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수능을 준비하던 딸이 한창 불안해할 때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는 것은 쓰고, 모르는 것은 찍어. 헷갈리면 먼저 골랐던 게 답이야. 종료 5분 전에 답안지 고치지 말고.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두 개의 정답 중에서 헷갈리면 먼저 골랐던 게 답이다’라는 말은, 오랜 시간 객관식 시험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비슷한 경험도 있기도 했다.
고1 중간고사 국어시험으로 기억한다. 공부도 덜 되었고, 문제도 꽤 어려웠다. 그래서 그날따라 직관적인 느낌으로 찍은 답이 꽤 있었다. 특히 두 개 중 하나가 답인 것 같아 긴가민가 헷갈리는 문제가 있었다.
5분을 남기고 시험지에 표기된 답을 OMR 답안지에 옮기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나는 알쏭달쏭했던 문제 5개를 모두 처음 찍었던 것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어 마킹했다.
당일, 시험이 끝난 후 정답이 공개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두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게 답이었다. 바꾼 답은 모조리 오답이었다. 그날 얼마나 화가 나고 후회가 되던지, 다음 날 시험공부도 제대로 못 했다.
답이 확실하게 잘못된 것 같다면 고치지만, 둘 중 하나인 것으로 아리송하게 느껴지면 무조건 처음 선택했던 게 답이다.
나는 이것을 불변의 진리로 확신하기 시작했다. 이후 내가 치른 모든 객관식 시험에서 이 원칙을 유지했으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딸에게 진리처럼 전달했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읽은 한 논문 때문이다.
저스틴 크루거, 데일 밀러 두 명의 심리학자는 일리노이 대학의 학생 1,561명을 대상으로 객관식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시험 도중 답을 수정하게 되면 파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1,561명의 학생 중 1,231명이 1개 이상의 답을 바꾸었다. 이 중 54%는 답변 변경으로 인하여 점수가 높아졌고, 19%는 답변 변경으로 점수가 떨어졌다. 결론적으로 처음에 작성한 정답을 수정한 경우 점수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시험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답변 변경으로 혜택을 입은 경우의 비율은 33%, 답변 변경으로 피해를 볼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38%로 예측한 것이다.
또한 두 개의 헷갈리는 답을 바꿔서 틀리는 경우와, 답을 유지해서 틀리는 경우를 가정할 때 첫 번째가 더 후회스럽고 바보처럼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이는 내가 오랜 기간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동일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
첫째, 후회에 따른 차이이다. 답을 바꾸어서 오답이 된 경우는 후회가 매우 커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반면 답을 바꾸어 정답이 된 경우는 평소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하여 기억이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둘째는 손실 회피 경향이다. 우리는 동일한 금액을 얻을 때의 이득보다 잃은 후의 손실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 답을 정한 것을 바꾼다는 것은 예상되는 손실로 여겨지고, 새롭게 답을 제안하는 것은 예상되는 이득으로 여겨진다. 이 두 가지 중 전자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손실 회피를 위해 원래의 답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논문을 본 이후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내가 심리학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매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는 쾌감이었다. 아담 그랜트는 우리가 가진 많은 믿음의 대부분이 ‘문화적 공리(Cultural truism)’라고 말한다. 문화적 공리란, 널리 공유되는 것이지만 의심받은 적이 거의 없는,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진리가 아님을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심리학은 이를 과학적 근거와 실험을 통해 깨뜨려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이다. 내가 심리학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단순 경험에 의한 근거 없는 확신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통해 얻은 경험을 무려 30년간이나 확신하고 있었다. 딸에게도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잘못된 지식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따지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답을 고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딸은 현재 재수 중이다. 딸아, 부디 올해는 잘못된 답이라고 의심된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답으로 고치렴.
원문: 장철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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