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MBTI 열풍
고3인 딸을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는데, 이렇게 물어 왔다.
아빠는 MBTI가 뭐야?
깜짝 놀랐다. 나에게 MBTI는 15년 전 강사 생활 초창기에 기업 교육의 성격 진단 코스 중 하나로서 배웠던 테스트이기 때문이다.
니가 MBTI를 어떻게 아니?
나도 인터넷 진단 많이 해봤거든. 난 ENTJ라서 돈을 많이 벌 거래. 요즘 우리 반 친구들 사이에서 완전 유행이야!
나름 전문가로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배웠던 MBTI가 이제는 고등학생의 이야기 화제가 되었다. 방송에서 연예인들도 자신의 MBTI를 풀어놓는다. 이 정도니, 가히 MBTI의 시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업교육 강사들에게 MBTI, DISC, 에니어그램 등 진단을 통한 유형론 강의는 너무나도 매혹적인 콘텐츠다. 일단 진단을 시키면 교육생들은 굉장히 귀찮은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자신의 유형이 결정되고 그 유형의 특징을 하나하나 말하다 보면 점점 눈이 커진다. 비슷한 유형끼리 앉히거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갈등사례 등을 이야기하면 “맞아, 맞아” “대박! 저랑 똑같아요!” 등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쉬는 시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무슨 유형인지 물어보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면서, 또는 의외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내용을 쉬는 시간에 흥분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게 강사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뿌듯한다. 그래서 많은 강사들이 유형론을 좋아하고, 이를 강의하려고 한다.
학자들이 걱정하는 이유
몇 년 전, 대학원에서 시간에 성격이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과 BIG5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당시 내가 기업 교육 중 많이 활용하고 있던 MBTI와 DISC 유형론을 이야기했더니, 교수님께서 이런 피드백을 주셨다.
음… 기업 교육을 하시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학계에서 MBTI나 DISC는 거의 인정을 안 해줍니다.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유의미한 학문적 성과도 없습니다. 그냥 인기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는 맞을 것 같아요. 솔직히 이렇게 인기가 있다는 게 학자 입장에서는 걱정도 됩니다.
평소에 굉장히 너그럽고 인정이 많으셨던 교수님께서 그날따라 정색을 하고 말씀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왜 교수님은 저렇게 정색하면서 비판하신 걸까? 나는 학제적 입장의 비판론을 열심히 찾아서 읽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사회에서 MBTI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갔다.
얼마간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은 다음, 나는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했다. 약간 비겁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는 학자들과 MBTI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양쪽에서 주장하는 비판적 내용을 잘 정리하고 전달해서 교육생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형론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후배 강사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가이드라인을 세워 주었던 것 같다.
가끔씩 MBTI를 강의하시는 분들께 질문을 한다.
혹시 MBTI가 비판을 받는 부분은 어떤 점인지 아시나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강사들은 대답을 잘 못했다. 막연하게 심리학자들이 싫어한다는 정도만 알지, 어떤 지점에서 비판을 받으며 어떤 지점을 보완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해 준다. 지금부터는 그 내용을 정리하려 한다.
첫째,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
신뢰도란 무엇인가? 하나의 결과 값을 동일한 방법으로 동일하게 진단했을 경우, 그 값의 차이가 적을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MBTI 진단은 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들이 성격검사로 가장 유용하다고 제시하는 BIG5 이론 신뢰도(5년 후 신뢰도 0.83)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MBTI연구소는 그러한 초창기의 단점들은 많이 보완되었고, 유형론인 MBTI와 척도형인 BIG5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엄청나게 폭발적인 인기에 비해 신뢰도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유형론의 뼈아픈 지점일 것이다.
둘째, 유형론은 순환논리에 빠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말이 빠르고 결론 중심으로 행동해. 화도 잘 내. 왜냐고? 저 사람은 DISC의 D형이기 때문이야. 왜 D형이냐구? 말을 빨리하고, 결론 중심적이고, 화를 잘 내고, 성격이 급하거든…
전형적으로 왜 그 유형인가에 대한 설명은 못 하면서, 상황을 다시 기술하는 순환 논리다. 반면 심리학자들이 선호하는 BIG5는 나름 뇌과학적 근거들을 여러 측면에서 제시힌다. 예를 들어 아래의 측면에서 왜 그 사람의 성격 요인이 높을 수밖에 없는지 과학적인 근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성실성(Contionsness): 전두엽 피질의 크기 문제
- 신경증(Neuroticism): 편도체의 과민성 문제
- 친화성(Agreeableness): 옥시토신 수용체가 분비를 조절하는 유전자 변이체 문제
- 외향성(Extraversion): 신피질의 특정 영역의 흥분 정도에 따라
셋째, 유형론으로는 예측이 불가하다.
유형론이 인기가 높은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안 좋은 성격유형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좋게 서술되어 있어서, 누구나 자신의 유형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활용성은 많이 떨어진다.
성격이 유사한 사람이 모여야 성과가 좋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모여야 성과가 좋을까? 알 수 없다. 성공한 사업가 중에서 ENTJ유형이 많이 있다 보니(사실 그것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우리 딸은 자신이 사업가로 성공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좋아한다. 하지만, 이는 통계의 기본인 ‘ENTJ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수많은 사업 도전자’들을 검증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ISTJ라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기업에서 일을 잘 해낼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저 소통 단계에서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설득이 쉬워진다는 것 정도라는 게 MBTI의 한계다.
반면에 BIG 5는 성과 예측이 매우 높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들은 BIG 5로 적성검사를 하고, 성과와 관련 있는 유형의 점수가 나쁜 지원자들에게는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나는 기업 교육 강사들이 유형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진단이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니 100% 신뢰하지는 마세요” 정도의 아마추어적 설명보다는, 최소한 위의 3가지 비판 지점을 잘 설명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교육생들이 적절하게 판단하고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말이야 아빠, 난 아무래도 사업을 해야 할 것 같아. MBTI도 그렇고,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것도 좋아하잖아? 프로젝트성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 것 같아!
그래도 차에서 내리는 딸에게 MBTI가 비판받는 부분을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굳이 힘든 고3 아이의 즐거움을 깨뜨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에게 유형론은, 잠시의 휴식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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