리거나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될 정도로 매 사례가 참혹하기 그지 없다. 주변에서 익히 보고 들은 불쌍한 사람들 정도는 갖다 댈 수도 없을만큼 불행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사실 국선변호인이란 사선 변호인을 고용할 정도의 금전적 여유도 사회적 환경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리고 여기 소개된 이야기 중에 달걀 18개 장발장과 매우 흡사한 사례가 들어 있다. 한 중년 남성이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고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 사기범으로 붙잡혔는데, 고작 그런 정도의 범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중한 듯 하여 살펴봤더니 지금까지 50회도 넘게 비슷한 행위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잡힌 것만 그 정도이니 아마 안 잡힌 사례까지 더하면 셀 수도 없을 지경일테고. 저자 입장에서는 배운 것도 많은 듯 하고, 한자를 섞어가며 조리 있게 편지를 쓸만큼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피고인이 도무지 왜 이런 행동을 반복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도대체 ‘왜 그러고’ 사는가 알아보았더니 거기에도 또한 참으로 슬프고 참혹한 사연이 있었다.
해당 피고의 경우 어릴 적부터 한쪽 다리를 절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했고, 어머니는 병으로 늘 누워 있었으며 아버지는 술에 취해 그런 그를 자주 때렸다고 한다.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한 뒤 본격적인 학대를 시작하자 그는 포도밭을 일구던 뒷집의 창고에 몰래 숨어있는 날이 많았고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거기에 있던 포도주를 마시곤 했는데, 그러면서 어린 나이부터 알코올에 노출되어 중독이 시작되었더란 것이다.
그러다 서른이 넘으면서부터는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잦았고, 깨어나면 응급실 아니면 파출소인 일이 많았다고. 그렇게 평생을 술에 매여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아온 탓에 돈도 없고 술은 마셔야겠을 때 소위 ‘먹튀’를 반복해서 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읽는데 마음이 참으로 아픈 한편, 내가 판사였어도 혹은 검사나 변호사였어도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들의 경우 ‘별 것 아니니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라’고 풀어준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행위를 또 저지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시간을 돌려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의 학대를 끊어내고 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셈이다. 혹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더 확실히 지원을 해주거나. 그러나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못해주는 현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의 처사를 베풀리 없으므로 현 시점에서는 ‘처벌’ 이외에 대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달걀 18개를 훔친 장발장 역시, 상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아마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판결이 진행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책에서는 이와 같이 법과 제도가 다 포용하지 못하는 이들, 잡힐 것을 혹은 처벌받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연을 다루고 있는데, 읽으면서 참으로 슬프고 답답하고 무력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 법과 제도를 정비하자고 외치는 것이 이토록 참혹한 현실 앞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나 하는 답답함 같은 것. 가장 최선의 결과가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이 고작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나아진다는 것의 핵심은 어쩌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애를 쓰는 그 마음에 있는 것인지로 모른다는 그런 생각 역시 한다.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선물해주신 분께 큰 감사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중 발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술 앞에 여전히 무기력했고, 우리 사회는 재범을 막는 데 무기력했다. 아마 이번 출소 후에 일어날 다음 사기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하는 건 늘어나는 전과 수와 높아지는 형량뿐이다. 나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법정을 나왔다. 소용없는 처벌에 서글프고 힘이 빠졌다. (…)
어릴 때 따뜻한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성장해서도 정서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친밀한 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그에게 왜 술을 끊지 못하느냐고 비난하며 더 엄격하게 처벌한들 술을 부르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그의 재범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범죄가 해결될 수 없는 사람을 두고도 우린 범죄만 보고 있다.
- p.138-139
“밤에 대리 기사 알바 하거든예. 새벽 6시쯤 일은 마쳤는데 그때 자면 오전 10시 재판 시간 맞춰 못 올 거 같아서예. 밤새고 일찍 왔더니 졸리네예.”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고단한 삶의 무게가 드리워진 얼굴이었다. 사기꾼 하면 연상되는 교활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보증금 70만 원을 마련한 젊은이들에게 사기 친 그 파렴치한을 떠올리니 다시 혼란스러웠다.
- p.145
돈이 필요한 매 순간이 심장을 조여올 때마다 그가 지난 10년 간 해온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 p.151
몇 주 후 선고 결과를 확인하니 벌금 100만 원이었다. 나는 단호하고 야무졌던, 그러나 지쳐 보였던 딸을 생각했다. 재판은 끝났지만 그녀의 일은 끝나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를 노역장에 보낼 순 없으니, 지금까지도 그랬듯 빠듯한 월급에서 매달 얼마라도 떼어내 벌금 낼 돈을 만들어야 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아버지가 또 사고를 쳤을까 봐 늘 가슴 졸이는 일상도 딸은 감당해야 한다. 법은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한 아버지를 매번 심판대에 세우고 그에게 벌을 내렸지만, 심판당하는 과정과 그 결과는 모두 딸의 몫이었다.
- p.188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돼도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부끄럽게도 그제야 알았다.
- p.189
원문: 한승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